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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만이 들어서는 雪國...한라에서 덕유, 지리를 거쳐 태백까지
준비된 자만이 들어서는 雪國...한라에서 덕유, 지리를 거쳐 태백까지
  • 허준규 <사람과 산> 기자
  • 승인 2011.01.20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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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백두대간 겨울산행 가이드

태백산

연일 한파에 모두들 춥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겨울은 산을 찾는 이들에겐 고대(古待)하던 계절이다. 겨울 산이야말로 사계절 중 가장 매력적인 산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설경은 산객들을 황홀경에 들게 하고, 그 설국(雪國)으로 걸어가는 희열은 겨울산행의 백미다.

단, 맹추위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는 겨울 산이 낭만으로 추억되기 위해선 그만한 준비가 필수다. 산이란 곳이 원래 예상치 못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지만 겨울산은 유독 그 심술이 더하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 단단히 채비해야 하는데, 필요한 장비들이 생각보다 많다. 추위로부터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온 겨울철 의류와 장비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서투른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등산, 특히 겨울 산행에서는 잠시 잊어야 할 말이다. 겨울산에서 장비는 곧 생명. 혹한의 추위와 강풍이 갑작스레 밀려오는 악천후의 위험이 상존하는 겨울산에서는 기능성이 극대화된 의류와 용품들이 우리의 몸과 체온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값비싼 용품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폼만 그럴듯한 게 아니라 성능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그 값어치는 대개 겨울철에 빛을 발한다.

지리산 천왕봉

배낭과 장비 = 우선, 어떤 상황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망에까지 이르는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선 여러 종류의 방한복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만큼 배낭도 무거워지고 부피도 커진다. 당연히 대용량 배낭이 필요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당일산행이라도 45리터는 되어야 하고 1박을 할 경우는 60리터 급 이상으로 준비한다. 눈이 내릴 것을 대비해 커버도 용량에 맞는 것으로 챙긴다. 산악전문 기자의 경우, 대상과 목적에 따라 60리터는 물론 80리터 급과 100리터 이상 배낭을 적절히 바꿔가며 사용한다. 

면 소재 의류는 속옥 양말이라도 금물

그런 다음으로 배낭에 들어가야 할 것들. 꼭 챙겨야 할 방한복으로 방수방풍의(윈드재킷 또는 고어텍스 소재 재킷)는 물론 우모복과 플리스 원단의 재킷에 바지, 장갑, 모자, 아이젠, 등산용 스틱은 기본이다. 양말과 장갑은 여유분을 반드시 준비한다. 그런데 면 소재 의류는 속옷이나 양말이라도 금물이다. 면이 땀 흡수율은 높지만 배출이 안 돼 운행 중 쉬게 되면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기 때문이다.

추위가 극성인 요즘에는 고소내의를 챙겨볼만하다. 사람 체온의 절반가량이 머리를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모자만 착용해도 체온유지에 도움이 된다. 팬츠의 경우, 눈이 많이 내린 산에서는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가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값이 비싼 데다 자주 쓰이지 않다보니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면 장만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대신해 1~2만 원 대의 일반 우의바지도 요긴하게 사용해봄직하다. 

배낭을 꾸릴 때는 우모복이나 오버재킷을 쉽게 꺼낼 수 있게 멘 위에 넣도록 한다. 산행 중 쉬는 사이나 막영지에 도착하면 먼저 착용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행동식, 헤드램프, 화장지, 여벌 장갑 등은 헤드부분에 넣어두면 사용하기 편하고 수통의 경우, 종종 통째 얼어버리기도 해 보온용 수통커버를 준비하면 좋다. 눈이 많이 내렸거나 땅이 얼어 젖기 쉬운 겨울산에서는 방석보다는 등산용 의자가 여러모로 유용하다.

등산화는 발수기능이 있고 바닥창이 두꺼운 중등산화가 좋으며 발목이 높은 것을 신어야 한다. 이와 함께 등산용 스틱을 사용,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몸의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필수품인 아이젠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젠은 심설산행이 아니라면 4~5개 발톱이 달린 제품이 좋다. 다만, 아이젠을 신발에 고정시키는 부분의 소재가 고무로 된 것은 갑자기 미끄러져 체중이 한 방향으로 쏠릴 경우 늘어나 아이젠이 돌아가거나 충격을 받아 끊어질 수 있어 적당하지 않다. 또 등산화 발목 사이로 눈이 들어가면 등산화가 젖기 쉬우므로 아이젠 착용 시 스패츠도 함께 착용한다.

상고대 핀 주목

하산 늦어져 자칫 야간산행도 고려...헤드램프 필요

겨울산의 계곡이나 음지는 많은 눈이 쌓여 있어 걸음이 느려져 계획보다 시간이 지체되기 십상이다. 당연히 하산도 늦어져 자칫하면 야간산행도 감수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한다. 산행코스가 북면일 경우 오후 3~4시간 되어도 어둑어둑해져 헤드램프가 필요해진다. 반드시 여유 건전지까지 챙기도록 한다.  

겨울산행의 낭만, 막영을 위해서 = 막영을 하게 되면 필요한 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기고 잠을 자려면 침낭이 가장 중요하다. 동계용은 충전재로 구스다운 함량이 1100~1500그램 정도 되고 복원력(FP?필파워)이 높은 것이 좋다. 최근에는 850FP 재품까지 출시돼 있으며 이런 침낭은 커버를 씌우고 매트리스를 깔면 텐트 없이 잘 수도 있다. 외형은 직사각형, 쐐기형, 미이라형 등 다양하지만 미이라형이 주를 이룬다.

침낭의 성능을 극대화시키는 침낭커버는 주로 고어텍스를 사용해 가격이 비교적 높다. 부피와 무게가 생각보다 크고 무겁지만 일단 가져가면 산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팀낭커버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고 텐트의 안락함에 못 미친다. 텐트는 야영을 더욱 낭만적이고 쾌적하게 할뿐 아니라 등산객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산속의 집이다. 대개 산에서는 커봐야 3~4인용, 주로 2~3인용이다. 캠핑용으로 쓰는 5인용 이상 되는 텐트는 부피도 크고 무거울뿐더러 산에서는 칠만한 공간도 없다. 텐트는 소형이라도 강풍에 견딜 만큼 내구성과 안전성이 뛰어나야 한다. 또 설치가 쉽고 편리해야 좋은 텐트다.   

침낭커버, 무거워도 가져가면 큰 위력

산악용 텐트는 주로 돔형이 많은데, 홀로산행을 즐기는 이들을 위해 침낭커버를 조금 더 확장시킨 형태의 1인용 텐트도 여러 모델이 나와 있다. 텐트는 아침에 짐을 꺼낸 후 플라이와 본체를 분리시킨 후 뒤집어 말리는 것이 좋은데, 시간이 없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빈 텐트 안에서 가스등이나 스토브를 켜 두면 빨리 마른다. 텐트 바닥에 깔 매트리스는 발포스펀지형과 공기주입형 두 가지로 나뉜다. 단열성이나 부피를, 무게 등을 고려할 때 일명 ‘빨래판’보다는 공기주입형이 우수한 성능을 보이지만 가격이 비싸다.

겨울철 추운 날씨에는 가스보다는 휘발유스토브가 단연 유용하다. 서브 스토브로 가스스토브를 준비했다면 연료는 동계용을 쓰고, 바람막이를 준비토록 한다. 모든 연료는 조금 넉넉하게 챙기는 게 바람직하다. 스토브의 화구는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도록 습관화하고, 연료보충 시에는 텐트 바깥에서 하도록 한다. 또한 잠 잘 때는 질식 우려가 있으니 가스스토브는 연료통과 분리시켜둔다.

막영지에 샘이 없을 경우, 눈을 녹여 걸러서 식수로 쓰면 된다. 이때 휴대용 정수기나 여과기가 없으면 깨끗한 면 수건을 사용해도 좋다.

설국 백두대간

요즘엔 '디카' 사용위해 '얇은 장갑'도 준비

한편, 요즘에는 산행 시 디지털카메라를 대부분 가지고 다닌다. 겨울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얇은 장갑을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추위에 맨살이 노출되면 동상 위험도 있고 손이 얼러 카메라 조작이 둔해져 값비싼 장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또 추위에 노출된 카메라는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어 정작 멋진 풍경을 찍으려 할 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경우 손난로 같은 것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두면 훨씬 오래 사용 가능하다. 핸드폰 같은 디지털기기도 함께 넣어두면 좋다.

손난로는 손뿐만 아니라 몸도 보호해주는 제품이다. 스스로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높여주기 때문에 동절기 스포츠를 즐길 때 신체 경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상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겨울 산행에서 손난로 2개면 챙기면 하루 종일 추위 걱정 않고 산행할 수 있고 막영 시 침낭 속에 넣어두면 온돌방이 부럽지 않다. 현재 시판되는 손난로는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연료 주입형과 디지털화된 배터리 충전형이 있다.

이밖에도 대상 산에 대한 기상정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조난 사고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기상청 웹사이트에는 전국 주요 ‘산악날씨’ 정보가 따로 링크돼 있다. 그에 앞서 지도와 나침반을 챙기는 것은 필수,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능역도 또한 중요하다. 휴대용 GPS가 있으면 더욱 좋다. 칠흑 같은 밤이나 안개가 끼어 있어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산행할 코스의 좌표를 미리 입력해두면 10미터 이내 오차 범위에서 안심하고 산행할 수 있다. 특히 조난 시 구조대에게 좌표를 알려주면 정확하고 신속한 구조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대비한 등산용 구급낭은 겨울철 산행에서 더욱 요구되는 필수품목이 되고 있다.

준비된 자만이 들어서는 설국(雪國)

겨울산은 다른 삼계절처럼 별 준비 없이 즉흥적인 결정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추위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며, 추위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장비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경비 지출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겨울산은 그 값을 치를 만한 매력을 가진 곳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할 것이다.

글 사진 허준규 <사람과 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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