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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한 J씨에게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한 J씨에게
  •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서양철학
  • 승인 2011.03.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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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J씨, 안녕하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은 J씨에게 이런 답장을 보내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K군에게 보내는 편지가 <교수신문>에 실린 뒤 기자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몇 년 전에 제 강의를 들었던 한 독자에게 온 글이라면서 기자가 전해준 메일이었습니다. J씨는 그 메일에서 공대에 재학 중이던 2004년 제 수업을 듣고 인문학의 묘미를 알게 되어 공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소식을 알려주셨죠?

  사실 제가 처음 K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칼럼에 실었을 때는 후속 칼럼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내용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칼럼에서 했던 이야기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칼럼에서 인문학을 공부하지 말라, 철학을 공부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혹시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저의 진심으로 이해할까 두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후속 칼럼을 통해 한국의 현실에서 인문학, 특히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미친 짓으로 보임에도,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일이 필요한지, 그것이 왜 해볼 만한 일인지,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계산 불가능한 것인지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J씨의 메일을 받고 제 생각이 공연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J씨는 제가 그 칼럼에서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고 더욱이 삶의 경험을 통해 그 칼럼의 한계까지 잘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전 고등학교 때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 때 이미 철학을 전공해서는 밥벌이가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학은 시간이 있을 때 취미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그리고 공대에 들어갔고 석사까지 마친 후 기업연구소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입사 2년 정도 지난 후,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선은 돈을 번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 자본주의가 착취하는 것은 사람의 노동력 이외에도 인간성이나 순수한 의지,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기업 역시 학벌과 실적주의에 물들어 있고, 돈이 되는 연구를 중심으로 연구비가 투자되고, 그러니 정보를 왜곡해서라도 연구비를 따내야 합니다. 대기업의 수익은 대부분 중소기업을 착취한 결과이며 이기심과 탐욕이 미덕으로 공감되고 있었습니다.

  (…) 하물며 이 구조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결코 ‘나’도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신자유주의라는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욕구를 억압당하고 있었으며, 조금 떨어지는 콩고물로 약간의 허영심을 느끼며 아득바득 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J씨가 말한 대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통을 겪는 것은 다만 인문학도만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 집단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거나 좋은 학벌을 갖지 못한 사람들, 좋은 배경이나 연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어찌어찌해서 정규직의 자리를 잡을 기회를 갖는다 해도 그 자리는 또 다른 피 말리는 경쟁의 장소일 뿐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영역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따라 재편된다는 이유로 인문학, 철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문학도의 삶이 고단하고 위태로운 것이라면, 다른 영역에서의 삶 역시 그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별다른 배경이나 연줄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질곡의 메커니즘에서 비롯한 것인지 따질 만한 여유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게 좋은 삶, 공정한 삶의 방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고달픈 삶을 각오하고 인문학도의 길을 택한 J씨의 결정이 반갑고 고마웠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문제가 보편적인 문제라는 인식에 기초를 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삶을 끌어안은 채 그 부조리함의 원인과 조건, 한계를 따져보는 것,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헤아려 보는 것, 인문학이란, 철학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J씨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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