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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과 차가움
뜨거움과 차가움
  • 심혜련 서평위원 / 전북대 과학학과
  • 승인 2011.03.0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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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3월인데도 여전히 춥다. 참, 이상하다. 3월 개강할 때쯤이면, 날씨는 다시 늘 추워진다. 꽃샘 추위와 개강은 늘 함께 오는 것 같다. 하여간, 또 벌써 개강이다.

똑 같은 개강이라도 1학기 개강과 2학기 개강은 느낌이 다르다. 1학기가 개강하면, 학교에는 신입생들이 들어온다. 신입생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나의 대학 생활에 대한 생각도 나고, 이들이 앞으로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할까라는 우려도 생긴다. 고등학교 생활만큼, 힘든 대학 생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기 초에는 신입생들과의 만남들이 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을 이렇게 보내라라는 이러저러한 말들을 할 기회가 많다. 이런 자리가 주어질 때마다, 늘 당혹스럽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기준대로만 이야기하면, 재미있게 살아라하고 싶지만, 시대적 상황이 그저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사회가 되다보니, 차마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열심히 읽고 보고 듣고 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딱히 책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책만을 고집할 수 있는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책들이나 영화는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취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그것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책이라고 주의력이 필요하고, 영화라서 좀 더 쉽게 보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매체들이 엄청난 정보들과 오락거리를 쏟아내고 있는 지금, 이러한 다양한 매체들을 대하는 수용자들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일찍이 맥루언은 매체가 지니는 정보량과 이를 대하는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매체는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로 분류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책은 뜨거운 매체다. 반면 같은 책이라고 만화책은 차가운 매체다. 그가 매체를 중심으로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를 분류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매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많아서 그 매체에 접하는 사람들의 참여도가 커지면, 매체 자체가 차가운, 즉 쿨한 것이 되고, 그 반대면 뜨거운, 즉 핫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때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로 분류된 것은 절대적으로 늘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맥루언 스스로가 이야기했듯이,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뜨거운 매체이지만, 또 다른 경우에서는 바로 그 매체가 차가운 매체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정보량과 이 정보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수용자의 참여도이다. 방학때, 시집을 꽤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다시 읽기도 하고, 최근에 출판된 시집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시집은 책은 책인데, 매우 차가운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정보량에 비해서 수용자의 높은 참여도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 텔레비전도 많이 봤다. 논의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맥루언은 텔레비전을 차가운 매체로 분류했다. 즉 높은 참여도를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근데, 내가 텔레비전을 수용하는 방식은 이와는 다르다. 오히려 그냥 집안에서 나는 또 다른 소리들 정도로 수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늘 틀어놓고 있다가, 관심 있는 부분이 나오면,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텔레비전을 본다. 결국 나에게 시집이라는 책도 텔레비전도 차가운 매체였던 것이다.

매체뿐만 아니라, 사람에서도 쿨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사람도 뜨거운 사람이 있고, 차가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차가운 사람과 쿨한 사람은 또 느낌이 좀 다르다. 예전에는 쿨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차도남’ 또는 ‘차도녀’라는 신조어때문인지 차가운이라는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사람에게 ‘쿨하다’라는 말을 쓸까. 또는 쿨하다라는 게 뭘까. 아마도 무심하고, 작은 일에 개의치 않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훌훌 잘 털어내고, 뒤끝이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근데, 차가운 또는 쿨하다고 하면, 칭찬일까, 아닐까. 쿨하다고 하는 것이 칭찬이라면, 반대로 뜨겁다고 하는 것은 흉일까. 헷갈리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쿨하다라고 할 때,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심하고 소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무심하지 않고, 사람과 사는 일에 관심이 많고, 작은 일에도 적극 개입하고, 흥분하면 안 좋은 것인가. 개인적으로 좀 뜨거운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이번 학기 강의에서는 뜨거운 학생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난 어떤가. 아마도 미지근한 사람이 아닐까.    

심혜련 서평위원/전북대·과학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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