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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며] 한 시대의 종언 … 이제 누가 ‘리영희’를 대신할 것인가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며] 한 시대의 종언 … 이제 누가 ‘리영희’를 대신할 것인가
  •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 승인 2010.12.13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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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자협회보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리영희 교수가 별세했다. 그의 별세는 한 생명의 마감을 넘어 한 시대의 종언으로까지 불린다.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모순에 온 몸, 온 영혼으로 맞섰던 삶 때문이다.

리영희의 삶을 관통하는 중심 가치는 자기희생이었다. 그 희생의지는 그를 시대의 한 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언론인과 교수로서의 직업적 안정과 안락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것을 누리고도 남을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탁월한 수개 국어 실력은 전공학자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진실과 이성, 사랑과 휴머니즘을 향한 그의 양심은 공동체의 불의와 민중들의 고난을 앞에 두고 개인적 안정과 물질을 좇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의 문제, 곧 인간문제를 광정하려 항상 연마했고 지식이 요구하는 행동을 외면하지 않았다.

인류와 사회에 영향을 준 많은 사상가와 지식인들처럼 진실과 이성을 먼저 아는 자들의 숙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 세계관에의 도전 및 세상의 계몽과, 기존 질서의 강력한 탄압 및 시련이었다. 그럴수록 자유·평등·인권·정의·평화의 보편가치를 위한 그의 헌신의지는 더 단단해져갔다. 타인·전체·보편을 향해 나아갈 때 시련은 영광이 되고 고난은 소금이 된다. 거기에서 개인의 고통은 공동체와 역사에의 선한 영향으로 승화된다. 그를 통해 리영희는 한 지식인에서 시대의 예언자, 생각의 선지자가 되었고, 끝내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리영희의 실천은 앎을 매개로 한 실천이었다. 그는 앎과 함과 삶의 괴리라는 지식인의 허위를 참을 수 없었다. 때문에 앎을 함으로 연결했고, 함의 누적으로 삶을 이루어갔다. ‘바른 글’을 쓰는 지식인은 많다. ‘바른 뜻’을 세운 지식인도 많다. 그러나 ‘바른 길’을 간 지식인은 많지 않다. 앎이 함이 되고, 함이 삶이 되자, 그의 앎과 함과 삶은 세상을 향한 울림이 됐다. 그에게 앎과 함과 삶은 통합돼 있었다. 통합성은 지식인으로서 그의 궁극적인 존재이유였다. 

리영희는 전체에의 통찰과 구체적 사실분석의 결합이 뿜어내는 현실성과 논리성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한 세계관과 맞서기 위해 그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았다. 즉 空論이 없었다. 그는 당대의 정치·사회·담론 권력과 맞서기 위해 구체적 지식을 확보하려 최선을 다했다. 고대 이래 창조적 지식인들은 언제나 당대 자기 사회문제 및 인간문제로부터 학문과 이론을 전개했다. 리영희는 사회비평이자 인간조건의 개선행위로서의 학문이라는 고전적 계보에 선다.

균형성은 리영희가 학문을 하는 이유였다. 거의 모든 지식인이 권력·물질·명리·안정의 편에 섰을 때 전체의 균형을 위한 급진과 진보에의 길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삶의 안정을 추구했던 1천명의 제도 지식인이 함석헌과 리영희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민주화 이후, 독재의 편에 섰던 지식인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으나 그는 냉전해체와 사회주의 붕괴 시점에 균형과 중용을 위해 사회주의와 역사종언론의 문제를 동시에 비판했다. 거기엔 북한에 대한 비판도 포함된다.

루쉰 없는 중국근대사를 상상할 수 없듯 리영희 없는 한국현대사는 생각할 수 없다. 이제 누가 실업·비정규직·민주주의 후퇴와 북핵악화·남북군사대결, 동아시아 평화위협의 현실에서 전체로서 리영희를 대신할 것인가. 공동체의 인간문제를 감당하기 위해 지식을 벼리기보다는 권력진출, 보수·승진·보직을 상념하며, 사회와 역사의 평가보다는 저널평가와 게재를 더 걱정하는 오늘의 우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요 속물이지, ‘소명인’의 의미를 갖는 학문인이거나 ‘고백인’의 뜻을 갖는 교수는 아닐지 모른다. 리영희와 달리 우린 기능인일 뿐 유기적 지식인은 아닌 것이다.

그런 우리가 길러내는 학생들이 개인도덕과 시민윤리를 갖는 영혼으로 자라나 이 공동체를 인간적 사회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사회의 비인간적 모습은 필자를 포함해 우리 교사들의 책임이다. 오늘 우리는 글만 가르치거나(經師), 돈벌이와 취직은 가르치나(金師, 職師), 전체 사회의 문제나(國師, 公師), 바른 사람의 길은 가르치지 않는다(人師). 아니 우리자신이 전체문제와 바른 삶을 모른 채 교사를 하고 있다. 리영희의 별세로 한 시대를 마감하며 더욱 두렵고 슬픈 까닭이다. 타인의 평안을 위해 자기 육신과 영혼을 고난으로 밀어갔던 리영희 선생님, 이제 모두 내려놓고 하늘에서 안식하시길 기원드린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I』,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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