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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진단] 학부제에 발목잡힌 공학계열 대학원
[과학진단] 학부제에 발목잡힌 공학계열 대학원
  • 교수신문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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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00:00:00
일반적으로 학부제에 가해지는 비판 중 ‘대학생들이 정규적인 대학교육을 마쳐도 심층적인 전공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한가지 반대 주장은, ‘보다 양질의 교육은 대학원에서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즉, 수많은 학생들이 한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일 필요는 없으며, 대학 졸업자는 기본적인 소양만을 갖추고, 본격적인 ‘학문’의 욕구는 소수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대학원에 가서 채우라는 이야기.

학부소속변경에 시달리는 대학원

어쨌거나 이런 주장이 실질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학부제 덕에 대학원 교육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거나 학부제 시행 여부와 상관없이 대학원 교육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부제 이후의 공과대를 돌아보는 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지표는, 공과대 대학원 교육의 현재를 가늠해봄으로써 드러난다고 하겠다.

아쉽게도 다수의 대학들이 학부제 이후에 채택하고 있는 대학원의 학과 명칭을 살펴보면서부터, ‘질 높은 대학원 교육’이 사탕발림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가령 국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유학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는 이 아무개씨는, 유학 원서의 학력난에 석사, 박사 때의 학과 명칭을 적어 넣으면서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토로한다. 아직 학부제가 시행되기 이전이었던 석사 과정에서의 소속 학과 명은 전기공학과으로 기입했지만, 학부제 이후에 입학한 박사 과정에서의 소속 학과 명은 전자전기공학부으로 기입해야 했던 것. 학부제를 시행하고 나서부터, 대학원도 두 세 개의 학과가 통폐합된 학부제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던 덕에, 명칭이 전기전자공학부, 기계공학부 하는 식으로 ‘대학원 학과’가 ‘학부’라는 꼬리를 딴 채, 어울리지 않게 붙여졌던 것이다.
학과의 명칭은 그저 이름에 불과한 문제라고 넘어가 버릴 수 있겠으나 이는 단적으로나마 대학원 교육이 대학의 행정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즉, 변화된 대학원 학과의 명칭이 반영하듯, 실제로 학부과정에서 대규모로 통폐합이 이루어진 공과대학 학과들은 대학원 과정도 이에 맞추어 통폐합되었던 것이다.

비록 대대적으로 이슈화된 적은 없었지만, 대학원 과정에서의 학과 통폐합이 실험실 위주로 운영되는 공과대의 특성과 맞물리자 불거졌던 문제들은 암암리에 공과대 대학원생들이 공감하는 불만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 기계공학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서울대는 학부제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기계설계학과, 기계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가 기계항공학부로 묶여졌다. 이중 항공우주공학과의 경우는 학부 3학년 때 어느 정도 분리가 이루어지지만, 기계설계학과와 기계공학과는 완전히 통합된 상태로 유지되며, 이는 대학원의 모집단위에서도 분리되지 않는다. 기계 공학 내에서도 기계설계 분야와 기계분야는 상당히 다른 전공이며, 상대적으로 인기 있는 기계설계 분야를 전공하기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계설계분야의 실험실은 수용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와 무관하게 기계분야 실험실에 배정을 받는 학생들이 절반에 가까운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소급해보면, 애초에 기계분야를 전공하고 싶었으나 대학원 입시에서 밀려난 학생들과 병역특례나 전문요원연구제도 때문에 ‘비인기 실험실’에서 원하지 않는 전공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 중, 어느 쪽이 더 심층적인 기계공학 연구를 하기에 적합하겠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학생수급 불균형, 파행교육불러

특수성이야 있겠지만, 비단 서울대 공대만의 혹은 기계공학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들어, 국내 대학원 진학이 학생들에게 별다른 매력을 가지지 못하는 반면, 한 학부학과가 포괄하는 학생의 수는 증가하다 보니, 자신의 실험실에 우수한 예비 대학원생을 유치하려는 교수들간의 암투도 공과대 대학원생들 사이에 암암리에 회자되는 일이다. 애초에 지원할 때부터 염두에 둔 세부 분야 및 교수와의 사전 컨택이 합격자체를 크게 좌우하는 외국 대학 대학원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물론 국내 대학원 진학자들이, 자신들이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의 교수나 실험실보다는 일단 모집단위에 맞춰 합격을 하고 나서 이후를 생각하는 행태도 문제이지만, 이는 대학원 입시제도가 정비되지 않고서는 해결이 요원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학부로 어떻게 묶여 있든지 간에, 대학원 과정에서는 학과식의 세부 전공, 혹은 교수에 따른 세부 분야를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영어점수와 학점만으로 이루어지는 일괄적인 기준의 선발이 아니라 지원자의 희망 세부 전공과 대학원의 수용력을 감안하는 대학원생 선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이다.

공대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겠으나, 학부제에 걸맞는 대학원 교육은 학부에서 쌓은 폭넓은 교양과 포괄적인 전공학습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강화시켜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대 대학원 교육이 파행으로 흐르는 마당에 국내 대학원 진학자가 줄고 우수한 학생들이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추세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이론적인 장점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 제도도, 이상은 이상일 뿐이며 현실적 여건을 뒷받침해줘야 그 장점들이 실현될 수 있는 법이다. 학부제가 고등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학부뿐 아니라 대학원 교육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박소연 객원기자 shant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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