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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임’ 이유로 중견학자에게 학문후속세대 ‘딱지’ 정당한가
‘비전임’ 이유로 중견학자에게 학문후속세대 ‘딱지’ 정당한가
  • 김익진 강원대 HK교수
  • 승인 2011.03.09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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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에 관한 斷想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과거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대학에 전임인력으로 채용되지 못한 학자들을 위해 본격적인 지원사업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일 것이다. 그 당시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은 실질적으로는 박사학위를 하고 있거나 혹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강사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에 ‘세대’라는 어휘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도 특정 나이층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이 표현은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전임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시간강사들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시간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한 중간 단계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고, 많은 수의 강사가 학위 과정에 있었다. 적어도 필자의 전공분야에서는 그랬다. 학위과정에 있는 학생에게는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은 어울린다. 학문적 차원에서도 이 표현은 적절했다. 공부에 완성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제도적으로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이들은 완성의 단계에 있는 학자들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학문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직 많은 연구를 해야 하는, 상대적인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을 학계를 이어갈 차세대라는 의미의 학문후속세대라고 칭하는 것이 어색할리 없었다. 한편 박사학위를 마친 경우에도 대부분이 30대였던 젊은 소장학자들에게도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은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도 이 표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대학의 인문학 관련 학과에서 전임인력을 채용할 때 만 35세 미만이라는 자격조건이 붙을 만큼 당시 전임교원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학자들은 소장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인문대학의 전임채용인력의 평균나이는 45세를 훌쩍 넘겨버렸다. 5년 전, 10년 전에 소장학자이자 학문후속세대였던 사람들 중 다수가 대학의 전임인력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때를 놓쳐버린 수많은 40대, 심지어는 50대 비전임 교수들은 소장 아닌 소장학자가 돼 혹시 모를 임용에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여유 있는 ‘노장학자’들보다 더 많은 논문을 써야했고 생계를 위해 더 많은 강의를 해야 했다.

해마다 평균 두세 편씩 전공논문을 쓰고 학회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미 두세 권의 전공서적과 평균 스무 편이 넘는 전공논문을 쓴 중견학자가 돼 버렸다. 연구재단의 그 많은 등재지와 등재후보지 중 이 후속세대의 논문이 없으면 유지되기 힘든 학술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 젊지 않은 소장학자들이 이미 각 분야의 학술활동의 중심에 서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이 어울릴 소장학자들은 앞으로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문후속세대라는 표현이 더 이상 비전임 교수를 지칭하는 다른 말로 쓰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자기 학문분야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학문적 업적이 쌓인 이 학자들이 누구의 후속이며 누구에 비해 소장이란 말인가? 직책의 높낮음이 학문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강사보다 학문적으로 더 많은 경험과 업적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전임교수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평생을 학문후속세대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강사에게 교원 자격을 부여해야한다는 주장이나 강사의 강사료를 현실화시켜야한다는 주장들이 지니는 당위성만큼이나, 중견학자를 더 이상 학문후속세대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주장은 정당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도 이들을 영원한 후속세대의 자격으로 지원하기 보다는 전임교수와 동등한 중견학자로 인정하고, 그 전임들에게만 지원이 허락돼 있는 사업들에 대한 지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신의 학문의 완성을 준비하고 후속세대를 키워야하는 나이에 후속세대라는 말을 계속 달고 사는 건 부담스럽다. 이 고정칼럼이 ‘학문후속세대만의 참신한 문제의식이 우리 학계와 대학 사회에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만든 꼭지’라는 교수신문 칼럼 담당자의 말처럼, 학문후속세대와 참신함은 참 어울리는 단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50살의 학문후속인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참신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난다.

김익진 강원대ㆍ불문학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교수로 있으며, 예술심리치료 전문가다. 『인문치료』 『프랑스 뮤지컬의 이해』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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