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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워크숍제도, 그들만의 전통을 만들다
‘악명 높은’ 워크숍제도, 그들만의 전통을 만들다
  • 북학 기자
  • 승인 2011.02.2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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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시카고 학파』(박수철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2011.1)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경제학 수상자를 배출하고 20세기 말 세계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시카고학파를 심층 해부한 이 책은 프랭크 H. 나이트,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게리 베커, 로버트 루카스 등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뛰어난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학자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와 지적 연관성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또한 시카고학파의 자유시장 경제학 개념의 형성 과정과 발전상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며, 시카고학파의 근거지인 시카고대의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의 설립부터 교육이념, 수업방식 등 ‘시카고 전통’을 정리해 소개했다.

  시카고학파는 시카고대의 설립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1892년 존 D. 록펠러의 후원으로 개교한 이래 100여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대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경제경영학의 중심지로 각광받게 됐는지, 저자는 그 비결을 시카고대만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시카고대의 원동력은 이른바 다섯 가지 ‘시카고 전통’ 즉 투철한 직업윤리, 진정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대한 믿음, 학자적 성취와 학문적 성과를 강조하는 자세,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 지리적 고립에서 오는 독특한 공동체 의식에 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정계 진출을 금기시하는 원칙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악명 높은’ 시카고대만의 활력 넘치고 치열한 워크숍제도가 이러한 ‘시카고 전통’을 만들어냈다고 진단한다. “스티글러의 산업조직론 워크숍, 베커의 사회학 워크숍가 경제사 워크숍 등 학제간 접근법을 강조하는 경향은 시카고대 경제학과 역사의 한 줄기를 차지한다.”

  투우나 총잡이들의 결투 신청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시카고대의 워크숍은 ‘학살의 현장’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승의 학설을 제자들이 주저없이 비판할 정도로 자유로운 학풍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물론 ‘악명 높은’ 이라는 떨쳐버릴 수 없는 수식어와 함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 경제학 내용을 정교하게 계승했으며, 경제학이 과학으로 발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데가 시카고학파다. 이 학파의 창시자는 바로 프랭크 H. 나이트이다. 그의 시장경제를 대하는 ‘평등보다는 자유’의 태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은 여러 시카고학파 경제학들과 함께 화폐수량설을 내세워 시카고학파의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 접근법을 꽃피우며 시카고학파의 거두로 거듭날 수 있었다. 프리드먼의 사후에는 그의 제자인 게리 베커가 시카고학파를 이끌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학을 학문적으로 구동시킨 역사와 전통, 힘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견해들이 존중받는 지적 전통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딱 적격이다. 초창기부터 경제학과 교수로 있던 베블런은 신고전주의 경제이론과 자본주의를 단호히 거부한 인물이었으며, 프랭크 나이트조차 기존의 모든 진리를 철저하게 의심하는 데 앞장선 학자였다. 밀턴 프리드먼이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공격하고 있을 때도 시카고대 경제학과는 손꼽히는 케인스주의자인 로이드 메츨러를 영입했다.

  이 책의 저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는 각종 경제학 관련 문제를 연구하는 벨기에의 싱크탱크인 VKW 메테나(VKW Metena)의 책임자로, 밀턴 프리드먼 등 경제학자와 시카고대 전·혁직 교직원들과의 100여 차례에 걸친 인터뷰와 950여 편에 달하는 논문과 회고록을 참고해 책의 깊이를 다듬었다.

  한편 국내 학계에도 시카고대 출신이 많다. 경제학자로는 이지순(서울대)을 비롯해 함상문(KDI), 김대일(서울대), 조하현(연세대), 장세진(인하대) 등이 있다. 경영학자 가운데는 김병도(서울대), 하영원(서강대), 최혁(서울대) 교수 등이 시카고대 출신이다. 홍두승, 정진성(서울대), 김경만 (서강대), 김동노, 염유식(연세대), 윤인진(고려대), 양영진(동국대) 교수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최정운·권형기(서울대), 곽준혁·임혁백·이동선(고려대) 교수 등은 정치학을 공부했다. 교육학계 원로인 정범모 한림대 명예석좌교수도 이 대학 출신이다. 김혜숙(이화여대), 김형철(연세대) 교수 등도 시카고대에서 철학 박사를 했다.

  과학자중에서는 KAIST의 고병원(물리학), 유욱준(분자생물세포), 김성규 성균관대 교수(화학), 정윤희 포항공대 교수(물리학), 서정헌 서울대 교수(생유기화학), 신석민 서울대 교수(화학동력학) 등도 시카고대에서 수학했다. 재계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준 LG 전자 부회장이 이 대학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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