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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국문학은 없다’ 논쟁 달군 국어국문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학술대회] ‘국문학은 없다’ 논쟁 달군 국어국문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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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8 19:09:37
언제부터인가, 국문학을 비롯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난립하는 매체들 사이에서 환타지나 인터넷 연재 소설이 어느새 문학의 한귀퉁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국가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외국소설이 번역돼 들어오는 경우도, 한국의 문학이 해외로 나가는 횟수도 잦아졌다. 이제 우리가 ‘국문학’이라 부르는 범주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이런 시점에서 국문학의 전통적인 개념에 반기를 들고 국문학의 개념을 재규정하자는 논의가 국어국문학회에서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국문학’ 50년의 반성과 의미

지난 25일 국어국문학회는 한남대에서 ‘국어국문학, 통합과 확산’이라는 주제로 창립 50주년 기념 제 45회 전국 국어국문학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날 박이문 前 포항공대 교수(철학)는 ‘학문의 정체성, 경계선 및 주체성’이라는 발표를 통해 학문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보였다.
 
정체성은 영원불변한 속성을 의미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만은 정체성을 고집할 수 없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요 주장. 일반적으로 한 학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학문 대상의 특수성, 그 대상에 대한 관점의 특수성, 학문의 실천적 목적의 특수성, 학문의 대상이 위치한 공간의 특수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학문 영역에서 이런 차이점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 문화나 한 학문을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 ‘허상’에 지나지 않다”라고 박 교수는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문학이라는 경계도 허상일 뿐이다.

송효섭 서강대 교수(국문학)는 이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송 교수는 ‘구술성과 기술성의 통합과 확산’이라는 발표를 통해 “학문간의 경계와 경계가 만들어 낸 개념들 간의 경계가 국문학 확산에 문제점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의 확산과 통합은 경계에 대한 반성과 해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는 ‘國文學’에서의 ‘國’이 자국중심주의적 이념을 포함하고, ‘文學’이 인간성의 절대적인 가치를 담보해야 한다는 신화를 유지시켰음을 주장하면서 이를 해체할 것을 강조했다. 경계와 개념을 넘나드는 가로지르기가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른 셈이다.

사실 이런 논의는 일본 학계에서도 진행됐다. 자국중심의 문학을 벗어나서 보편성을 논의할 수 있도록 국어국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규정해 왔던 것. 실제로 이런 논의가 국립대 교과개편에 반영돼 동경대에는 국어국문학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국문학이 인문사회학 전공에 포함돼 있다.

김춘미 고려대 교수(일문학)는 “문학계에서 기준으로 생각돼왔던 중심 논의들을 다시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보이며 “일본 문학계에서는 기존의 논의를 전면 재조명하는 시도가 계속돼 왔다. 그 결과 숨겨져 있던 문학들이 수면 위로 나오고 문학을 수용하는 독자층이 가지는 역사적 맥락을 중요한 관심사로 보게됐다”고 말했다. 일본 문학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틀로 문학사적 맥락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전형식 고려대 교수(일문학) 역시 “국어국문학이라는 말은 폐쇄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한국문학으로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국문학계의 논의 소식을 반가워했다.

문자에서 문화로 확장되는 문학 지평

그러나 박이문 교수와 송효섭 교수가 한국문학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문학의 기준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하는 것. 박 교수는 ‘주체성’을 기준으로 한국문학의 규정을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진정한 주체성은 모든 종류의 편견과 아집,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기비판적이며 독립적으로 해방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학문’도 이같은 뜻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학문으로서의 한국문학이나 그 밖의 학문들은 그것이 논리적 정연성과 실증적 근거가 있는 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무관하다”며 박 교수는 한국 문학이 포괄할 수 있는 범위가 한층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송 교수 또한 국문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실재적 개념과 그 개념이 만들어내는 배타적인 범주를 해체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인식 대상들이 이른바 ‘텍스트’ 혹은 ‘담론’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한다”라고 말했다. “문자에만 한정지어졌던 한국문학의 범주가 문화 담론의 생성으로 나아가는 필연성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송 교수가 바라보는 국문학의 전망이다.
국문학의 정체성을 되묻는 기조 발제와는 달리 각 분과별 발표는 기존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어학·고전분야·현대분야의 각 분과 발표에서 기조 발제의 의미를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시작한 이상, 그것이 각 분과 영역에 어떤 방향으로 논의될지, 또 어떻게 수용될지 국문학계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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