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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전시회’ 같은 학술대회 왜 하는 걸까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전시회’ 같은 학술대회 왜 하는 걸까
  • 정성훈 서울시립대·철학
  • 승인 2010.12.20 15: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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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 루만이라는 오지랖 넓은 학자를 다룬 덕택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난 2년 동안 철학은 물론이고 법학, 사회학, 지리학 등 여러 분과학문들의 학회와 학술대회에 참가해왔다.

처음에는 학회의 월례발표회와 공식 학술대회의 차이를 몰라서 왜 어떤 곳은 40~50분 발표에 1시간 가까운 토론시간이 있는데 어떤 곳은 발표와 토론을 합쳐서 30분도 주지 않는지를 잘 몰랐다. 좀 지나서야 1명당 할당 시간이 극히 짧은 행사가 주로 학술대회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에 4명 정도가 발표하며 비교적 토론시간이 많아 학회의 발표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학술대회도 있지만, 큰 학회나 여러 학회 연합으로 이뤄지는 대형 학술대회는 하루에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50~60명이 여러 세션으로 나누어 발표한다.

논문 한 편 길이의 1/3도 소개하지 못하는 간략한 발표, 심지어 대회 당일까지 완성된 원고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 발표에 이어, 지정논평자가 5~10분 정도 논평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발표문을 미리 읽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질의는 단순 정보 이해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많고 오해에 기초한 것도 많다. 한 두개의 질의와 응답이 이어지고 나면 사회자는 “아쉽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종합토론 시간에 논의를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1시간 내외로 설정돼 있는 종합토론도 30분 내외로 축소되기 일쑤다. 게다가 여러 개의 발표가 하나의 종합토론에서 잘 ‘종합’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고 나면 사회자는 또 아쉬운 것은 뒤풀이로 넘기자고 하는데, 뒤풀이에 가보면 발표자들 중 몇몇은 이미 가고 없으며, 그날의 대회 주제와 별 관련 없는 끼리끼리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에게 학술대회란 ‘이런 학자가 데뷔했으니 얼굴 한번 보러오세요’ 혹은 ‘이런 신기한 이론 공부한 사람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홍보해야 할 것 같은 전시회로 보인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이유

학술논문 DB를 이용하면 학자별, 주제별로 최신 연구성과들을 검색해 볼 수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에서 학자들이 직접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면 구어 커뮤니케이션이 문자 커뮤니케이션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기능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학술대회란 학자들 간의 사교와 화합의 자리로 기능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위해서라면 굳이 논문 발표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다과와 식사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 또 다른 분들은 학술대회가 글로 읽기는 힘들거나 귀찮은 내용들을 하루에 여러 편 골라 들을 수 있는 실용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실용성을 높이려면 아예 강연회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

학술대회의 고유한 기능은 대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만 가능한 학적 토론일 것이다. 즉 주장 한번, 반박 한번에 머물지 않는 반론들의 자기생산이 가능한 연쇄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나는 이상적인 학술대회는 하나의 발표에 충분한 토론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하루에 가능한 발표 숫자가 너무 적어지고 그래서 학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대안을 하나 제시해보자면, 발표시간이 없거나 5분 정도의 모두발언 직후 질의응답과 토론으로만 이뤄지는 학술대회는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이 대안은 모든 참가자들이 미리 논문을 읽고 와야 한다는 이상적 상황을 전제로 한다.

혼자 생각해보는 이상적 상황 

우선 대회 몇 주 전에 논문이 완성돼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통해 배포돼야 하는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참가자들이 실제로 읽고 오느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이상적일까. 학위를 받기 위해 매우 긴 세월 동안 글 읽기 훈련을 해온 학자들에게 미리 읽고 오는 과제를 부과하는 것이 과도한 걸까. 궁금한 것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토론 준비해서 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학자들에게 부당한 요구일까. 이런 이상적 형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토론이 중심이 되는 학술대회가 많아져서 학술대회 참가가 좀 더 흥미로운 일이 됐으면 좋겠다.

정성훈 서울시립대·철학

정성훈 서울시립대·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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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2010-12-21 23:27:33
우물!
학술대회!
논문!
뒷 전!
임원 홍보성 많음!

논문!
홍수!
학술지 읽고 오는 사람 10% 될까!

정성훈 교수님!
생각!
발표 5분!
질의응답!
토론!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