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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 물씬 풍기는 압도적인 쾌감 … 라틴아메리카 그대 검푸른 근육이여
담대함 물씬 풍기는 압도적인 쾌감 … 라틴아메리카 그대 검푸른 근육이여
  • 박길룡 국민대·건축학
  • 승인 2010.12.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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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바라본 브라질 건축의 미학

건축은 끊임없는 문화교차의 결과물이며 잡종강세의 생태를 공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박길룡 국민대 교수(건축학과)에게 라틴아메리카는 흥미로운 현장이다.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잉카와 마야로부터 식민통치로 뒤틀렸던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문화교차가 일어났던 시기를 집중했다. 『남회귀선: 건축가 박길룡의 라틴아메리카 문명기행』(한길사, 2010.11)은 라틴아메리카 건축 속 문화전이의 흔적을 그려냈다. 그 현장의 한 갈피를 발췌했다.

 

브라질 건축가들은 콘크리트 공법에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 대학 시설의 중앙홀은 원래 조경이 된 실내정원이었다. 상파울루국립대 건축도시대학(조앙 아르티가스, 1961~69)
사진제공  박길룡 교수

1980년대까지도 라틴아메리카는 독재정치와 사회 차별에 부대끼며 피곤에 젖어 있었다. 저항에 지친 민중의 체념은 결국 다시 피압의 상태를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자기 근대화이다. 그런데 인간해방의 도구라 믿었던 근대성이라는 게 또 그렇다. 근대화라는 것이 사실은 서구가 제시한 함의와 척도가 지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성이란 ‘이성적’이어야 하며, ‘합목적적’이고, ‘탈역사적’이어야 한다. 세계의 어떤 문화들은 ‘감성’이 중요하고 ‘합목적’의 의미도 각기 다르며 전통을 버릴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변방의 사정이다. 이렇게 서양이 제시한 기준이 정해지면 도달 정도를 측정할 척도를 만든다.

근대화를 잣대로 지역의 문화를 재보면 충족과 미흡으로 갈라진다. ‘충족’이면 근대화된 문화이며, ‘미흡’이면 덜 떨어진 문화이다. 문화의 척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 세계가 모더니즘의 우산 아래 하나로 엮인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택도 예외도 없다. 이 연대에서 일탈하는 것은 세계로부터 소외되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전제해야 한다. 제3세계의 대부분이 20세기를 모더니즘의 구령에 발맞추느라고 소진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은 유럽이 모델이었고 미국이 기준이었으며 인디헤나에게 라틴은 숙명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당부했듯 ‘역사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역사는 세계가 부여하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들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는 근대화의 가치를 지역적 가치와 타협시키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대안적 근대성’, ‘비선형 근대성’, ‘선택적 근대성’ 등을 그려간다.

거칠지만 힘찬 브라질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토착성과 식민성을 탈색하지만, 브라질의 건축은 여전히 ‘브라질’ 위에 지어진다. 훨씬 더 큰 태양과 더 깊은 그림자, 넓은 바다와 짙은 녹음, 게으름 그러나 낙관성. 브라질 건축은 아열대의 넉넉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인디헤나·라틴 문화·근대성의 중합 거기에다 메스티소들의 다인종성이 얹힌다. 이 모두가 중첩돼 일어난 유전적 전이가 브라질 모던 스타일이다.

브라질의 근대건축은 그의 장쾌한 대지와 자연만큼이나 스케일에서 압도적인 쾌감을 일으킨다. 그 스케일의 미학이란 건물의 부피만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스팬과 콘크리트 구법의 특별함에서 온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세계를 덮치는 회색의 분말, 시멘트는 지역성을 흐리는 희석재가 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쓸 수 있는 콘크리트는 지역성의 차이를 지운다. 그러나 브라질의 근대건축은 이 거칠지만 대담할 수 있는 매질의 특성을 살려냈다.

상파울루국립대는 엄청나게 넓은 대지에 지어져 아직도 적절한 건물 밀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건축도시대학(Faculdade de Arquitetura e Urbanismo)은 캠퍼스의 중심에 위치하며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61년에 설계된 이 건축의 대담한 콘크리트 구법은 브라질 모더니즘이 가진 기술력을 웅변한다. 평면은 아트리움을 가운데 두고 외곽을 두른 장방형 구조인데, 두 개의 경사로가 3층의 동선을 서비스한다. 중정은 원래 조경이 된 정원이었으나 현재는 다목적 실내 공간으로 개조됐다.

정원이 인조 공간으로 바뀌면서 야성은 제거됐지만, 넉넉한 공간과 격자형 지붕으로부터 빛을 담는 중정에서 활달한 브라질리언의 심성이 느껴진다. 강의실은 방 구조이나, 설계 스튜디오들은 준 개방형으로 복도에 노출된다. 이처럼 내외부 공간의 경계가 흐린 것이 아열대 건축의 특징이다.


상파울루 미술관 MASP은 이탈리아 출생으로서 브라질에서 활동한 여성 건축가 리나 바르지(Lina Bo Bardi, 1914~1992)의 작품이다. 건축은 파울리스타 대로와 길게 평행하는데, 74미터 길이의 건축을 단지 네 개의 지주로 지지한다. 프리스트레스철강을 잡아당겨 고정시키는 공법으로 훨씬 강력한 인장력을 갖는다. 주로 큰 거리를 가로지르는 교량과 같은 구조물에 사용한다 콘크리트를 사용했는데 폭 12미터, 스팬 60미터이다. 이 건축은 완공되는 데 12년이나 걸렸다. 1960년대 브라질 사회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튼튼한 네 다리로 몸체를 들어 만든 필로티 공간은 도시에 개방되며 야외 전시를 비롯해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홈리스들에게 점령당하지 않도록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실내전시 공간도 초기에는 기둥과 벽체 없이 모두 터진 오픈 플랜이 기본 개념이었지만 보수적인 큐레이터들에 의해 전시벽면이 들어찬 보편적인 형식이 됐다. 지반층은 필로티이고 2층은 전시 공간이며 대부분의 특별전시는 지하에서 이뤄진다.

브라질 건축은 브라질 문화의 담대함을 표현하는 데 유럽의 모더니즘에 비해 그 방식이 거칠다. 가끔 왜 이렇게 장대한 구조법이 필요한지 납득되지 않지만, 이러한 구조 자체가 근대성을 함의하고 있다.

‘장쾌한 효과’ 상파울루 필로티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근대미술관은 도심에서부터 구아나바라 만을 향해 중심 도로를 달리다가 바다 직전에서 멈춘 위치에 있다. 이 미술관 근처에 세계대전 브라질 참전용사기념탑(Monumento Nacional aos Mortos da Segunda Guerra Mundial)을 비롯해 해안의 플라멩고 공원이 있다. 여기에서 건축가 아폰수 헤이디(Affonso Eduardo Reidy) 역시 과감한 콘크리트 구법을 구사한다.

그는 도시에서 바다를 향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이 미술관 건물의 다리를 들어올린다. 그렇게 만든 필로티는 바다가 보이는 경관을 위해 최소한의 지지체로 공간을 만든다. 그는 자유로운 전시 공간을 위해 26미터 스팬을 10미터 간격으로 짜고 전체 130미터 길이의 대담한 구체를 만들었다. 미술관은 1978년 대화재로 수장품의 대부분을 연기로 날려버렸지만, 지금도 건축의 기념비적 조형은 힘차다.

파울루 멘지스(Paulo Mendes da Rocha)의 건축도 통이 커서 대담한 몸짓과 거대한 스케일을 만든다. 구조 조형이 만드는 힘찬 역학적 거동, 프리 스페이스를 만들기 위한 큰 스팬이 그의 기본적인 형식이다. 그의 건축은 콘크리트의 ‘거칠지만 힘찬’ 성질을 극대화하는 대신 일체의 장식적 수사를 배재해 건물의 근육질이 더욱 불거진다.

상파울루의 브라질 조각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축으로서 든든한 두 다리가 육중한 가로대 60×40미터를 받치고 있다. 대단한 기력이다. 그 밑의 필로티는 미술관의 개방형 공간을 조성하는데 앞뒤 정원을 관류하는 시각적 효과가 장쾌하다. 이것이 무리를 해서라도 장스팬 구법을 쓰는 이유이다. 조각미술관이기에 작품은 대부분 정원에 전시되며 실내 전시장은 지하에 두 개의 영역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니까 이 지상의 거대한 직방형 괴체는 야외 조각 전시장과 개방형 공간을 수사하기 위한 장치이다.

상파울루 파트리아르카 광장의 캐노피는 샤  대로를 가로지르기 위한 지하도의 진입부이며, 그 경로에 있는 미술관의 입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캐노피의 재료는 철골인데 그 형태를 보면 비행기 날개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혹은 큰 새가 자기 날개 밑으로 사람들을 보듬는 듯하다. 지주 사이의 거리는 40미터, 날개의 크기는 20×25미터이다.

멘지스의 건축은 대부분 콘크리트 질료를 드러내거나 백색으로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빛과 감응하려는 의도로, 때론 완곡하게 때론 강렬하게 음영으로 반응한다. 그의 후기작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는 1896년에 지어진 낭만풍의 사무소 빌딩을 개조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원래 건축의 자태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양식적 규범을 재현했는데 질료가 완전히 바뀌었다. 옷을 뒤집어 입듯 헌 벽돌을 마감재로 재사용해 속이 껍질이 됐다.

미술관은 루스 대공원을 등지고 있다. 아니, 대공원이 미술관을 등 뒤로 감추고 있다. 여하튼 이 붉고 낡은 듯한 물성은 공원의 녹음에 젖는다. 헌 벽돌의 푸근한 물성을 가지게 된 실내 공간에 중정의 천창을 통해 머금은 빛이 명징한 내부를 만든다. 미술관 컬렉션은 식민시대에 서양화를 체득한 시절의 작품부터 인상주의·입체파·추상·현대미술까지 폭넓다.

기획 전시가 활발해 그림 전시에서 설치미술까지 미술관의 모든 공간이 잘 활용된다.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을 통해 브라질 근대사의 장면을 맥락을 따라 감상할 수 있다.

박길룡 국민대·건축학

홍익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건축디자인과 건축역사학을 연구하며 세계건축으로 시야를 넓혀왔다. 지은 책에는 『한국 현대건축의 유전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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