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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신문칼럼으로 본 교수 글쓰기의 문제점
[진단] : 신문칼럼으로 본 교수 글쓰기의 문제점
  • 교수신문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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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17:36:17
장재성 / 문장연구소 대표

바른 문장쓰기에 천착해 온 장재성 문장연구소 대표가 교수들의 칼럼을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아카데미 글쓰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시사해 주는 바가 커서 2회에 걸쳐 글을 싣는다.


새벽 신문의 칼럼을 펼칠라치면 석 줄도 보기 전에 애성이가 나 신문을 휴지통에 처박는다. 지성의 상징인 그 얼굴(사진)하며, 권위의 화신인 무슨 대학하며, 주제의 선택하며…얼른 보아, 따붙여 명문모음집에 넣을 편집인데도 문장에서 구린내가 나 역겨워 팽개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부르투스여, 너마저냐.” 아들일 수도 있었던 그의 단검에 쓰러지던 시저의 인용이 지나치다고 치자.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자살은 ‘강 건너 불‘이라고 치자.
그러나 칼럼들의 하향평준화가 문제다. 교수들이 도시 ‘문장’과 ‘강의’를 혼동하는, ‘말’과 ‘글’의 살피점(경계선)을 아퀴짓기를 바람으로, 교수 문장의 5대 결함을 꼬집어본다.

첫째, ‘읽혀야 글’임을 저버린 무戰略

‘문장전략’이라고 한다. 천하의 명문이라도 읽히지 않는다면 한 조각 휴지다.
“새해는 어느 때보다 성급하게 와서 진행중인 듯 하다. 지난해가 너무 경황없이 갔기 때문인가. 벌써 며칠이야. 이젠 오느니 가느니 할 것도 없이 그냥 머물러 있지 나는 새 달력을 걸며 중얼거리다가 언젠가 읽었던 세상에서 제일 느린 시계에 관한 글을 떠올린다.”-서숙 이화여대 교수“개개인의 장래는 물론 나라 전체의 미래를 정함에 있어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에 파탄 일보 직전에 이른 중등교육의 실상을 보면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이지순 서울대 교수모두 들머리 부분이다. “첫 문장 고르기가 가장 어렵다”는 바로 그것이다. 앞글은 보따리 두루뭉실이고, 뒷글은 강의실의 입말을 그냥 옮겼다. 모두 ‘간결은 지혜의 정신’ 임을 짓밟았다. ‘보다’, ‘지난 해’, ‘듯 하다’ 따위 띄어쓰기 문제는 제쳐놓자. ‘언젠가 읽었던’의 피수식어는 무엇인가. 간접수식의 쉼표를 생략한 이유는 무언가. 뒷글은 69자다. 짧을수록 좋은 첫문장부터 만리장성인가! 독자들은 지겹증으로 아예 신문을 덮어버린다. ‘물론’은 ‘물론이고’의 준말인가. ‘업기에’를 꾸미는 부사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긴꼬리닭의 꽁지는 자르면 안되는 걸까. 문장은 전략이다. 첫 라운드부터 ‘재미’와 ‘긴장’과 ‘카타르시스’로 독자를 KO 시키는 전략이다.
교수들 중엔 중국으로 이민 보내야 할 분들이 많다. ‘문장의 만리장성’ 그것은 철늦은, 상아탑의 잠꼬대다. 남자의 정자수도 줄어들고, 인간의 폐활량도 낮아지는데, 어째서 교수들의 문장은 만리장성인가! 간결체의 선수들-오소백, 이시형, 석지명, 이상헌-의 문장은 평균 22자. 문장의 대혁명을 본다.

둘째, 교수는 긴 문장의 대표 선수

교수들이여! 두 줄 넘어가면 경계경보를, 석 줄 넘어가면 공습경보를 울리시라.
“권력의 핵심부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대학교 교회에서 언론이나 아파트 분양업체에 이르기까지, 권력형 비리와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찌르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한 오늘의 우리 세태를 바라보느라면 톨스토이의 천재적 혜안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이라는 것이 기껏 상도동을 찾아 YS의 비위나 맞추고 경남·부산권의 지방선거에서 YS의 영향력과 지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3金 정치와 지역주의의 부활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야당과 여론의 공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김성수 연세대 교수두 분 교수시여! 수다쟁이 말엔 알맹이가 없음을 명심하시라. 109자와 113자. 짧아야 힘이 있음도 새기시라! 문장은 ‘선택’과 ‘조직’과 ‘압축’이다. 외람된 실례를 저지르자.
“권력의 핵심에서 지자체장까지, 아니 대학, 교회, 언론, 아파트업체까지, 골골샅샅 썩어문드러져있다.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찌르다 못해 어질증까지 일으킨다. 톨스톨이의 혜안이 오늘의 사태를 노려보고 있다.”“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속빈 강정’이라는 화살받이로 전락했다. 기껏, 상도동 YS에 부닐며 경남·부산지방선거에서 그의 텃세를 모시는 형국이니, 3金 정치와 지역주의 부활이라는, 야당과 여론의 닦달질을 어이 피하랴.”앞글은 88자로 줄고 뒷글은 93자로 줄였다. 20% 낭비만이 아니다. 두 교수의 문장은 너무 평면적이고 평화적이다. 고난을 모르는 온실의 화초 냄새가 난다. 읽는 본전도 못찾는 문장이라면, 독자에 대한 배신이다. 몰아붙일 때는 몰아붙여라. 비아냥댈 때는 사정없이 까라. 칼럼니스트 그는, 카타르시스의 충실한 대행업자가 아닌가. 문장법과 문장술을 무시한, 섣부른 의사 침통만 흔드는 뻗글(악문)들을 거둬라.

셋째, 첫·끝 단락은 문장의 대마루판

선을 볼 때도 첫인상이 좋으면 거의 성공한다. 인간은 ‘인상’으로 살아간다. ‘인상’은 마음에 새겨진 記 이기 때문이다. “모든 구름이 폭풍우를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치자. 그러나 폭풍우 때는 바람은 필연적 조치개다. 첫단락의 중요성을 무시하고들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들어있는 5월 인륜공동체로서 가족간 화목을 도모하고 확인하는 ‘가정의 달’이다.”-강정인 서강대 교수㉡“권력은 스스로 집중·비대·영속화하는 속성이 있고, 결국 타락한다는 말의 의미가 되새겨진다.”-김재홍 경기대 교수㉢“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령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전성철 세종대 교수㉣“이명재 검찰총장이 전격 취임한 뒤 곧 뒤따를 것 같던 검찰인사가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김일수 고려대 교수모두 느슨하다. 첫 문장의 3 조건 짧게, 묘사체로, 알짜말(키워드)만으로 윗글들을 손질해보자.
㉠‘계절의 여왕’ 5월이다. 푸르른 산야는 녹음으로 치닫고, 싱그러운 훈풍은 ‘화목하라’ 외치며 들판으로 꼬신다.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했던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구실’부터 알아야겠다.
㉣곧 있으리라던 검찰인사가 지지부진하다.
모두 글자수가 줄었다. ㉠은 묘사문으로 고치느라 못 깎았다. ㉡은 거의 반이 깎였다. 한국 칼럼니스트들의 꺽꺽한 硬文 일변도의 일면을 읽는다. ㉢은 강의실의 입말을 그냥 옮겼다. ㉣은 단도직입형이다. 斷定法이어야 했다. ‘(곧) 뒤따를 것 같던’→’(곧) 있으리라던’은 3어절에서 1어절, 6음절에서 5음절로 바뀐 것만이 아니다. 지면 공간을 생각하라. ‘면치 못했다’는 봐주기 질책인가? 에돌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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