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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한국 근대 춤의 선구자 최승희
[역사 속의 인물] 한국 근대 춤의 선구자 최승희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학
  • 승인 2010.11.22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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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춤추는 최승희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1995)의 저자 정병호는 중학생 때 광주극장에서 본 최승희 공연의 흥분과 감동을 잊지 못했다. 월북예술가 해금조치가 풀리자마자 그녀의 일대기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평전을 집필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빛바랜 최승희의 춤추는 사진만 봐도 섬뜩한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실제 공연을 접한 사춘기 소년의 감동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된다.

1924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崔承喜(1911~1969)는 원래 성악가 지망생이었다.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1926년 3월 21일, 신문기자였던 오빠 최승일의 손에 이끌려 경성공회당에서 개최된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접하고, 이에 매료돼 춤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서양 모던댄스를 체득하고 조선의 전통과 접목해 新舞踊이라는 새로운 춤사조를 창출해 한국 춤의 지형변화를 이끌었다.

신무용은 서양의 器를 배워 동양의 道를 투영하고자 한 東道西器적 발상에서 접근된 근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최승희는 ‘전통의 현대화’, ‘서양무용의 한국화’를 창작의 화두로 삼았다. 이러한 창작이념에서 「초립동」, 「에에야 노아라」, 「보살춤」, 「장고춤」 등의 신무용 명작이 창작됐다.

근대 한국춤 역사에서 국제무대에 나아가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해 일약 세계적인 무용가로 활동한 이는 최승희가 유일하다. 그녀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동양의 신비와 이국적인 멋을 구현, 서양인의 감성과 심미안을 자극했다. 최승희는 1930년대 후반 일본을 비롯 미국, 유럽,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약 150여회의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떨치며 한류 열풍을 선도했다.


일제강점기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최승희의 이러한 행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최승희의 위상은 ‘동양의 진주’, ‘한국의 이사도라 덩컨’, ‘전설의 무용가’라는 화려한 수식어에서 증명된다. 치열한 작가정신과 예술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1940년대 초반 세계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최승희는 ‘조선적인 것’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통해 일본의 노오, 가부키와 중국의 경극을 소재로 한 창작작업에 몰두했다. 야네기 무네요시의 예술론을 차용해 조선적인 선, 일본적인 색, 중국적인 형을 중시한 창작을 통해 이른바 ‘아시아 춤의 근대적 창출’을 모색하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 주로 솔로 댄서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한 최승희는 월북뒤 서양의 정통발레 양식을 차용한 스토리텔링의 극적 서사성이 강조된 군무중심의 ‘무용극’을 추구했다. 한국춤 고유의 동작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조선민족무용기본』을 정립하고 이를 교본화하는 등 무용교육자로서도 의미있는 행적을 남겼다.

 
최승희는 신여성의 표상으로 인식된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단발머리는 ‘신여성=단발’이라는 등식으로 성립된다. 신여성들의 단발은 서구적 이상 혹은 동경의 지표였다. 훤칠한 키에 서구적 용모, 단발머리와 양장의 세련된 차림은 근대 서구적 이상을 동경한 대중들의 감성과 심미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최승희는 일상에서도 모더니티를 몸소 실천한 이른바 ‘세기의 선구자’였다. 그녀는 무용가를 뛰어넘어 가장 인기있는 대중스타였으며, 한류열풍의 선두주자였다.

최승희는 그러나 살아생전 평생 이념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해방직후엔 친일무용으로 비판받아야 했고, 월북이후에는 북한무용 초기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말 주체무용 맹아기에 숙청당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금기시됐다.

최승희는 늘 ‘무대는 최후의 결전장’이라고 여겼다. 예술과 정치의 분리론자였던 그녀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희는 격동의 근현대사의 파고에서 늘 주시의 대상이었고,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다. 이제 곧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보다 열린 시각의 유연한 관점에서 최승희의 존재론적 의의와 예술적 업적이 재평가되길 기대한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학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전통의 변용과 춤창조』, 『한국근대무용가 연구』, 『춤의 선구자 조택원』, 『춤의 정책은 있는가』 등이 있다. 한국춤평론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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