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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해소 대안 없어 … 학문정책결정 지배구조 문제 간과”
“불신 해소 대안 없어 … 학문정책결정 지배구조 문제 간과”
  •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정책연구팀
  • 승인 2010.12.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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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이한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인터뷰(교수신문 581호)를 보고

지난 11월 22일자 <교수신문>에 실린 한국연구재단 이한구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인터뷰는 전업강사 연구지원 외에도 평가업무의 단순화, 인문사회과학 장기발전계획, 그리고 개인과제 비중 확대 등의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 인식에 있어 환영할 만하지만 불충분하고 실망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

첫째, 이 본부장은 학단협·교수신문 설문조사 결과에서 제기된 연구재단 심사 공정성을 둘러싼 불신의 문제에 대해 한국연구재단 심사는 대단히 공정하고 설사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심사자 수준의 문제라고 답변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단순히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의 불만으로 돌리면서 “한국연구재단의 공정성은 세계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연구 자율성 오해… 간섭 최소화 의미”

그러나 한국연구재단 심사 공정성이 “세계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는 주장의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최종심사라는 소위 고위관계자 회의에서 탈락한 2009년 중앙대 독일연구소와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의 사례는 한국연구재단 심사의 공정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8%가 심사과정에 “정치적·이념적”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 심사과정에 대한 강한 불신이 널리 확산돼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본부장은 이러한 근거 있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최종심사 과정의 정치적 영향력과 불공정성 문제에 침묵하면서 “심사자 풀을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현재 불거진 한국연구재단 심사의 공정성 문제의 심각성을 피상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학계의 연구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의 주장에 대해 이 본부장은 “연구비 지원을 받으면서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순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학단협이 제기한 문제제기를 오해한 것이다. 연구 자율성에 대한 학단협의 입장은 연구과제에 대한 평가와 관리를 느슨하게 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연구진행과 성과에 대한 평가와 관리를 엄격히 하되 단순화하고, 적어도 연구주제의 선정에 대해서만큼은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학계와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연구재단이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한 학계의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특정 연구주제를 공식적으로 지정하고 연구비 지원을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이 본부장은 원칙적으로는 개인연구와 장기적 연구를 확대할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를 거부하거나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선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기초가 튼튼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집단연구를 통해 “인문사회 분야의 인프라를 더 두텁게 깔아야”하고 “인프라가 튼튼해진 이후에는 개인연구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현시점에서 개인연구의 비중을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런 입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인문사회분야의 인프라’로 볼 수 있는 자료의 수집과 정리, 기본 문헌의 번역 및 해제·자료화, 기초통계 자료의 수집과 처리 등의 물리적, 지적 인프라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집단 연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프라 구축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문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인프라는 연구자 개개인의 창의적인 연구 역량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개인연구자들이 생계를 위해 집단과제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주제를 연구함으로써 연구역량을 계발하기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약화되는 동시에 소중한 연구비가 낭비되는 일이다. 설문조사에서 연구자들은 집단연구의 경우 대다수가 공동연구를 통한 지적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서로 별로 관련이 없는 개별연구들의 합이라는 사실, 그리고 현재 인문사회과학 연구자 상당수가 비 학술적인 동기에서 집단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 인프라 구축, 후 개인연구 확대’라는 입장은 재고돼야 한다. 만약 이 본부장의 말처럼, “연구비는 연구에 대한 의욕이 넘치고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지원하는게 맞”다면 장기적인 개인연구과제 비중의 확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인프라 구축이 먼저” 입장 재고해야

넷째, 이 본부장은 전업강사들이 연구주제를 자유롭게 정해 연구를 할 수 있는 신규사업을 마련했다면서 한국연구재단이 “강사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아니지 않느냐. 정부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이니까 잘 키워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학단협의 입장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매년 상당기간을 연구계획서 및 결과보고서 작성에 허비하게 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교수들에 대한 연구지원 여부를 연구재단의 연구계획서 심사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학술서, 저역서와 논문 저술 등 학계가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학술적 성과에 근거해 결정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학단협은 개인 연구과제를 확대함과 동시에 비정규직 교수에 대한 지원을 사후지원이나 매년 공인학술지 게재를 전제로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지급하는 수준의 1년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다시 제안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심사의 공정성, 연구 자율성, 장기적 개인과제, 비정규직 교수의 연구환경 등과 관련해서, 이 본부장이 간과한 문제는 한국연구재단의 학문정책의 전반적인 결정을 둘러싼 지배구조의 문제다. 예를 들면 심사자 풀의 평가와 관리를 엄격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학문정책을 둘러싼 지배구조가 잘못됐다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에 그칠 수도 있다.

분명 이 본부장의 인터뷰는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도 부분적으로 보이지만 한국연구재단 학술정책의 기본 방향과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학단협의 일관된 주장은 외부로부터 자율적인 연구환경의 조성, 장기 개인연구과제 활성화, 비정규직 교수의 안정적 연구환경 마련 그리고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인문사회과학의 특성에 맞는 연구 지원·평가 시스템 마련을 위한 ‘한국인문사회과학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설치다. 이를 통해 다양한 영역과 관점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학술정책의 기획·조정 과정에 대한 직접 참여를 제도화함으로써 심사의 공정성, 연구 자율성, 연구역량의 계발, 안정적인 연구환경, 장기적 연구 성과 개선이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향후 한국연구재단은 학단협이 제시한 정책대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정책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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