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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초점] 학부제 그 이후 공과대 돌아보기
[과학초점] 학부제 그 이후 공과대 돌아보기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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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3:39:38
학부제로 인한 존폐위기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자연대나 인문대 소속 구성원들에게서는 학부제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학과별 모집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을 고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모집단위 문제에 대한 외부적인 충돌이 없어 보였던 공과대들의 학부제는 과연 순항중일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학부제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전공을 접하고 인접학문, 타학문과의 시너지효과를 습득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또한 전공 선택에 앞서 전문인이 갖출 ‘교양’을 습득하도록 배려하는 것 또한 학과제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학부제의 원리적 장점이다.

따라서 현행 학부제가 성공적이었는 지의 여부는, 이러한 장점을 살렸는가에 의해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공과대학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혹은 계열 모집이라는 시스템상의 변화가, 이러한 장점을 살려내고 있는지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전공탐색 어려운 학부제

“어차피 당장 정할 전공은 아니니까, 일단은 들어왔어요. 선배들은 신소재공학을 해야 취직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감은 잘 안 잡히죠.” 성균관대 공학계열 1학년 아무개군의 말에, 취직도 중요하지만 자기한테 맞는 전공을 찾으려면 지금 듣는 수업들을 통해서 전공을 탐색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다. “공대 1학년 애들이 듣는 건 다 똑같아요. 1학년 때는 교양과목을 배우게 되어있는데, 짜여 있는 건 거의 수학. 공학개론도 있긴 한데, 대학 홍보 책자 이상으로 건질 건 없어요.”라고 답한다.

2학년 진입시기에 전공을 결정하도록 제도화된 많은 대학의 경우 학부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1학년 시기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에서 학부 1학년생들의 현재는 학부제의 현재 단면이다.

그러나 많은 공대생들은 커리큘럼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부제니까’, ‘일단 묶어 놨으니까’ 형식적으로 개설되어 때워질 뿐인 전공 탐색과목에 대한 회의를 표명한다. 여기에 일반적인 대학들이 엔지니어의 윤리나 공학의 역사·철학과 같은 교양을 공대 신입생을 위해 별도로 개설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대다수의 공대 1학년생들이 전공탐색도 교양 습득도 못한 채로 때워지는 기이한 학부제의 현실에 놓여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별도로 세부전공을 정하지 않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두 세 개의 ‘유사학과’를 하나로 묶어 놓은 모 대학 전기전자공학부의 경우, 기존학과 소속 교수들끼리 그룹화된 알력이 작용하여 정작 필요과목 개설에 장애가 되기도 하고, 질 좋은 강의로 정평난 과목에 수강 신청하기는 어려운 문제 등이 학생들로부터 제기되곤 한다.

과학커리큘럼 개편 시급

방향성을 상실한 교과목 이수도 학부제가 가져온 문제로 지적된다. 공학도 학문의 특성상 일정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세부적인 분야에 집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학과에 개설되어 있던 모든 과목들 속에서도 기초적인 과목 위주로 수강 인원이 몰리다보니, 대학원 진학 이후에야 세부 분야의 기본을 다시 세워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수해야할 과목에 대해서도, 해당 분야와 전공이 일치하는 교수의 수가 늘어난 학생의 수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공동진도/공동교재/공동시험의 방법을 동원한 하향 평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지금 2학년 때 전공을 정하게 하는 학부제냐, 아니면 졸업할 때까지 세부전공을 정하지 않은 학부제냐의 문제를 비교한다는 것은 물론 의미가 없다.

현행 학부제를 고수한다는 가정 하에서 시급한 숙제는 어떤 소프트웨어로 학부제라는 시스템을 뒷받침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많은 대학이 공간과 강의 인력을 한거번에 확충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교과 과정 개편은 학부제의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가령, 한양대의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의 수강트리는 세부 분야(예:통신분야, VLSI 분야…)마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을 줄기짓고, 코어과목, 권장과목, 필수/선수과목 등으로 제시해 줌으로써, 폭넓은 선택의 폭 속에서 일종의 방향타 구실을 해준다. 또한 전공탐색 과목으로 개설된 공학개론 외에도, 공학기술과 사회, 기술작문, 기술의 역사 등의 교과목을 기존의 공대 개론과목들과 함께 공과대학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는 서울대의 시도 역시, 편협하게 기능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공학교육에서 완충작용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기왕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전공을 폭넓게 공부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학부제라면, 이수할 교과과정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박소연 객원기자 shant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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