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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외교사학자들에게는 ‘부메랑’?
국제관계·외교사학자들에게는 ‘부메랑’?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12.2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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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학계에 어떤 파장 불러올까

위키리크스가 최근 25만건의 미국 외교 전문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위키리크스 때문에 학자들의 학문 활동 영역이 좁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니얼 드레즈너 터프츠대 국제정치학 전공 교수(사진)는 최근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에 기고한 ‘위키리크스가 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Why WikiLeaks Is Bad for Scholars)’에서 “위키리크스 때문에 정부는 정보를 더욱 강하게 단속하고, 기록으로 남겨지는 정보가 줄어들어 정치학자와 외교사학자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키리크스는 외교정책 결정과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소스가 될 수 없다”며 균형적인 시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레즈너 교수의 글을 요약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은 정보 접근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다. 정부는 외교문서들을 수 십 년간 비공개로 보관하다 25년 후, 혹은 그 이후에 ‘미국의 외교관계’와 같은 책자형태로 공개한다. 학자들은 그러나 어딘가에 ‘일급비밀’이 담긴 메모가 있어서 자신들이 세우는 각종 가설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 찾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게임판도를 바꿔 놓을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최근에 발표한 25만건의 외교문서 가운데 일부는 비교적 최근 사건을 언급하고 있고, 정치학자들이나 외교사학자들이 자료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점보다 훨씬 더 빨리 공개됐다. 짧게 보면 국제정치·국제관계학자들에게 위키리크스는 ‘금광’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길게 보면 위키리크스가 촉발한 이른바 ‘케이블게이트’는 나와 같은 학문영역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학자들은 적절한 시각·관점을 갖고 위키리크스를 신중히 활용해야 한다. 위키리크스는 국가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단편을 보여줄 뿐이다.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조직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방부도 있다. 위키리크스는 하나의 소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소스가 될 수는 없다.

한 예로, 2009~2010년 자료 일부는 중국 관료들이 북한과의 동맹에 실증을 느끼고, 심지어 남한 중심의 통일, 미국과의 결속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최근 6개월간의 중국의 행동에 비춰볼 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3월 한국 군함이 침몰한 사건에 대해, 북한의 경수로 개발에 대해, 그리고 최근 북한과 남한 간 포격 사건에 대해 중국이 보인 조용한 반응을 보면, 베이징 실세들이 조만간 평양의 파트너를 버릴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힘들다.

위키리크스를 만든 줄리안 어센지는 최근 성명에서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월 “우리는 투명한 행동가들이며 투명한 정부가 정의로운 정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 전체의 행동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어센지의 생각은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정부의 투명성을 보다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편협한 시야에 불과하다. 정부조직은 보안에 굴복하지 않는다. 미국의 외교 채널들은 정보의 파급력을 더 강하게 단속하는 방식으로 위키리크스에 대응할 것이다.

브래들리 매닝(위키리크스에 사상 최대규모의 미국 기밀을 넘겨준 군인)같은 사람이 또 나올 수도 있지만, 누군가 브래들리 매닝과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는 이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더 많은 정보들이 재분류될 것이고,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며, 그러한 정보가 대중에 공개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으로 남겨지는 정보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국무부 당국자들은 이메일보다 전화사용을 택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것과 같은 ‘정보 더미’들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이 누적되면 결국 정치학자와 외교사학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을 알기 위해 조각들을 모아서 짜 맞추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줄리안 어센지, 그리고 투명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다른 이들은 그들 자신이 미국 정부가 걸어 잠근 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위키리크스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다음 세대 학자들은 그 부메랑에 머리를 맞을지도 모른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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