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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狂氣의 컬렉터 … “500년 더 살고 싶은 이유요?”
빛나는 狂氣의 컬렉터 … “500년 더 살고 싶은 이유요?”
  • 최병식 경희대·미술비평
  • 승인 2010.11.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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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학에 빠진 최병식 교수가 만난 사람]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손성목 관장

강릉의 경포호 앞에 위치한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의 손성목 관장.

유물 수집에는 여러 경로가 있지만 대체로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을 따라 구입하는 방법과 또 하나는 경매장을 통해 공식으로 구입하는 경우이다. 손성목 관장(1943~)은 좋은 유물이 나온다는 정보가 있으면 영국, 뉴욕 할 것 없이 즉시 현장으로 날아간다.


현재 참소리축음기에디슨박물관에는 세계적인 보물들이 많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메리칸 포노그래프(American Phonograph)를 소장하게 된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이 축음기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부호가 소장하다 1940년 중반 매킨토시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 소식을 안 손성목 관장이 몇 차례 그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81년 4월에야 매킨토시로부터 경매에 나왔다.   

박물관 내부가 온통 기이한 축음기들의 화음에 젖어 있다.


물론 금액이 매우 높았지만 손 관장은 즉시 아르헨티나 현지로 날아가 53명의 응찰자들과 경쟁해 낙찰했다. 낙찰이 확정되는 순간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누군지도 모르는 옆 사람을 붙잡고 환성을 질렀어요. 눈물까지 핑 돌았지요.”


출품자 매킨토시는 손 관장이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축음기 전문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말을 듣자 5천 달러를 감해 주고, 프랑스 파테社의 내장형 축음기 한 대를 기증하는 등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었다.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는 그 뒤 6개월 이라는 긴 운송 과정을 거쳐 한국에 왔다.

총상으로 죽을 고비 맞기도


그 후 이 축음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일본인이 몇 배 가격으로 재판매를 제의해왔지만 손 관장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천신만고 끝에 원하던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면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빚에 쪼들릴 때면 순간적으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아요. 지금도 흉터가 있지만 그때도 강도를 만나 소지한 돈을 모두 빼앗기고 총상까지 입어 아예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죽음을 넘나드는 어려움을 넘길 때 마다 축음기들이 나에게‘세계적 박물관은 이런 정도의 시련에 굴해서는 안 되지요’라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지면서 용기를 얻곤 합니다.”


손 관장의 수집벽은 이와 같은 고비를 넘길 때 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지만, 수집을 위해 1년에도 몇 차례씩 해외여행을 해왔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낭패를 당하는 수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진 아르헨티나가 앤티크 수집가들에게는 매우 인기 있는 나라임이 분명하지만 실망을 안겨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축음기와 대화하는 박물관장


생활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는 영국의 소더비, 크리스티경매장에서‘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손 관장이 박물관을 운영하는 비영리 고객이라는 점도 감안됐겠지만, 그만큼 신용이 축적됐다는 것도 입증된다. 그는 ‘축음기’나 ‘에디슨’에 관련된 명품의 경우, 가격을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아예 경매 번호가 적힌 패들을 계속 들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경매 전에 있는 프리뷰 전시에서 물건을 살피게 됩니다. 최근 들어서는 몇몇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나한테 마음에 드는 것을 묻곤 합니다. 이유는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은 꿈도 꾸지 않겠다는 의미겠지요. 한편 에디슨 관련 전문 수집가들이 저에게만은 고급 정보를 보내 주지요.” 


  축음기와 대화하는 박물관장. 그의 컬렉션은 욕심을 넘어 독재수준을 넘나든다. 그의 ‘컬렉션 지론’은 ‘수집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집요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수백, 수천 개를 가지고 있어도 다른 곳에 소장된 한두 개를 그냥 두지 않아야 한다’ 이다. 정보만 있으면 아프리카, 남미 등 지구 반대편까지 무조건 달려간다는 손 관장. 국내에서도 그의 수집 에피소드는 ‘전설’로 통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음악은 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스승이고 애인이다.”손 관장의 이 말은 진실이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사람이 이룩해 놓은 가장 비범한 행적일 수 있는 참소리축음기박물관과 에디슨과학박물관. 독특한 박물관의 이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와 에피소드가 있는 박물관이다.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899년 제작한 세계 최초의 밀랍관축음기 에디슨 2호기, Edison Class M.                     사진제공=최병식 교수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은 우리나라 어느 박물관에서도 보기 드문 시스템을 구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유물에 대한 개인 대 개인 설명체계이다. 도슨트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7~8명의 숙련된 설명요원이 직접 100여 년 된 축음기를 작동하고 소리를 들려주거나 그 역사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일일이 서비스한다. 이러한 관리과정은 결국 축음기도 그러하지만 에디슨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는 데도 교육적인 역할이 크다.


  본관 2층에 새롭게 마련된 음악감상실은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의 자랑이자 강릉 전체의 자랑이기도 하다. 외형은 축음기 레코드 형인 원반형으로 설계됐고 200명 동시 입장이 가능하다. 감상실에서는 우선 스피커를 보는 것만으로도 희한한 체험이다. 웬만한 사람 키보다도 큰 파트리션, 매킨토시, 천사의 목소리로 불리는 자디스, 1920년대 웨스턴 일렉트릭 등 10여종의 대형스피커가 진열돼 있으며, 경포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창문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음악과 호수가 일체를 이루는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무정한 마음, 카타리 카타리’


“2009년 5월은 저의 유물 수집 50년이며, 박물관 건립 30주년입니다. 제가 꼬박꼬박 잊지 않고 해설을 해왔는데 이렇게 건망증이 오는군요…. ‘무정한 마음, 카타리 카타리’ 너무나 유명한 노래이지요. 명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부른 노래입니다. 그는 황금의 콤비 마리아 칼라스와 노래를 불러 빼어난 오페라 음반을 남기기도 했지요…. 오늘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이 명작을 감상하시겠습니다….”


2008년 12월 오랜만에 경기도박물관과 미술관 관장들이 함께 방문한 자리에서 손 관장은 위암 수술을 한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그만의 특유한 음악해설을 이어갔다.
손 관장을 만나게 되면 종잡기 어려운 선문답을 하면서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 그리고 그의 500년 지론을 듣게 되면서 다시 한번 ‘참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참소리에 이끌려 에디슨을 알게 됐고, 그의 성실한 외길 인생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에디슨이 발명할 것이 너무 많아 300년을 살고 싶다고 했듯이, 나 역시 수집할 것이 아직도 많고, 참소리박물관을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500년을 더 살고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뮤지엄을 만드는 사람들-운명적인 컬렉션, 문화의 등불이 된 28인』에서 발췌했습니다.

최병식  경희대·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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