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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총장 직선제가 도마에
또 총장 직선제가 도마에
  • 교수신문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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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00:00:00

서울대 총장의 아름답지 못한 사임을 계기로 또 총장 직선제가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직선제 이후 임기를 채운 총장이 없다느니, 파벌 줄타기와 논공행상, 영일이 없다느니 여러 말이 돌아다닌다. ‘총장 직선제는 대학의 지성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는 점잖은 충고나 ‘총장을 교수들의 인기투표로 뽑아서 될 일인가’하는 개탄도 들린다.

이런 우려에 어긋나지 않게 총장직선제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파벌 줄타기나 논공행상, 폐쇄성 등의 폐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기투표적’ 요소도 없지 않아서 두루 원만한, 따라서 개혁을 추진할 역량이나 전망은 갖지 못한 인사가 총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총장직이 4년마다 바뀌는 ‘순환 보직’이 되어 장기적인 전망과 지도력으로 대학의 발전을 주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 있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직선 총장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淪隙?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정부나 재단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해당 대학 교수들 가운데에서 후보가 나오고 그들의 투표에 의해 총장을 선출하는 총장직선제는 폐쇄적인 교수 집단의 이기심의 표상으로 지적된다. 그리고 이런 폐쇄성이 교수의 ‘철밥통’과 대학의 정체를 낳는다고 분석된다. 따라서 지구적 규모에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는 학내 직선제의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바깥에서 총장을 모셔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직선제의 고유한 결함에서 기인한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 총장 직선제는 1987년의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도입된 후 이제 겨우 10여년 남짓 된 제도이다. 이제 대학들과 교수들은 그 취약점과 폐해에 대해서도 눈뜨기 시작하고 있으며, 머지 않아 그것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제도들을 도입하는 대학들이 늘어날 것이다. 어떤 국립대에서는 직선제 아래에서도 총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재선출하는 드문 사례를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대학에서는, 정치인들을 본받았는지, 이른바 ‘공신들’이 학내 보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표하고 지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총장직선제는 대학의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만악의 근원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무능한 인사를 총장으로 선출하여 낙후되어 가는 것도 해당 대학이 가진 역량의 표현이며, 해당 대학 교수들 자신의 수준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런 교수들로 이루어진 대학이라면, 직선제가 아닌 다른 제도를 통하여 외부로부터 경영안목과 국제 감각을 갖춘 유능하고 훌륭한 인사(도대체 이런 인사가 있기는 있는가?)를 총장으로 ‘모셔온다’ 하더라도 급속한 대학 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대학들을 하루 아침에 세계 수준의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조급증과 사명감이 더 심각한 해악을 낳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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