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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표기법' 현지에서도 따를 수 있게 정부 나서야
'외래어표기법' 현지에서도 따를 수 있게 정부 나서야
  • 강의현 몽골인문대 교수
  • 승인 2011.03.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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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_ 몽골어 한국표기 통일안을 제안한다

몽골어 이름의 한글 표기원칙이 확정되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2010년 9월 몽골인문대에서 치러진 제19회 한국어능력시험 장면.      사진제공 : 강의현 몽골인문대 교수

그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몽골의 캠퍼스에는 지금 2학기 강의가 한창이다. 4월 17일에는 제22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 1997년에 사상 처음으로 지구촌 2천692명이 응시해 치러졌던 외국인 및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능력시험임. 지난해 9월에 몽골에서 치러진 19회 시험엔 모두 395명의 몽골인들이 응시했으며 20회와 21회는 국내에서만 치러져 몽골 현지에서는 시행되지 않았음)이 몽골인문대에서 실시된다.

지난해 2010년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이 맡아 왔던 이 시험의 출제, 인쇄, 채점 등의 총괄 업무가 올해 2011년부터 국립국제교육원(NIIED)으로 이관되면서, 성적증명서에 몽골인 응시자 이름의 한글 표기가 올해부터 공식적으로 병기된다는 소식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영어로만 표기가 되던 몽골인 응시자들의 이름이 한글로 표기됐을 때 문제가 발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까닭은 몽골 낱말의 한글 표기가 몽골 대학마다, 교수마다 제각각 표기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적증명서 표기 원칙을 놓고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공식적인 한글 표기와 몽골인 개개인이 선호해 온 발음에 따른 한글 표기가 정면충돌하게 된다.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한글 표기 확정 몽골 낱말은 17개뿐

대한민국에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이하 위원회)’라는 게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어에 새로 들어오는 외국어와 외래어의 한글 표기를 심의하고자 1991년 9월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과 한국신문편집인협회(1996년 1월23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로 이름을 바꿈)가 공동으로 구성한 게 바로 이 위원회이다. 2011년 3월 현재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 인원은 총 19명이며 바로 이 총19명의 인원이 대한민국 외래어표기법 결정의 전권을 갖는다. 그야말로 엄청나면서도 막강한 언어 분야의 권력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위원회에 의해 한글 표기가 확정된 몽골어 낱말은 모두 17개 낱말이다. 하지만, 외래어표기법 제3장 표기 세칙에 보면 21절에 걸쳐 세계 21개 언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원칙이 나열되어 있긴 하나 어찌된 일인지 몽골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원칙은 빠져 있다. 낱말 그대로 외래어표기법은 외래어를 대한민국의 자모인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언어마다 음운 체계나 문자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언어의 어휘를 다른 언어로 흡수해 표기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외래어 표기법’의 경우 한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21개 언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폴란드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타이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등임)에 있는 음운을 표준어에 있는 비슷한 음운과 1대 1로 대응시켜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몽골 낱말의 한글 표기는 중구난방

한-몽 수교 직후부터 몽골 대학 강단에서 한국어 교육의 일선에 서 왔던 필자로서는, 그동안 몽골어의 한글 외래어표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2010년 11월 20일에 열린 93차까지 위원회가 확정한 외래어 표기를 살펴보고 몽골어의 한 낱말, 한 낱말을 일일이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겨 왔다. 이제는 몽골 낱말만 보고도 위원회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신문이나 잡지에서, 여러 인터넷 누리집에서 위원회의 결정과 다른 표기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런 혼선과 무식함은 되풀이 되고 있다. 몽골 현직 대통령의 이름인 ‘Элбэгдорж(Elbegdorj)’는 2005년 6월 22일에 열린 63차 회의에서 ‘엘베그도르지’로 확정됐으나, 몽골 현지의 인터넷 매체에서는 ‘엘벡도르지’라는 표기가 대세다.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몽골 초대 대통령의 이름인 ‘Очирбат(Ochirbat)’는 1997년 5월 30일에 열린 제 16차 회의에서 ‘오치르바트’로 확정돼 한국 언론에서 그렇게 줄곧 쓰고 있으나, 최근 외국인 교수로서 대한민국 어느 대학교 학과장에 임명된 몽골인 교수의 이름 ‘Отгонцэцэг(Otgontsetseg)’는 같은 ‘О’가 들어갔는데도 ‘오’가 ‘어’로 바뀌어 지금 ‘어트겅체첵’으로 표기되고 있다. 몽골의 수도 이름 ‘Улаанбаатар(Ulan Bator)’의 한글 표기는 제18차 회의에서 ‘울란바토르(정확한 몽골 발음으로는 올랑바타르)’로 확정된 바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몽골 현지 인터넷 언론 매체와 몽골 정기노선을 운행하는 대한항공 누리집에는 버젓이 ‘울란바타르’로 올라 있고, 더욱이 이 ‘울란바타르’라는 한글 표기를 학교 이름으로 사용하는 특정 종교의 한국인들이 세운 대학교가 몽골에 존재하고 있다. 중구난방으로 표기되는 몽골 낱말의 한글 표기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지면의 제한으로 다 쓸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외래어표기법이라는 대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1990년 3월 26일 대한민국과 몽골의 국교가 수립된 뒤, 정부 차원(정부 차원의 한국어 교육은 1992년 9월부터이다. 민간 차원의 한국어 교육은 1991년 몽골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었으며, 한-몽 수교 이전의 북한어 교육은 북한 유학생들에 의해 수행됐음)의 몽골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역사는 대한민국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한국어 교원 파견에서부터 비롯됐다.

한-몽 수교는 곧 돌아오는 3월 26일로 21돌을 맞고 중고등학생, 대학생 및 일반인들을 포함한 몽골에서의 몽골인 한국어 학습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 공식적인 집계에 따르면 이미 수 천 명에 이르렀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일단 몽골 사람들이 외래어 표기법을무 시하고 발음대로 적는 몽골 낱말의 한글 표기에 익숙해지면 바로 잡기가 힘들다.

속을 끓이던 필자는 지난해 7월의 제17차 국제한국언어학회(ICKL) 정기학술대회는 물론, 지난해 11월 몽골과학기술대(MUST)에서 열린 국제한국학학술대회에서 「대한민국외래어표기법에 따른 몽골 낱말 표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여러 한국인 및 몽골인 교수들에게 외래어표기법의 준수 당위성과 관심 집중을 호소하는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 2010년 서울에서 국외 한국어교원 연수회가 열렸을 때 권재일 국립국어원장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몽골 현지 발음과 외래어표기법의 괴리 때문에 외래어표기법이 중구난방이 되어 가는 몽골 상황을 귀띔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현지 발음과 외래어표기와의 괴리 문제를 세계 각국 언어권 별로 점검하고 있는 중이라는 원장의 답변을 듣긴 했으나 왠지 필자는 우선 순위 면에서 몽골어가 한참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몽골어의 한글 표기 원칙 확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돼

필자는 복수 표준어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복수 외래어란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건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일이다. 몽골 낱말의 현지 발음과 ‘위원회’의 표기 원칙에 의해 확정된 몽골 낱말의 한글 표기의 발음이 괴리가 심각한 현실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 되풀이되는 혼선과 무지를 어떻게든 끝장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19명의 위원들을 모두 몽골로 초청해 몽골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원칙 확정을 위한 특별 회의라도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본업이 따로 있는 19명의 위원들의 일정을 무슨 수로 조정하며, 게다가 한 명도 아니고 19명의 몽골 체류 비용을 무슨 수로 감당해낼 것인가. 한국어의 공통된 법칙을 찾아 표준 용어와 표준 발음을 정한 것이 표준어 규정이고, 이 규정을 좇아 우리말을 표기하는 기준을 정한 것이 한글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이며, 우리말을 로마자로 적는 기준을 정한 것이 로마자표기법이다.

이 규정들이 언어생활에서 따르고 지켜야 할 공식적인 기준인 동시에 한국어를 사용할 때에 누구나 지켜야 하는 언어의 법칙이라면 이젠 위원회가 직접 나서야 할 때이다. 한글 표기가 확정된 몽골어 낱말을 17개로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몽골어의 한글 표기 원칙을 서둘러 확정하고, 일일이 간섭하고 눈에 불을 일구면서 외래어표기법이라는 대원칙을 엄중하게 끌고 나가야 한다. 책임 기관인 위원회는 중구난방인 몽골의 이런 상황 해결에 전혀 뇌파가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필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어느덧 제22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일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몽골어의한글 표기 원칙 확정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시급히 풀어야 할 당면 과제가 됐다.

강의현 몽골인문대(UHM)·한국학과
필자는 국제회의 전문 동시통역사이다.「대한민국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몽골 낱말 표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등의 논문과 『몽골인을 위한 한국어 I, II, III, IV』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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