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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 누드의 정치성
[예술계 풍경] : 누드의 정치성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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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17:26:05

여성화가가 여성누드를 그리도록 ‘허락’된 것이 불과 1, 2세기 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여성 미술의 역사는 곧 스스로의 몸을 되찾는 싸움의 역사였다. 미술사학자들은 근·현대 미술사를 집요하게 뒤져내 대상과 객체로서의 여성을 발견했다. 때로는 성적 대상으로 때로는 ‘순수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성을 박탈당한 靜物로 그려진 여성의 초상은 남성의 욕구와 시대적 필요에 따라 ‘그려진’ 여성일 뿐이다. 아카쿠와 미도리 일본 카와무라카쿠엔여자대 교수는 얼마 전 이화여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여성미술, 그 가운데서도 ‘여성의 누드’가 갖는 정치성을 파헤쳤다.

그의 ‘근·현대 일본회화에 있어서 누드의 정치성’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누드는 일본의 ‘아카데믹하고 권위 있는 근현대미술사가들(그 대다수가 권위 있는 미술관의 관장 혹은 대학교수이다)’로부터 일본 예술의 근대화 상징으로 간주돼”왔다. 여기에서 미도리 교수는 ‘권위 있는’ 미술가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 하나를 던진다. “왜 그들은 순수미의 추구를 위해 여성의 나체를 선택했을까”라는 것. 미도리 교수는 그 까닭을 제국주의에서 찾는다.

비단 일본 뿐 아니라 중세 근세의 ‘제국주의’에서 여성 누드가 많은 까닭은 “국가가 장려했기 때문”이다. “화가가 여성의 신체와 에로티시즘에 집중하면 회화로부터 현실비판을 제거하기 쉽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것. “자신들의 공통 관심사인 여성의 신체에서 ‘친밀감’을 나눈 남성은 정신적인 남성동맹을 결성하고, 군사체제는 바로 그 남성동맹 위에 구축된다. 그들은 국내의 타자인 여성의 신체를 영유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국외 타자를 침략, 살육, 강간, 납치했던 것”이라는 판단은 섬뜩하도록 타당하게 들린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매개로 누드를 ‘발견’했다.

페미니즘과 정치, 몸과 자본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현대 미술은 또 하나의 싸움터이다. 여성의 몸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대상화돼온 현실에 날카로운 날을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미술사가들은 현대 미술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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