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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강신주 강사의 ‘도올비판’을 비판한다
[반론] 강신주 강사의 ‘도올비판’을 비판한다
  • 유수철
  • 승인 2002.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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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3:32:08

이 글은 지난 225호에 실린 강신주 연세대 강사의 ‘김용옥의 동양학은 우리의 이론일 수 있는가’라는 글에 대해 유수철씨가 보내온 반론입니다.

이젠 식자들에게선 어느 정도 상식화돼버린 듯한 감마저 주는, 학계의 ‘식민성’과 그에 따른 동료학인에 대한 인색한 비평풍토 속에서, 교수신문의 우리이론을 재검토해본다는 기획은 특히 가뭄에 단비마냥 시의적절한 것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비록 첫걸음일망정, 지식인이라면 최소한의 지적성실성을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가혹해보이진 않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강신주 선생의 도올 비판은 과연 지적성실성을 다한 토대 위에서 가해진 비판이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는 사실부터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도올에 대한 주된 비판은 ‘체계정합성’에 놓인듯 하다.

아니, 솔직히 말해본다면 그가 가한 비판의 논거는 오로지 이것 하나밖엔 없지 않은가 싶다. 우선 그는 도올이 ‘기철학’의 최종범주를 ‘시간’으로 설정했다고 임의로 해석하고는 다시, 도올은 ‘시간’을 ‘기’의 양태범주로 설정해서 결과적으로 그의 ‘기철학’ 체계가 시작부터 체계정합성을 상실했다고 멋대로 주장하고는 이후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우선 ‘기철학’의 형이상학적 층위에서의 최종범주를 ‘기’로 보는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과연 강선생이 비판한대로 도올은 ‘시간’도 최종범주화했는가. 그가 ‘유일’하게 논거로 삼는 도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의 기철학의 과제를 쉬운 말로 직언하면 다음과 같이 언명된다: ‘우주와 인간의 모든 것을 시간 속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이 때 ‘모든 것’이라 함은 완벽한 전칭이며 특칭이 아니다. 이 한 명제가 고수될 수 없다면 기철학은 사망을 선고받는다.”
어떻게 이 문장에서 도올이 시간을 최종범주화했다고 새기는지, 나로선 달밤에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 문장은 말그대로 형이상학적 체계정합성을 논구했다기보다 ‘기철학’의 ‘과제’를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보다 차라리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논급하는 것으로써 에둘러 강선생의 견해를 비판해보자.

가령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계기’와 ‘시간’의 관계를 보자. 어디, 화이트헤드가 그 둘의 개념을 모두 최종범주화해서 소위 범주의 혼란을 저질렀다고 보시는가. 내가 굳이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체계까지 언급하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겠지만 도올의 ‘기철학’이 그에 기대는 바가 자못 크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대략 비교해보면,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계기’를 도올은 그의 ‘기’라는 개념으로 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市井의 생활인이 아닌 지식인이라면 도올의 이론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선 그의 저작이나마 제대로 다 읽어내고, 게다가 화이트헤드의 철학과의 기본적인 유비 정도는 파악해두어야 비로소 의미있는 비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강선생의 비판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듯 하다.

그 밖에 강선생이 주장하는 바를 좀 더 들여다보자. 그는 말하기를 도올의 철학이 이론적 정합성은 상실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대한 각고의 반성이라면 비록 좌절된 이론이나마 ‘우리’의 삶에서 기원한 자생적 이론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가 있겠다고 말하며 그러나 도올의 철학은 단지 ‘우리’가 아닌 한자문명권이라는 패권적, 제국주의적 경향에만 일조할 것이라고 짐짓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도 그가 가한 비판은 도올에 대한 조야한 인식을 근거로 한 인상비평에 가깝다. 역시 여기서도 그가 ‘유일’하게 논거로 내세우며 드는 도올의 언급부터 보자.

“기철학이 동방인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소개함을 소임으로 삼는다.”

즉, 왜 ‘우리’가 아닌 ‘동방인’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강선생은 동방인을 한자문명권으로 해석하고 급기야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의 비교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그저 그의 비약의 기술에 대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도올은 단지 한국사회의 봉건적 전근대성과 퇴행적 탈근대성이 절묘하게 빚어놓은 시대의, 계급의, 세대간의 격절의 원인을 학인답게 보다 메타적으로 성찰하여 철학적인 차원에서 동서간의 절맥을 생산적으로 복원시켜보겠다는데 자신의 철학의 소임을 두고 있을 따름이다.

강선생의 이 부분에 있어서의 비판은 뚜렷한 논거 없는 비약으로 점철돼 있다고 판단된다. 강선생의 성찰섞인, 건설적인 재비판을 기대해본다.

유수철 jinha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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