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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 펴낸 박은정 이화여대 교수
<저자 인터뷰>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 펴낸 박은정 이화여대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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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31 00:00:00

‘호모 에티쿠스’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사람은 윤리라는 내면의 명령을 피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뜻일까. 또한 법은 그 내면의 명령이 외화된 것일까. 그러나 하루가 무섭게 빨라지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성장의 속도 앞에 윤리와 법이란 얼마나 해묵은 잣대라는 인상을 줄 것인가. 어쩌면 그것들은 당대가 정해놓은 규칙일 뿐이고 언젠가는 금지와 규제의 ‘마지막 보루’마저 점령되고 말 그런 허약한 인간들의 약속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은 생명공학 앞에서 여전히 윤리를 말하고 있는 법철학자 박은정 교수를 채근토록 했다. 아니, 질문의 속도를 높여 그의 ‘준비되지 않은’ 생각을 엿듣고 싶었다.

△생명공학에 개인적 관심을 갖게 된 내력이 있습니까?
1998년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생명공학의 법과 윤리에 대해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관심은 그 이전부터 있었죠. 사람들이 ‘마비’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생명공학 관련 과학 기술이 발표될 때마다 우리들의 놀라움과 두려움의 정도는 줄어든다고 느껴져요. 다들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다간 정말 위험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무감각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무감각할 뿐더러 오히려 생명공학의 경제적 가치에 몰두해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요. 최고의 고부가가치 산업 아니겠어요? 우리 정부도 일찍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1994년부터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을 수립해 미래에는 21세기 수출 전략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발과 육성 뒤에 과학 기술이 우리의 의식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워낙에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정치인과 관료들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생명과학의 독주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종교가 맡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종교가 그런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인간 존엄성을 내세우는 것이 종교 본연의 입장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만 해도 각 교파마다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들 내부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 과학과의 합의점을 찾아내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법과 윤리가 최소한의 완충장치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윤리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법만 해도 지금까지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생명공학의 문제에서 위험의 시제는 항상 미래로 향하고 있어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을 앞질러 예상하고 법을 만드는 것, 이른바 예방법학적인 시각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법이 금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법은 원활하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합니다. 때문에 윤리와 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법 이전에 우리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닙니까? 생명공학이 생기기 이전부터 윤리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근본적인 제기를 하고 싶어요. 다들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요. 과학의 질주가 일반인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앞서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른바 과학적 상상력이 사회적 상상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실존적인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이런 상황 자체는 법과 윤리를 이미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윤리나 법은 무기력한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엄존하기 마련이죠. 지금까지 인체 문제는 도덕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생기고 소비자·생산자·환자·의사가 얽히게 된 이제는 법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되면 으레 앞서가는 연구와 그것의 상업화를 법으로 막자는 말이 나올 테고 말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법이란 규제와 금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합의수준이지요. 이제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연구하는 것, 즉 사회적 합의와 연구의 속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오히려 원활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런 인식을 가지려면 지금 우리에게 생명 윤리, 조금 더 한정하자면 ‘연구자 윤리’가 필요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 생명윤리란 어떤 가치인지요.
사실 생명에 관해 우리 인류가 합의해 온 철학의 총량은 존엄성이라는 말에 다 담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때의 존엄성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까지 포괄하는 좀더 폭넓은 개념이겠지요. 결국 생명윤리란 그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발본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치입니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과학도 결국엔 생명의 존엄성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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