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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 대구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설문 ‘지방분권과 지역민의 삶’
[쟁점] : 대구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설문 ‘지방분권과 지역민의 삶’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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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17:24:14
지난 5월 17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구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지역 연구에 열과 성을 쏟아온 이들이 맞은 뜻깊은 잔치마당이었다. 대구사회연구소의 역사는 대구지역 진보적 사회학자들이 모여 ‘지방사회연구회’라는 공부모임을 시작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재정자립의 체계를 갖추고 후학을 기를 수 있는 ‘제대로 된’ 연구소를 꿈꾸며 법인체제로 다시 모였다. 그 뒤 10년 동안 대구사회연구소는 지역 문제와 지방분권에 대해 영호남을 넘나들며 활동을 벌여왔다. 이들이 지역에 관심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자들 모두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역민들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과 함께 지역내부의 혁신 필요

10년이라는 ‘양적 진화’에 만족하지 않은 이들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벌인 큰 일은, ‘지방분권과 지역민의 삶’이라는 주제의 설문조사. “강단연구 뿐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경제, 도시환경, 지방분권 등 세 가지 주제로 약 한달 간 전국에서 진행됐다. 1백여 쪽에 이르는 자료집의 양보다 놀라운 것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 꼼꼼함과 현장감이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것이다.
이창용 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은 이번 설문조사의 의의로 “일반적인 이야기들에서 지역 주민의 삶에 한 걸음 나아간 것”을 꼽는다. 지방분권이 안돼서 일어나는 지역민의 구체적인 ‘불편함’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지방분권에 대한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성과다. “부산과 대구가 다르고, 광주가 다르다. 도시의 크기와 정서가 다른데 똑같은 목소리가 나왔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설명. 보건의료, 문화예술, 교육 등 좀더 구체적인 삶에까지 조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왜 지방분권인가. 홍덕률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분권과 혁신’이라는 대구사회연구소의 방향에 맞춰 이번 설문조사의 의의를 설명한다. “지방연구를 할수록, 지방의 문제는 중앙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앙과 지방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분권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지방분권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혁신’의 문제 또한 크다. “분권과 함께 지역사회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의 권력을 지역사회로 끌어내리는 것을 분권이라 할 때, 지역의 기득권 집단이 고스란히 그 권력을 장악할 위험이 있다.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풀뿌리 서민들에게 분권의 혜택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혁신의 설명이다.
이창용 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은 또한 서울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서울에 있을 때는 지역에서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앙 일간지 기자들조차,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면 ‘지역에 무슨 문제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남성이 여성을 이해 못하듯이 서울은 지역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방분권은 단순히 권한 몇 개 지방에 가져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만들어가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지역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서울 집중’

경제분야의 설문은 ‘21세기 대안적 발전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김영철 계명대 교수와 이민환 계명대 강사가 조사를 맡아 진행했고, 대구·경북지역에서 2002년 3월 20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이루어졌다. 설문에 답한 194명 가운데 대학 및 연구기관 47명(24.2%), 기업체 43명(22.2%), 행정기관 47명(24.2%), 기타 17명(8.8%)으로 구성됐다.
지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 ‘경제력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져오는 원인’을 묻는 질문(2개 답 선택)에 응답자들은 ‘정치, 행정력 및 국가기관의 서울 집중’(171명, 44.1%)과 ‘금융과 돈의 서울 집중’(91명, 23.5%)을 꼽았다.<표 1>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라고 할 ‘지방분권의식과 지방민의 삶’ 설문조사는 홍덕률 교수와 임채도 경북대 강사가 진행했다. 4월 18일부터 5월 13일까지 대구, 부산, 광주, 서울, 대전, 울산, 전주, 춘천, 청주, 인천에서 진행된 설문에서는 전체 311명 중 40.2%가 ‘지방분권이 지역간 균형발전에 도움될 것’이라고 답했다.<표 2>‘다가올 대통령선거에서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제시한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무려 76.3%가 ‘지지한다’고 밝혀 지방분권에 대한 기대를 알 수 있다. ‘현 지방자치제도가 중앙집권화 극복과 지방분권 정착에 어느 정도 도움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42.8%만이 도움되고 있다고 답해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짐작케 한다.
지방분권에 대한 설문을 통해 드러난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는 첫째, 지방 분권 운동이 지금까지 지식인 중심으로 진행돼왔지만 시민의식의 고양과 함께 지역 NGO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지방분권에 대한 지역간의 인식차이가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의 발견에 있다. 설문을 통해 지역별로 영남이 지방 분권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고, 강원도와 전라도 지역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홍덕률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일수록 분권에 소극적이다. 지역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분권이 이루어지면 더더욱 지역 불균형이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숙제’도 비교적 명확하다. 강원도와 전라도 지역주민들에게 “지방분권을 해나가면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대구사회연구소는 지방분권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가면서, 여건이 닿는 한 지역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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