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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 위기의 계절, 知性은 어떤 黃道를 그리고 있을까
[계간지 리뷰] 위기의 계절, 知性은 어떤 黃道를 그리고 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12.2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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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건을 가리켜 ‘영원한 역사의 미궁’이라고 진단한 사람은 세계체제론을 주창해왔던 예일대 석좌교수 이매뉴얼 월러스틴이었다. 미궁이 주는 그 답답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한, 방향을 읽을 수 없는 전망이 지금 겨울을 더 차갑게 얼어붙게 하고 있다. 역사의 방향이 시계제로 상태일 때, 知性은 어떤 黃道를 그리고 있는 걸까. 이 계절 눈에 들어오는 계간지들은 <문화과학>(64호), <오늘의 문예비평>(79호), <역사비평>(93호), <진보평론>(46호), <창작과비평>(150호) 그리고 <황해문화>(69호)다. 덧붙여 반년간지 형태로 발행되고 있는 학술교양지 <안과밖>(29호), <지식의 지평>(9호)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과학>은 특집 ‘마음의 정치학’을 내놓았다. 편집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우리가 이 번호에서 ‘마음의 정치학’이라는 생소한 화두를 들고 나온 이유는 현재와 같은, 앞으로 더욱 커질 카오스적 상황 속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 의문들에 보다 체계적으로 답할 수 있고, 주체 양식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진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조정환, 이동연, 정정훈, 이도흠, 강내희, 심광현의 논의를 실었다. <문화과학>에서 좀 더 흥미롭게 읽히는 글은 김동광(고려대 과학기술연구소)의 「상업화와 과학기술지식의 생산양식 변화」이다. ‘체계적인 지식 비생산(nonproduction of knowledge)’을 고민했다.

새로운 정치학을 찾아서

‘법의 테두리를 넘는 힘과 문학의 교호’를 특집으로 내건 곳은 <오늘의 문예비평>. 법의 폭력적 전도를 목격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면서 법의 부적절한 실존을 성찰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마사 누스바움의 「민주 시민과 서사적 상상력」을 비롯한 김항, 김정한의 글을 실었다. 누스바움은 문학, 특히 소설을 매개로 시민이 행하는 법적 선택에 관여하는 ‘감성’과 ‘공감’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며, 문학적 상상력이 곧 시민적 상상력이 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했다. 또 다른 특집 ‘우리 시대 고전이란 무엇인가’는 새삼스러운 특집은 아니나, 근래 고전 교육의 중요성을 재강조하고 있는 대학 안팎의 흐름과 연결되는 질문으로 읽힌다. 김영민, 조정환, 박성창의 글을 실었다.

올해 포괄적인 과거청산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윈회’를 비롯해 많은 과거청산 관련 기구들의 활동이 종결된다. <역사비평>은 이 문제를 놓치지 않고 파고 들어갔다. 특집 ‘미완의 과거청산-성과와 쟁점, 과제’가 그것이다. 이들이 ‘미완’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자명하다. 시민사회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이 질과 차원을 높여나가며 계속돼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안병욱, 정현백, 이준식, 한성훈, 안김정애의 글들을 수록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콘텐츠학과)의 글 「‘파리의 조선 무희 리진’의 역사성」도 놓치기 아깝다. 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 ‘리진’은 주한 공사 프랑댕이 창조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를 두고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온 허구’라고 비판했다.

<진보평론>은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를 특집으로 꾸렸다. “정보화, 세계화 등 최근의 역사적 변화의 추세 속에서 노동해방의 이념은 재구성돼야 한다”는 당위성이 특집의 동력이다. 대량실업, 비정규직 확대, 청년 실업 등의 현안들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가치, 불균등한 자본의 지배형태 그리고 제3의 노동자계급들」(장대업),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이성백),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박영균), 「페미니스트 노동 개념의 함의」(문은미),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강연자)가 실렸다. 특히 박영균 건국대 HK 교수는 노동에 대한 찬양과 근대적인 성실과 근면의 덕목 대신에 삶의 ‘향유’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욕망의 계열화 속에 있는 주체의 형성을 벗어나 다른 계열의 실재적 삶을 창출하는 유물론적 정치학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이슈 대신 ‘한국문학’을 키워드로 들고 나온 곳은 <창작과비평>이었다. 이들이 창작-비평의 소통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해 왔기 때문에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를 특집으로 내걸었다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이유는 없다. 백낙청, 김수이, 이경재의 글을 실었다. 백낙청 편집인의 글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은 ‘빈곤’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활력’을 발견해야 한다는 역설로 읽힌다. 그는 “2010년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및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한 거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학의 정치성’을 화두로 한 일련의 비평 논의를 짚어가면서, 이와 교호하는 창작의 세계를 진단한 그는 “한국사회가 87년체제를 드디어 넘어설 정치적·도덕적 역량을 보여준다면 문학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진술했다.

한국문학, 지방, 그리고 중국

<오늘의 문예비평>처럼 지방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황해문화>는 특집으로  ‘21세기 한국사회, 지방은 어디에 있나’를 마련, 논의를 밀고 나갔다. 이상봉, 조명래, 김언호, 김주완, 김달수, 김곰치, 신성희, 류제헌의 글과 좌담 ‘지방에서 산다는 것, 희망은 있는가’(이희관, 김광수, 박병윤, 원기준)를 배치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한국의 도시화와 지방의 운명」에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1990년 이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도시가 지속적으로 팽창하면서 수도권의 ‘초광역화’로 인해 90%의 도시화율이 완화되지 않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 결과 ‘비수도권 지방’은 내생적 발전역량을 거세당하는 수도권의 ‘내부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미문학연구회가 내놓은 <안과밖>은 특집으로 ‘세계문학을 다시 묻는다’를 앞 세웠다. 백낙청, 윤지관, 유희석의 글을 소개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세계화와 문학」에서 고전적 논의에서 출발해 까자노바, 댐로쉬, 모레띠의 세계문학론들을 검토하면서 동아시아 지역문학 및 제3세계 민족문학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했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경쟁’하는 문학과 세계문학의 이념」에서 국가문학들 간의 문화적 싸움터로 변모한 세계문학의 공간에서 민족문학이 여전히 서구 보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효한 영역이라는 문제의식을 줄곧 놓치지 않고 있다.

2006년 12월 첫 선을 보인 <지식의 지평>이 꾸준히 학문 공동체와 소통하고 있다. <지식의 지평> 최근호는 특집으로 ‘중국, 우리에게 무엇인가’(이동률, 이태환, 정영록, 백승욱, 마롱, 배경한)와 ‘최근 학문의 융복합 경향’(이정모, 윤의준, 이덕환, 홍승훈, 이인아)을 마련했다.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매우 오래된 물음이다. 이들의 질문은, 미묘한 정치적 궤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압축될 수 있다.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단위체제와 호구 제약을 넘어서 나아가는 중국사회」에서 “아직도 중국 사회는 새로운 전환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내외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여러 갈등적 요소들이 좀 더 심각한 사회문제들로 확대될 가능성을 늘 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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