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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성을 대변할 이들은 누구일까
우리의 감성을 대변할 이들은 누구일까
  • 이상용 영화평론가
  • 승인 2011.01.0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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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문화예술계 지도] 영화, 양극화를 넘어서

지난 10년 동안 영화 산업의 최대 변화는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의 자본 위주로 제작, 배급, 상영 시스템이 독과점 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90년대 중반 새로운 기획영화와 함께 자리 잡았던 영화 제작사가 에이전시로 전락해 버렸고, ‘자본’의 투자가 맨 앞자리에 서는 만큼 자본의 회수라는 것이 영화 산업의 일차적인 목표로 고착됐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양극화 경향을 낳았다. 당분간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감독들이 1만 명 관객을 돌파하면서 의미 있는 작은 영화를 만드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대작 영화를 통한 제작방식이 계속 모색될 것이다.
양극화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대작 영화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미 홍보와 마케팅 전략으로 상당부분 노출하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일찍 끌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 독립영화의 리스트를 이 원고에서 적어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출연진이 대거 등장하는 대규모 전쟁영화이다.
「화려한 휴가」를 만들었던 김지훈 감독의 「제 7광구」는 해양에서 펼쳐지는 스릴러 영화이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 역시 전쟁 드라마다. 전쟁, 해양스릴러와 같은 장르는 대기업의 자본력과 블록버스터로 기획되지 않으면 시도되기 힘든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블록버스터들 사이로 여전히 ‘쎈’ 영화라고 불리는 잔혹 스릴러들이 중간급의 제작 규모를 이루고 있다. 올해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드러나듯이 최근 한국영화의 한 축은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피가 난무하는 장르의 영화들이다. 유괴, 살인, 강간 등 한국 사회의 폭력적 현실을 장르적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이현승 감독이 오랜 만에 메가폰을 잡은 「푸른 소금」을 비롯해 소위 ‘포스트 추격자’라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이 시도된다. 한국 영화가 공포와 전율을 전달하려고 하는 노력은 ‘상업적인 장르성’과 ‘작가적인 장르성’을 절충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화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중성도 지니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선사하려는 절충적인 선택은 당분간 많은 영화들을 이끄는 좌표가 된다. 

우리의 지난 역사도 고스란히 한국영화의 주요한 관심사이다. 대구에서 실종된 ‘개구리 소년’을 다룬 이규만 감독의 「아이들」을 필두로 역사를 자유롭게 재구성한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 청각장애인 야구부의 실화를 다룬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와 같은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접속을 시도하는 한국영화들이며 시대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는 자화상의 영화들이다. 리얼리티의 환기는 중요한 한국영화의 관심사였고, 이러한 리얼리티를 통해 장르적 판타지를 구현하거나 인간적인 감동에 호소해 왔다.

문제는 새로운 영화 세대의 구현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외에서 동시에 주목받은 한국의 감독들인 봉준호,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는 대체로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해 2010년까지 주요한 축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데뷔한 이들 중에서 우리의 감성을 대변할 이들이 누구일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시작됐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는 젊은 감독들의 자산이 꽤 많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서이기보다는 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꾸려지기는 했지만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을 비롯해 지난 십년 간 등장한 젊은 감독들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에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기획영화에 몸을 담그며 자신을 절충할 것이고, 일부는 여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영화를 만들어 낼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선택인데,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드는 젊은 감독의 층이 두터워 지기는 했지만 이들이 관객과 더불어 주류 영화산업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지평을 위한 주요한 관건 중 하나이다. 2011년의 한국영화가 아주 크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양극화의 극단 속에서도 서로에게 긴장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1997년 <씨네21> 신인평론상을 수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고, 평론집으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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