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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학위논문 지도교수 공동저자 논란
[쟁점] 학위논문 지도교수 공동저자 논란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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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20:58:38

교수가 제자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고, 그 논문을 제자와 공동연구 저자로 학술지에 싣는다면 이는 공동연구물일까, 아니면 무임승차일까. 먼저 다음의 경우에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사례 1. 최 아무개 교수(재활의학)는 1994년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했다. 이때 최 교수는 의료기계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이때 최 교수의 연구에 참여했던 김 아무개씨는 연구자료를 이용해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그리고 1999년 경북의 한 대학에 임용된 최 교수는 김씨의 석사학위논문에서 사용했던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논문을 작성했고, 이를 교내 학술지에 실었다. 이 과정에서 최 교수는 데이터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사례 2. 장 아무개 교수(경영학)는 2001년에 자신이 지도한 학생의 박사학위논문을 요약해 학회 학술지에 실었다. 이때 연구자의 명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쓴 주 저자와 장 교수 그리고 또 다른 교수 등 3명. 장 교수는 이전에도 다른 대학 교수와 함께 박사학위 논문심사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3인 공동연구결과물로 학회지에 실은 바 있다.

사례 3. 남 아무개 교수(경영학)는 1999년 제자 권 아무개씨의 석사학위논문을 요약해 학술지에 게재했다. 권씨에게는 사전통보도 하지 않았으며, 학술지는 단독연구결과물로 제출했다. 다만 논문집 서론에 “자료수집과 분석에 도움을 준 권씨에게 감사한다”고 언급했다. 대학에는 교비를 지원 받아 작성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위의 경우 어느 교수를 정당한 공동연구자로 보고, 어느 교수를 무임승차자로 분류해야 할까. 앞서 사례를 들었던 교수들의 경우 표절여부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점들이 더 있지만 일단 현재까지 진행된 사항은 이렇다. 데이터 일부를 가져왔던 최 교수와 공동연구저작물로 학회지에 실었던 장 교수는 파면됐고, “도움을 줘서 감사한다”는 언급을 하고 제자의 학위논문을 통채로 가져다 썼던 남 교수는 여전히 대학에 남아 주요보직까지 맡고 있다.

이·공분야 단독 논문 의미 없어

또 한가지. 지난 3월 감사원은 연구비를 지원받은 교수 가운데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충남 모 대학 교수의 연구비를 회수하라고 학술진흥재단에 요청했다. 이 교수의 경우 대학원생의 연구논문작성에 거의 관여를 안한 것을 스스로 인정해조용히 마무리 했다.

제자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지도교수와 제자의 이름을 공동연구자로 올리던 학계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의 사례들은 공동연구가 아니라 ‘무임승차’나 ‘표절’로 여기는 추세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국산업경영학회(회장 박명호 계명대 경영학부)’는 최근 학회에 소속된 교수가 제자의 학위논문을 공동연구저작물로 학회지에 실었다가 대학에서 파면 당하자 “학위논문을 복제나 표절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교수 구명에 나섰다. 학회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 동안 2백여편의 논문을 실었는데 이 가운데 21편이 석사학위논문이나 박사학위 논문을 주 내용으로 한 공저 논문”이라고 밝혔다. 이 논문들도 학위취득자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경우는 30%뿐이었고, 나머지는 교수의 이름이 먼저 나왔다는 것. 학회 측은 “논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투입된 교수를 공동저자로 인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교수가 논문의 내용이나 독창성에 더 많은 책임을 진다”고 주장했다.

의학계열의 또 다른 학회에서도 소속된 교수가 표절로 대학에서 문제가 되자 “교수의 연구과정에서 얻어진 실험결과를 제자가 학위논문에 썼다고 하더라도 지도교수가 이를 도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단독연구가 거의 불가능한 이·공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하는 대학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교수의 기여도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순일 아주대 교수(분자과학기술학과)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때 참여한 대학원생들의 공동저자 포함 여부는 기여비율에 따라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지도교수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학술지들은 논문 게재과정에서 내용을 조율할 ‘교신저자’를 표기하게 하는데 대부분 이 역할은 교수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공학계열에서도 대학원생의 이름을 빼고 싣는 것은 무단도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문·사회학 분야는 이와 다르다. 올해 초 학위를 취득한 양문석 박사(신문방송학, 전 전국강사노조 위원장)는 “논문심사과정이 점점 투명해지면서 학위가 있을 때는 어디든지 논문을 실을 수 있게 됐다”며,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연구자가 수년 동안 노력을 기울이고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야 학위논문을 쓸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도 없이 지도교수가 논문을 도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학자의 양심이 공동연구 판단기준

결국 제자의 학위논문을 교수가 공동연구자로 학술지에 실을 경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한가지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전공분야에 따른 다양한 연구환경과 실질적인 기여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학자로서의 양심을 넘어서는 것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제자의 논문을 공동저작도 아니고 혼자만의 연구물로 가져다 쓰는 것이 논란거리도 못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의 표절논란을 계기로 ‘학계의 관행’처럼 여기던 학위논문 무임승차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심희기 연세대 교수(법학과)는 “연구업적이 중요해 지면서 학위논문에 무임승차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반면, 엄격했던 스승과 제자관계가 변화되면서 제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 교수는 “외부기관이나 대학이 제재하기 이전에 학자로서의 양식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욱 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도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학계에서 자발적으로 지침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학위논문은 공동발표 이렇게 본다

“교수·학생 모두 이익이다”

제자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할 때 교수와 공동연구 논문으로 게재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은 실질적인 기여도와 효과에 무게를 싣는다.

김희종 서울대 교수(화학부)는 “실험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단독연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실질적 기여도에 비중을 실었다. 학위논문 공동게재가 제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결과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김 교수는 “학술적인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외국저널에 발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이름이 들어가야 유리하며,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도교수와 학생 공동명의로 싣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도 “학생의 이름을 빼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것에는 반대했다.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1999년에 학위를 받고 학위논문을 지도교수와 함께 학회에서 발표한 바 있는 한신일 성균관대 교수(교육대학원)도 “박사논문의 초안은 학생이 만들지만 완성과정에서 절반이상이 바뀌게 마련이다”며, 교수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또한 지도교수가 저명한 학자일 경우 학계에서 주목받는 기회가 될 수 있어 긍정적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교수도 “학생이 통계조사를 했을 경우 이를 지도교수라고 해서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곤란하다”며, 구분을 명확히 했다.

“학생지도와 연구분리해야”

학위논문을 공동연구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는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희기 연세대 교수(법학과)는 “자연과학분야에서 실험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이를 공동연구물로 학회지에 싣는 것은 공동연구물로 보아야 한다”면서도 “교수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인데, 그 결과에서 교수의 몫을 챙기려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제자도 이후에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업적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도 “교수의 본분은 학생이 독자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이공계의 경우 공동연구가 불가피하더라도, 학위논문 지도와 공동연구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또 “공동연구의 경우에도 교수는 연구비만 따오고, 실질적인 연구는 대학원생이 하는 관행도 근절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교수 모두 인문사회분야에서 제자의 학위논문을 학회지에 실을 때 공동연구자로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무단으로 인용했다면 표절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도교수와 제자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당사자들이 문제제기를 꺼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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