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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문명간의 상호인식’주제로 제45회 전국역사학대회 열려
[학술대회] ‘문명간의 상호인식’주제로 제45회 전국역사학대회 열려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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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4:00:47
작년 9월 11일 미국에서 있었던 일련의 테러리즘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대한 ‘이슬람의 반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세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후 서방국가의 보복 테러리즘이 이어지면서 서구문명의 패권과 이에 도전하는 주변문명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 왔으며, 다른 문명간의 반목과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규명이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건국대에서 열리는 제45회 전국역사학대회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답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역사학대회의 기조발제 주제가 바로 ‘문명간의 상호인식’이기 때문. 작년 9·11 테러 이후 최초로 열리는 역사학 대회이기 때문에 ‘문명’이야말로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할 화두이다. 역사학대회 대회장을 맡은 역사학회 이주영 건국대 교수는 “작년 9·11 테러 이후 문명들의 ‘충돌’과 ‘공존’이란 문제가 급격스럽게 떠오르게 된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이번 역사학대회의 성격을 설명한다.

서구 패권의 첨병이 된 기독교

기조발제에서는 한국의 대외 인식, 중국의 서구 인식, 서구의 타자인식에 대한 조망이 이어지게 된다. ‘한국사에 있어서의 중국화와 서구화’를 발표하는 이성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사의 문화적 특성을 토착문화에 외래문화를 용해시키는 과정으로 설명하려 한다.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중국화와 서구화야말로 우리 문화사의 필요불가결한 과정으로 본다. 이런 해석은 그동안 너무나 낯익어서인지 古拙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화과정을 비교적 지속적으로 이어온 반면 일본은 한국을 통한 중국화의 계기가 약해진 고대 이후 토착화의 과정을 겪었으며 결과적으로 이것이 서구화를 위한 조건을 더욱 수월하게 했다고 보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반면 ‘중국에서 본 서양-전통시대를 중심으로’를 발표하는 최소자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과 서구의, 결과적으로 불행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최 교수는 18세기까지 중국에서의 천주교는 중국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인 접합을 시도하려 했던데 반해, 19세기 개신교는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시키려 하면서 정치, 경제, 군사 논리에 의해 충돌과 예속화라는 형태의 20세기로 나가게 됐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서구인은 타자를 어떻게 봤는가. ‘유럽인들의 이슬람관-오래된 편견, 변화하는 선입견, 고안된 타자관’을 발표하는 박용희 서울대 교수는 문명간의 충돌, 특히 이슬람과 유럽문명간의 대결을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헌팅턴 식의 사고는 서구문화의 패권 위기의식과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자폐증’에 걸린 유럽觀 역시 옥시덴탈리즘과 같이 편향된 시각을 낳을 가능성이 큼을 경고한다. 결국 현상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언급한 표현대로라면, 타자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타자성을 확정하고 물화하려 하지 않는 것, 타자에 대해 하나의 결정적 인식틀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서로 다른 문명이 서로를 인식하는 데 대한 최선의 대안은 ‘주어진 맥락 속에서 열린 시선을 지향하는’ 방법에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근대 서구의 타자인식과 서구중심주의’를 발표하는 유재건 부산대 교수는 서구의 타자인식 방법에 대한 근대성과 포스트근대성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서구적 주체들이 형성한 근대성은, ‘미완의 기획’이라는 하버마스의 논의가 무색하리만큼, 식민주의를 양산해온 ‘자기 모순에 가득찬 기획’이다. 마찬가지로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여러 가지 연구들 역시 계몽주의적 서사가 내재한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해부하는데는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었지만 보편사적 전망을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견고한 것은 녹아없어진다’는 버만 식의 성찰도 지적 공허감을 더해갈 뿐이다. 유 교수는 “근대라는 특정한 시간대에서 일정한 보편성의 토대가 되는 하나의 역사적 시공간으로의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 합리적 접근”이라고 말한다. 세계체계론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유 교수는 그동안의 관심대로 미시적 접근을 넘어 다시 총체적 상을 재구성할 것을 역사학계의 의제로 제안하고 있는 것.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접근방식 아쉬워

그러나 ‘미네르바 부엉이’식의 아쉬움도 크다. 이미 정치학계나 사회학계의 경우 ‘9·11 이후’에 대해서 비교적 민첩하게 국제관계의 변화와 시민사회의 대응에 착목한 반면, 변화의 단초를 제공해야할 역사학계가 문명충돌론이나 오리엔탈리즘론과 같이, 기존의 논의틀로 설명하려 한다는 것은 역사학의 실천적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나치즘과 세계대전의 폐허로부터 역사학 교과서가 새롭게 씌어졌듯이 ‘9·11 이후’의 역사학이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술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권진욱 기자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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