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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대학 구조조정 소식의 불길함과 古典의 미래
[문화비평] 대학 구조조정 소식의 불길함과 古典의 미래
  • 이승우 출판인
  • 승인 2010.11.29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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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古典 항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 시간적으로 따지면 2천년 전의 고전고대의 작품으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근 100~200년 사이의 작품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들이 있다. 그 시차에 관계없이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서 아무리 최첨단 시대라 해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쳐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논어』나 『장자』와 같은 동양고전은 특히나 그렇다.

요즘 들어서는 인문학 열풍이 대학을 벗어나 일반 교양층까지 널리 퍼져 가히 ‘고전 열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대학에서 전공과 관련해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인들까지 배우려는 세태는 분명 좀 더 근원적인 것을 찾으려는 학구적 자세라고 봐도 될 듯싶다.

 
직업적 책읽기가 몸에 밴 출판인들에게도 고전은 출판기획의 寶庫이다. 더욱이 현대사상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 석학들의 명저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면,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장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곧 자연스레 아무리 뛰어난 현대철학자들이라고 해도 결국 고전고대의 고전으로부터 자신들의 사상의 맹아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근대 출판의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고전번역서들이 별로 없다. 각 대학에서 앞 다투어 고전목록을 선정해 필독을 권장하기도 하지만, 그 목록을 세세히 살펴보면 ‘믿을 만한’ 결정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문학작품들이야 다수의 전공자들에 의해 같은 작품이 여러 버전으로 번역돼 어떤 것이 가장 좋은 판본인지 세간의 평을 얻을 수 있지만, 인문학 쪽으로만 넘어와도 ‘고전’의 반열에 걸맞은 해당 전공자에 의한 원전 번역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예술 분야까지 눈을 돌리면 가히 충격적일 정도다.

최근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카를 슈미트의 책, 『정치신학』이 번역, 출간돼 반가운 마음에 읽고 있는데, 결국 슈미트의 사상 전개 역시 그 근원은 토마스 홉스나 장 보댕으로부터 나온다. 독자로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홉스나 보댕의 책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홉스의 대표작 『리바이어던』은 최근에 번역돼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지만 보댕의 『국가론』은 일부만 발췌, 번역돼 있는 실정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독서 경험을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즉 우리에게 ‘고전’은 아직도 손에 쉽게 잡을 수 없는 위치에 홀로 서있다.

이렇듯 시급히 번역해야 할 인류의 지적 유산이 아직도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데, 최근 들려오는 대학의 구조조정 소식은 불길하기만 하다. 특히 독어독문학과나 불어불문학과 등 이른바 제2외국어 관련 학과들이 그 우선순위에 들어 있다. 결국 번역은 빼어난 우리말 실력과 해당 언어권 언어에 대한 실력 및 전공지식으로 판가름 나는데, 그 바로미터가 되는 언어 교육을 도외시한다니 걱정스럽다.

물론 앞으로 대학에 들어올 신입생들보다 대학의 정원수가 더 많아진다고 하니, 구조조정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무차별적인 학과 폐지나 통폐합보다는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더 우울한 소식은 현재 서울 시내 고등학교 교사 가운데 독일어 전담교사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사실상 제2외국어 교육이 중등교육 차원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 대학의 구조조정이 ‘효율성’에만 그 기준을 두어 당장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 학문분야부터 도태시키는 이러한 현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늘어 가는데, 이상하리만치 대학은 그 반대편으로 방향키를 돌리고 있다.

이승우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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