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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학술담론 결산] 개인주의 담론 확산, 고전熱…사회과학담론 강세 지속
[2000년 학술담론 결산] 개인주의 담론 확산, 고전熱…사회과학담론 강세 지속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0.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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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은 일종의 ‘지도 그리기’ 작업이다. 여기엔 보다 세밀하고 정치한 도상학적 방법론이 적용돼야 옳다. 그러나 신중한 기록자라도 담론들의 배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다. 기록자의 주관성은 유통되는 담론의 선택뿐 아니라 선택된 담론들의 경중을 가리는 과정에도 일관되게 작동되는 까닭이다. 결국 각각의 담론들은 기록자의 위치에 따라 근거리의 피사체와 원거리의 배경들로 자리잡는다. 일종의 원근법인 셈이다. 2000년 학술담론의 지형은 어떠했는가. 원근법주의의 오류를 무릅쓰고 기술한다면 ‘개인주의 담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동양고전이 주목받고, 사회과학 담론은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는 진술이 적절하지 않을까.

미시파시즘·탈민족주의…개인주의 담론의 확산

물론 개인주의 담론이 확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개인주의는 비판과 동화의 대상이 아니라, 실존의 궁극적 지향이자 일종의 보편윤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개인주의가 90년대 초반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90년대의 논의가 주로 서구담론의 수입을 통해 활성화됐던 것과 달리 외형상 어엿한 자생담론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계간 ‘당대비평’이 제기한 미시파시즘론, 권혁범으로 대표되는 탈근대 자유주의자들의 ‘탈민족주의 담론’(187호 5면 참조), 그리고 인권운동의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는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 등이 그렇다.
이들의 논의는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의한 거시적 억압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사회의 미시적·언술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억압의 기제들을 해부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개인주의 담론과도 격이 다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토착화된 푸코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신종’ 개인주의 담론은 ‘안티조선’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로 표출됐다(185호 12면 참조). “적과 싸우다 적을 닮고 말았다”는 임지현의 안티조선 비판, 강준만의 실명비판을 두고 “편가르기와 줄 세우기 식의 권력놀음”이라 비판한 이진우의 논리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들의 일상과 글쓰기에서 발견되는 권위적·억압적 요소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개인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던 셈이다.
그러나 개인주의 담론의 확산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 비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제기됐다. 하나는 이들의 논리가 전지구적 시장논리에 의해 위협받는 ‘평등과 연대성’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탈민족주의 담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민족주의에 억압적 요소가 내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측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역으로 현실의 냉전·분단체제를 용인하게될 위험성도 농후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와 함께 이들의 논리가 ‘탈근대성’이란 수사로 치장된 극단적 개인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유사한 지적이 당대비평 그룹의 ‘미시파시즘론’에 대해서도 제기됐다. “정치경제적 억압구조는 방치한 채 모든 문제를 내면화된 권위주의나 미성숙한 시민의식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정병기(182호 10면)와 김동춘의 비판(188호 13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권력관계’라는 고도의 추상화된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권력의 형이상학’을 만들어냈다는데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적 주체가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진보란 대체 무엇이고, 비판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점에서 임지현을 두고 ‘진보 허무주의자’라 규정했던 강준만의 지적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만은 아니었다.

지속되는 동양고전 열기 : 노자에서 공자로

지난해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올해도 이어졌다. 화제의 중심에는 항상 김용옥이란 스타 지식인이 있었다. EBS 노자강의, KBS 공자강의에는 청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김용옥 강의 때문에 귀가시각이 앞당겨졌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강의는 딴전인 채 자기자랑만 일삼는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동양고전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는 폄하될 수 없다는 옹호론이 우세했다. 김용옥은 최근 KBS로 자리를 옮겨 공자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김용옥이라는 개인의 출중함보다는 고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사회적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요컨대 현재의 격심한 불안정은 불가피하게 미래의 지위마저 위협하게 되는 바, 미래를 향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로선 자연스럽게 과거를 향해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공자나 논어(190호 14면), 그리고 상반기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원효에 관한 담론들(174호 9면)도 결국엔 급진적인 변화에 휘말려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이 만들어낸 ‘지적 신드롬’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최근의 고전열기는 지금까지 그 ‘난해함’으로 대중들의 접근을 불허했던 고전의 소유권이 사회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왠지 개운찮은 느낌을 떨치기란 힘들다. 자칫 이것이 과거를 정전화하고 이상화하는 依古主義의 덫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고전신드롬이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하게 운위되는 상황에서 돌출했다는 사실만은 흥미롭다. 인문주의가 고전의 발견과 재해석을 통해 꽃피웠던 서양의 경우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 운위되는 인문학의 위기는 기실 서양인문학의 위기일 뿐”이라 단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다. 고전신드롬이란 것도 사실은 지식인 사회보다는 일반대중들 사이에 주로 파급된 ‘대중문화현상’의 성격이 짙었던 까닭이다.

사회과학담론 강세 속 문화담론의 약진

문화담론의 약진세가 감지되긴 했지만, 올해 또한 사회과학 담론이 강세를 보인 1년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창작과 비평’, ‘문화과학’을 위시한 종합계간지의 특집·기획물 게재추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4월의 총선정국에서 6월의 남북정상회담, 후반기의 경제위기국면으로 숨가쁘게 내달린 한 해가 아니었던가. 1/4분기 지식인 사회의 논쟁을 주도한 것은 역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었다. 총선을 전후로 낙천낙선운동의 사회운동사적 의미를 다룬 학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고, 각종 저널이나 TV 토론프로그램에서는 낙선운동의 정당성 문제를 두고 보-혁 지식인 사이의 치열한 논전이 연일 계속됐다. 무엇보다 정당성과 합법성의 딜레마를 둘러싼 심도깊은 사회철학적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은 총선연대의 시민불복종선언이 가져온 성과물 가운데 하나다(174호 9면). 이 와중에 소로우의 저서 ‘시민불복종’과 존 롤즈의 ‘사회정의론’이 뒤늦게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실험과 좌절은 진보정당운동과 시민운동의 관계를 새롭게 사고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한동안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노동운동·시민운동의 관계설정 문제 같은 무겁고 진지한 논제들이 활발하게 토론됐다(179호 13면). 사회운동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관심도 높아졌다. 6월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문제에 관한 담론들도 활발하게 오갔다. 그러나 엄밀한 학적 방법론에 기댄 논의라기보다 정치평론 수준에 머무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적 논의는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정세의 진로를 둘러싸고 풍부하게 생산됐다. 논의는 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가져올 동북아 패권구도의 변화에 집중됐다. 논의는 아직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데, 중국부상론과 미국헤게모니 지속론이 경합 중이다.
한편 4/4분기는 경제위기로 다시 한번 나라가 술렁거린 기간이었다. 현대건설 부도위기, 대우차 사태 등으로 위기설이 급속도로 유포됐고 11월 2단계 구조조정계획이 발표되면서 경제위기의 원인과 처방,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적 담론들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는 시민단체의 ‘재벌개혁론’과 노동운동진영의 ‘사회화’론이 대안담론의 지위를 놓고 격돌했다.
한편으로 역사학 분야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신문화사/미시사가 주목을 받았고, 안티조선운동을 전후로 권력과 지식인 문제가 재론됐다. 문화연대와 문화과학 그룹은 문화정책문제를 중심으로 발언을 이어갔다. 가을을 전후로 문화담론의 부활을 예고하는 대규모 국내외 학술대회들이 개최됐다. ‘흔적’편집위원단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흔적’(9.23∼24)과 대산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9.26∼28)에는 피터 오스본, 나오키 사카이, 피에르 부르디외, 월레 소잉카, 마사오 미요시 등 쟁쟁한 세계석학들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그밖의 흐름들 : 50년대론, 번역문제의 학적 조명

이 외에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정치사적 접근을 탈피, 사회경제사, 문화사/미시사적인 접근을 시도한 계간 ‘역사비평’의 한국전쟁 특집(여름호)과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한 심포지엄 ‘한국전쟁의 재인식’(6.2)이 돋보였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한국전쟁은 50년대 한국사회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논의 또한 활성화시켰다. 서중석의 ‘조봉암과 1950년대’(역사비평사 刊), 김동춘의 ‘근대의 그늘’(당대 刊),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가 펴낸 ‘한국전쟁과 한국자본주의’(한울 刊) 등이 주목할만한 성과였다. 이들은 50년대가 단순한 산업화의 前史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성과 오늘날 현대사회의 모습들의 원형이 만들어진 중요한 전환기였음을 주장, 역사학계와 사회학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에 이어 50∼60년대에 활동한 국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다. 조봉암에 이어 김규식, 김철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이 시도됐다.
인문학의 위기는 여전한 화두였다. 표현인문학을 둘러싼 논쟁이 한동안 화제였고, 인문학과 과학, 과학과 종교의 만남을 다룬 학제간 연구들이 이어졌다. 번역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루려는 새로운 시도(영미문학연구회 심포지엄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10.28) 역시 주목할 만했다. 번역을 근대성의 중요한 계기로 파악한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의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刊)는 인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억’에 대한 새로운 논의(181호 16면)가 신선했고,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학문을 읽으려는 움직임도 눈에 띠었다(175호 8면).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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