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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현미경, 그리고 나무 문화재
[원로칼럼] 현미경, 그리고 나무 문화재
  •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목재조직학
  • 승인 2010.12.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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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목재조직학
필자의 전공은 나무의 세포 형태를 공부하는 목재조직학(wood anatomy)이다. 현미경으로 나무속 깊숙이 감춰둔 세포의 비밀을 찾아들어가는 연구다. 재미없고 따분할뿐더러 각광을 받을 만한 분야도 아니다. 그래도 30년 넘게 놓지 못하고 빠져 들 수 있었던 것은 순수 학문적인 연구만이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문화재와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는 옛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도구의 재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됐고 문화재도 상당 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나무는 종류에 따라 어느 정해진 지역에만 분포하는 자람 특성이 있다. 따라서 나무의 재질을 분석해 보면 나라와 나라사이 혹은 특정 지역 간의 교역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나무는 수 백 년에서 때로는 천년이 넘도록 한곳에서 자란다. 자라면서 1년을 단위로 자신이 처한 자연환경을 종합적으로 나이테 속에 기록해 둔다. 무한 용량의 ‘자연식 하드 디스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서 나무는 선조들의 삶을 지켜온 ‘현장목격자’다. 5천년 민족의 삶의 가운데는 언제나 나무가 빠지지 않는다. 집짓고 음식 해 먹고 살림살이를 만드는 인간생활 모두에 나무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 이어서다. 그래서 선조들과 삶을 같이 했던 옛 나무의 사연들은, 바로 우리 역사의 편린을 알아내는 단서가 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연구실 구석에는 역사가 새겨진 문화재 나무들의 작은 표본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해 갔다. 멀리 석장리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함께 있던 나무에서 청동기시대 살림터에서 나온 나무, 임금님들의 관재, 옛 배를 만드는 데 쓰인 나무, 각종 건축재, 글자가 새겨진 목판 등 연구실을 찾아준 손님들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나무마다 갖고 있는 가지가지 사연과 잃어버린 세월의 흔적을 밝혀달라는 주문서를 달고서 필자를 기다린다. 큰 표본이라야 손톱크기 남짓한 문화재의 분신을 붙잡고 현미경과 씨름하는 마이크로의 세계에 빠져들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은 줄 모르듯 지나다 2006년 2월 정년을 맞았다.

나무 문화재와의 수많은 인연 중에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아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이다. 경판에 현미경을 들이댄 결과는 놀라웠다. 자작나무로 만들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산벚나무, 돌배나무, 거제수나무 등의 여러 나무가 섞여있고 후박나무와 같은 남해안에 자라는 나무가 들어 있었다. 그 외 경판의 종합재질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팔만대장경판은 강화도에서 새겨서 보관하고 있다가 조선조 초에 해인사로 옮겼다’는 학설에 정면 도전을 하고 나섰다. 나무로 보아서는 남해안과 해인사 부근에서 새겼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은 필자 개인의 주장일 뿐이지만 일부 관련 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다음은 ‘잃어버린 왕국’ 백제 25대 무령왕(462~523) 棺材와의 만남이다. 1971년 무령왕릉을 발굴하고 20년이 지난 1991년 표본을 얻어 현미경 앞에 앉았다. 뜻밖에도 무령왕과 왕비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관 나무는 일본 남부지방에서 가져온 金松임을 밝힐 수 있었다. 이는 무령왕이 어릴 때 일본에서 자랐다는 역사적 기록을 증명하고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귀중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60대에 들어서면서는 문화재와의 만남에 문제가 생겼다. 현미경과의 씨름은 눈이 빨리 나빠지는 지름길이다. 점점 현미경 앞에 앉기가 어려워지면서 필자는 연구의 방향을 살아있는 문화재로 조금씩 방향전환을 했다. 천연기념물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 나갔다. 전국의 260여 곳에 이르는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사진에 담고 조사하는 일이다. 지금도 이 일은 진행형이다. 다만 운전이 점점 어려워지고 비싼 휘발유 값을 개인적으로 부담하기에는 너무 벅차, 이나마도 차츰 멀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서글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목재조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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