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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수신제가
빛바랜 수신제가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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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국민의 정부’를 자임하면서 출범 당시부터 개혁을 내걸었던 김대중 정권도 바야흐로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권력의 측근과 그 가족들이 연루된 비리를 보면서 어쩌면 한결같이 앞서 비판받던 정권들의 마지막을 닮아가는 지 때마다 되풀이되는 말기적 증세에 안쓰러움을 넘어서서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가 들어서는 정권마다 최고 권력자 자신이나 형제, 아니면 자식의 부패와 함께 문을 닫는단 말인가.

윗물이 이러하니 아랫물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는 모양이다. 지구촌 축제라는 월드컵 경기가 열릴 10개 시도의 단체장 가운데 6명이 이미 구속되었거나 구속될 위기에 처해있다. 잘 만들어진 경기장에서 벌어질 행사에 그 곳 단체장이 불참하는 사태가 국제적 망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오죽하면 새로 떠오르는 대통령 후보들의 현란한 정책을 보기보다는 자식이 몇인지를 보고 찍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농담이 오갈까.

‘대학’에서는 ‘제가’의 기본이 ‘수신’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가까이하거나 아끼는 것이 있으면 치우치게 되고, 천하게 여기거나 미워하는 것이 있으면 치우치게 되며, 두려워하거나 존경하는 것이 있으면 치우치게 되고,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있으면 치우치게 되며, 거만하거나 게으른 것이 있으면 치우치게 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사람의 나쁜 점도 알고 미워하는 사람의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 자식의 못된 점을 알지 못하며, 제 논에 벼가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속담을 덧붙였다.

사실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멍에인지 모른다. 그래서 친애하는 마음이 지나쳐 잘못을 꾸짖어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오죽하면 석가가 아들을 낳고 나서 장애물이라는 뜻으로 ‘라훌라’라고 이름 지었겠는가.

물론 권력에 빌붙어 이익을 얻으려 한 쇠파리 같은 인간들이 더 나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한 사람의 욕심이나 어그러진 행동이 온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본다면 대통령의 집안 단속은 아무리 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정권 때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씨에게 집안 잘 다스린 본보기가 된다 하여 ‘제가상’을 준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시름에 잠겨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민중들이 빛 바랜 노벨 평화상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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