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주의’에서 벗어나기 … ‘9·11 이후 세계사의 구조’ 체계화 시도
‘대국주의’에서 벗어나기 … ‘9·11 이후 세계사의 구조’ 체계화 시도
  • 이혜진 일본 통신원·한국문학
  • 승인 2011.01.0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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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석학들의 새해 화두

2011년을 맞이해 일본의 각종 문예지는 석학들의 인터뷰와 대담을 신년특집으로 기획했다. <문학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베헤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문화단체연합)’활동가이자 『사상의 과학』 편집자로 알려진 쓰루미 순스케의 인터뷰가 게재됐다. 쓰루미는 일본의 현 상황을 ‘국민적 규모의 티파티’로 규정한다. 그것은 일본 국민에게 깊이 잠재돼 있는 ‘대국주의’라는 공동환상에서 기인하며, 도쿄대를 비롯한 일본의 대학들이 그 환상을 더욱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 또한 전후 도쿄재판에서 국제법상의 책임이 무죄로 판결된 것에 대해 일본 국민이 그것을 도덕적 책임의 무죄로 간주하는 것은 ‘대동아전쟁’을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하려는 행위이며, 이것은 일본의 내일을 생각할 때 큰 장애가 된다고 역설했다. 쓰루미는 일본의 미래를 생각할 때 메이지 이후의 ‘대국주의’에서 벗어나 각자의 작은 언덕에서 나라를 가꿔가는 ‘새로운 풍토기’를 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쓰루미의 견해와 유사한 형태로 이론적·실천적 학술 활동을 지향한 것이 『격투하는 사상』(2010)을 출간한 모토하시 테쓰야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격투’의 경험을 재정의하고 재이용한다는 취지하에 신자유주의와 신국가주의의 구조적 공범성을 조준해 세계화라는 상황에서 知의 ‘오프사이드 트랩’이라고 할 만한 사태를 자각적으로 넘어서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세기 최초 10년의 끝에서 생각한다’라는 강연회에 따르면, 이 책은 정치철학, 젠더, 영화비평, 교육사회학, 미학, 문학, 철학의 각 전문 영역에서 격투의 양식을 시도한 연구서로 소개됐다. 이 그룹 중 니시야마 유지는 1983년 자크 데리다가 창설한 민관협동 연구교육기관인 ‘국체철학 콜라주(CIPH)’의 다큐멘터리 ‘철학에 대한 권리’를 만든 감독이자 연구자이다. 그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국제철학학교의 독창적인 예를 통해 데리다가 주창한 탈구축의 핵심 주제인 제도의 논의, 특히 철학과 제도의 관계, 대학, 인문학, 철학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했다. 한국과 미국, 중국, 홍콩, 프랑스에서도 상영한 바 있으며, 현재도 전 일본 순회 상영을 하고 있다. 니시야마는 ‘철학은 활동하는 것이다’라는 모토 아래 知의 제도화에 정면대결하고 사고와 저항의 힘을 구축하는 다양한 철학적 실천을 도모하고 있다.


<중앙공론>에는 ‘9·11 이후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과 사토 마사루의 대담이 실렸다. 이것은 가라타니의 최근작 『세계사의 구조』(2010)에 대한 간략한 배경지식이 되기도 하다. 이 책은 교환양식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점검함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를 초월하는 전망을 여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사회구성체에 대해 생산방식을 바탕으로 (A)원시적 (B)아시아적-고대적-봉건적 (C)근대로 도식화했다면, 가라타니는 이를 교환양식에 기초한 사회구성체로 파악함으로써 A(互酬), B(탈취와 재분배), C(상품교환), D(X=A를 고차원으로 회복하는 것, 보편종교)로 유형화한다. 이는 사회의 교환양식에 대응해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A)네이션(국가 이전)-씨족사회 (B)국가-세계=제국 (C)자본제사회-근대국가 (D)미래사회-세계 공화국. 가라타니에 의하면, 교환양식(D)는 보편종교로 나타난다. 이것은 교환양식 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한 것으로서, 세계사의 이상이라는 칸트의 통합 조정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이미 『트랜스크리틱』이나 『세계 공화국으로』에서 제시한 것이지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그것을 현재의 현실세계에 대한 역사 분석에 적용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라타니는 스스로 이 책에 대해 “평생 처음으로 이론적 체계화”의 작업으로 평가했다. 즉 『세계 공화국으로』에서 제시된 이념, 고고학, 역사학, 철학, 정신분석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이용하고 강화한 가라타니 철학의 체계화로서의 의의를 갖는 것이다. 이 책은 가장 먼저 한국어 번역이 결정됐다.

이혜진 일본 통신원·한국문학

도쿄외대 총합국제학연구원 연구원이다. 한국근대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외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 세계 식민지 역사와 문화연구 동향 및 인물동향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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