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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비극적 육체관 피력했던 사드
[역사 속의 인물] 비극적 육체관 피력했던 사드
  • 김중현 한국외대·프랑스문학
  • 승인 2010.11.29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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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사고방식은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소. 하지만 상관없소.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고방식을 택하는 사람이 진짜 미친 사람이잖겠소. 내 사고방식은 내 사색의 결실이오. 그것은 내 존재, 내 생체조직과 같은 것이지요.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주인이 못 되오. 설령 내가 그럴 수 있는 주인이라도 나는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비난하는 내 사고방식은 내 삶의 유일한 위안이오. 감옥에서의 내 모든 고통을 완화시켜 주고, 세상에 나와서는 내 모든 기쁨이 되어주지요. 나는 삶보다 그것에 더 애착을 갖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내 사고방식이 아니라, 타인의 사고방식이오.”


사드(Donatien-Alphonse-Francois de Sade, 1740. 6~1814.12)는 그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런 신념 때문에 인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낸다. 사드의 아버지는 아들이 14살 때 이미 아들을 위해 무도회를 3번이나 열어줄 정도로 아들의 응석을 다 받아주었으며,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성년이 돼가면서 점점 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척 노력해 보지만 아들을 올바로 이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들에게서 차차 멀어져갔다. 사실, 사드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았기에 아들은 자기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니 사드의 몸에 흐르는 방탕의 피는 선천적이었다.


사드
“언젠가 어떤 교회에서 두 시간 쯤 머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음을 한 뒤 성배에 사정을 하여 교회를 더럽힌 적이 있다. 함께 영성체를 받으러 갔던 여자와 동침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받아온 성체 두 개를 그녀의 성기에 쑤셔 넣고 ‘네가 신이라면 복수해 봐!’ 라고 성체를 향해 비아냥거리면서 성교를 즐겼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잔 테스타르라는 여직공을 꾀어내 해괴하고 고통스러운 성행위를 강요하자 반항하는 그녀에게 쏘아붙인 말이다. 겨우겨우 도망쳐 나온 그녀는 경찰에서 이런 내용을 증언하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신성모독죄로 고소돼 경찰의 추적을 받기 시작한다. 도피를 거듭하면서도 그는 ‘라 코스트 성에서 소녀들과의 섹스 향연’, ‘마르세유 창녀촌의 봉봉사건’ 등 방탕한 행위를 계속해서 행하고 다닌다. 결국 체포돼 감옥에 구금되는데, 그는 감옥에서 문학, 물리학, 화학, 식물학, 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어치운다. 그러면서 그는 글쓰기에 대한 강한 욕망을 느끼게 됐는데, 마침내 집필을 시도한다. 당시 많은 논란과 거의 비난만을 불러일으킨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 즉 『소돔 120일』, 『미덕의 불운』, 『쥐스틴』, 『알린과 발쿠르』, 『규방철학』등은 감옥과 정신병원에 유폐돼 있을 때 쓴 것들이다. 따라서 가학적 성행위에 관한 집착과 광기의 표출인 이 작품들은 그 유폐 속에서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다음의 고백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나는 방탕아이다. 나는 방탕아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해봤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방탕아이긴 해도 범죄자나 살인자는 아니다.”


그동안 그의 저서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최근 들어 그에 대한 해석이 다시 행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아폴리네르 같은 시인은 사드를 ‘가장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 극찬하는가 하면 어떤 연구가들은 ‘이성 우월주의가 횡행하던 18세기 서양의 합리주의를 전복시킨 저항문학’으로 평가한다. 또 어떤 연구자들은 사드가 그처럼 비극적이고 부도덕한 肉體觀을 작품에서 서슴없이 피력한 것은 당시 유물론적인 자연관의 물질화된 인간의 삶을, 다시 말해 양심과 도덕을 저버리고 오로지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하는 바로 그 동물적인 삶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그가 죽을 때 남긴 바람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기억돼가고 있는 것 같다. “무덤이 덮이면, 그 위에 떡갈나무 몇 그루를 심어주오. 그렇게 무덤은 다시 평평한 대지로 변할 것이고, 덤불숲은 전처럼 다시 무성하게 되리라. 그 때 내 무덤의 흔적은 대지의 표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사랑했으며, 내가 그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무덤에까지 가져가는 그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나에 대한 기억은 그처럼 사람들의 마음에서 지워지리라.”

김중현 한국외대·프랑스문학

한국외대 ‘문체론 용어사전’ 연구팀 전임연구원이다. 프랑스 낭시II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사드』, 『발자크 연구』등이 있고, 번역서로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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