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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가치 풍부한 금석학 … 연구인력 적어 아쉬울 따름”
“학술가치 풍부한 금석학 … 연구인력 적어 아쉬울 따름”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1.01.0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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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동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동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고대사, 특히 통일신라 이전의 典籍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금석문은 그 자체로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조동원 성균관대 명예교수(사진·사학)는 전국에 산재한 금석문을 40여년 동안 조사·정리해 『한국금석문대계』(전 7권)를 20년에 걸쳐 간행(1979~1998)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제작·수집한 금석문 450여점을 대학 박물관에 선뜻 기증한 이유로 “자료는 공개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기증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번 기회에 성균관대 박물관에 영구  보관하게 돼 마음이 든든하다. 학계에 좋은 연구 자료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조 교수의 첫 탁본 조사는 지난 1970년 경상남도였다. 유신시절 해묵은 지도를 들고, 군화를 신고 남루한 옷에 배낭을 짊어지고, 화선지를 말아서 들쳐 멘 모습에 간첩신고를 당하기도 여러 번. 반평생을 탁본과 금석문 연구에 매달렸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원형에 어떠한 손상도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탁본할 때 돌이 나쁘면 솔로 두드리면 안 된다. 우리나라 조각 대부분은 화강암이기 때문에 먹이 한번 스며들면 지워지지 않는다. 한지를 2~3장 덧대면 괜찮지만, 한 장만 붙여선 절대 안 된다.”

『한국금석문대계』 전 7권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7년 계획으로 1977년 전라남·북도에서 시작해 1978년 충청남·북도, 1979년 경상북도, 1980년 경상남도(부산)와 제주도, 1981년 경기도, 1982년 서울, 1983년 강원도 순으로 총 1천200여종을 탁본 조사해 782종을 최종 정리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한국엔 고대 전적과 문헌자료가 매우 적다. 반면 금석문은 작은 글자 하나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250여종 정도가 알려졌다. 조 교수는 “금석은 책에 없던 것을 알 수 있는 1차 자료로서 고대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광개토대왕비가 웅대한 고구려 영역과 당시의 연호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진흥왕 적성비를 통해 신라 영역이 단양까지였음을 알 수 있는 식이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다. 조 교수는 “서적의 경우 필사하는 과정에서 빠트리거나 글쓴이의 주관이 개입되기도 하지만, 금석문은 원 자료인 돌을 깨트리지 않는 한 1차 사료로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고려시대 금석문은 선사비 60종, 고려 묘지명 330종 등 700여종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금석문 탁본을 비롯해 다양한 한국의 문양이 총망라됐다. 조 교수는 서산 마애삼존불상, 상원사 동종,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주악상,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등을 인상 깊은 문양으로 꼽았다.
육안으로 판별이 어려운 문양이 탁본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탁본은 미술사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조 교수는 “안평대군 글씨 등 眞迹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금석문을 통해 옛날 명필들을 확인하는 한편 중국 문자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어 서예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 말했다. 금석문은 이밖에 고대 이두연구, 문체·문자연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술가치가 풍부한 반면 그는 “금석학자를 양성해야 하는데,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대학원, 학부에서 금석학 수업을 강의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아쉬움이다. “금석문은 돌 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축약해 쓴 것이기 때문에 고사를 인용하거나 난해한 한문이 있다.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전문요원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 교수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금석학 연구를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금석학에 대한 논문이 있지만 개설서가 전혀 없다. 힘이 닿으면 개설서를 쓰는 게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원광대 박물관장,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등을 거쳐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학생처장, 박물관장, 인문사회캠퍼스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금석문대계』, 『고려도경』 등이 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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