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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적 이성에 입각한 지식의 매혹
헤르메스적 이성에 입각한 지식의 매혹
  • 김무경 서강대·사회학과
  • 승인 2010.12.0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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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마페졸리 지음, 『영원한 순간-포스트모던 사회로의 비극의 귀환』(신지은 옮김, 이학사, 2010.6)

‘일상’, ‘부족주의’, ‘노마디즘’ 등의 문제 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1944~)의 『영원한 순간』(2000)이 최근 신지은 선생에 의해 번역됐다. 『부족의 시대』(1988)와 더불어 그의 주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그의 국가박사학위 논문(「사회동학: 갈등적 사회」(1978))의 제사로 쓰인 다음의 문장에 잘 나와 있다.

“절대를 향한 열정이 있고, 그로부터 치유될 수 없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대립되는 극단을 화해시키는 것 외에 다른 출구가 없을 것이다. 모순의 원칙은 소멸될 것이고, 수동적인 태도와, 그렇지 않으면,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로운 행위로 변형시키면서 고귀하게 만드는 결정 사이에 선택이 있을 따름일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의 ‘필요성’의 인정 및 수락, 나아가서는 그것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행위로 만드는 것, 즉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그리고 ‘대립되는 극단의 화해’의 문제의식은 20권에 이르는 저자의 전 저작을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극’의 개념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이 시대상황에 위치시키면서, 이 ‘대립되는 극단의 화해’, 혹은 ‘역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어떻게 살고 사유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권유한다.

무력감이 지배하는 시대의 심층 읽기

외부로부터 주어진 목표를 앞으로 던져놓고(pro-jectum) 매진하는 여러 형태의 역사적 단선주의, 발전주의, 행동주의-저자에게 있어서 모던 ‘드라마’-가 이전의 호소력과 설득력을 상실한 지금,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여러 형태의 ‘강매’ 외에는 ‘무력감’과 ‘수동성’의 분위기를 개탄하게 된 지금, 이 시대를 그 심층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중심 개념으로서 저자는 ‘비극’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비극’은, 저자에 의하면, 젊은 세대의 많은 행동과 가치관을 이해하게 해주고, 따라서 사회전체의 심층적 변화를 이해하게 해준다. 

저자에게 있어서 ‘비극’은 다양한 형태의 발전주의의 쇄락과 더불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삶’(『외양의 공동에서』(1990)), 그 ‘다양성’ 안에서의 삶을 ‘수락’하는 ‘생기주의’에 근거한다. 모든 외부로의 팽창(ex-tension)에 대비된 내부로의, ‘가까운 것으로의 재집중(in-tension)’. 저자에게 있어서 ‘삶’은 곧, 그의 초기부터의 문제 틀인 ‘일상’에 다름 아닌데(『현재의 정복.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위하여』(1979)), 이 일상은 단선주의의 시간을 벗어나서 ‘운명’에, 그리고 ‘동일한 것의 주기적 회귀’에 종속된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운명 자체가 주는 예측불가능성, 연역불가능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늘 동일한 모든 ‘관계’들-타인과의, 공간과의, 사물과의, 자연과의-, 그리고 그로부터 연유하는 ‘한계’들을 역시 수락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특히 체화된 민중적 감수성을 통해, 안다. 그렇지만 이 한계와 제약은 바로 존재의 가능조건이고 나아가서는 자유와 초월성의 출발점이 된다.

이와 같은 ‘관계’의 수락과 이를 통한 ‘타자’의 경험-“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은 오직 타인과 함께하기로서만, 심지어 타인이 되기로서만 이해된다.”-은 이 책에서역자가 훌륭하게 후기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융이 제안하는 ‘개성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즉, ‘자아(ego)’로부터, 많은 ‘그림자들’의 시험을 거쳐, 그리고 그것들을 한 몸으로 하면서-‘역의 일치’의 과정을 통해-, ‘자기(Self)’, 온전성, 전체성에 이르는 긴 ‘입문 과정으로서의 삶.’

이 입문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그 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우선, 어떻게 우리 속의 ‘그림자’, ‘타자’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과 감성이 ‘놀이’를 통해 분출되며, 이 놀이들에서 흔히 목도되는 ‘디오니소스적인 과도함’이 어떻게 ‘작은 죽음’을 통합한 후 삶의 기쁨을 생성하고 그럼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보호받는가 하는 점을 보여준 다음, 둘째, 그동안 부차적이고, 늘 가상으로 폄하됐던 ‘외양’이 어떻게 사회성의 중요한 벡터가 되는지, 그리고 또한 동시에 우리의 특수한 ‘외양’들이 어떻게 일반적인 전형의 요소와 한 몸을 이루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거대한 상징주의의 한 요소로 통합해 주는지, 그리고 셋째, ‘자연’, ‘동물’, 그리고 ‘오브제’의 회귀와 수용이 어떻게 우리를 동종요법적으로 그것들로부터 보호해 주는지를 특히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구체적 행태들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 이 모든 ‘그림자의 부분’은 ‘사회성’을 강화해주는 요소들이기에 이 책은, 이 현상들의 원인/결과인 ‘공동체주의’로 귀결된다.

도덕주의적 관점을 넘어 ‘너그러움’으로

책은 진정으로 이 ‘역의 일치’를 살고 사유하는 데로의 초대이기에 매우 매력적인 동시에 도전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가 당부하듯이 당위적이거나 도덕주의적 관점을 넘어서서 ‘너그러움’과 관점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이 책은 또한 마페졸리의 다른 글처럼, 되도록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심층적 사회변동과 덜 유리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서의 글쓰기 형식인 ‘에세이’의 예를 무엇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사회과학자와 독자 대중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시도하는 이러한 ‘관계맺기’, 혹은 ‘일반화된 연결’(에드가 모랭)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헤르메스적 이성(hermetica ratio)’(질베르 뒤랑), 즉 가설 연역적 배제의 원칙을 사용하지 않고 사용했던 지식, ‘상동성’과 ‘유사성’에 입각한 지식에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고, 이 점에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의 획기적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무경 서강대·사회학과

프랑스 파리 V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관심 영역은 상상력의 사회학, 일상생활의 사회학 등이다. ‘이미지의 문명’을 동반할 ‘신화방법론’의 정립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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