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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고종에게 開化의 근본을 疏하다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고종에게 開化의 근본을 疏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0.11.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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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4』 황현 지음

『매천집 4』  황현 지음 | 이기찬 옮김 | 한국고전번역원 | 2010.10 | 447쪽

삼가 엎드려 살펴보건대, 갑오년 이래로 시국이 날로 변화하고 온갖 법도가 更張 되면서 찬연히 중흥해 만세까지 뻗어 나갈 터전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보고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실상을 고찰해 보면 禍難과 危亡의 조짐이 도리어 경장 이전보다 더 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한갓 開化의 枝葉만 탐하고 그 근본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일에는 작든 크든 모두 근본이 있고 지엽이 있으니, 어찌 유독 개화에만 그것이 없겠습니까. 개화라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라 문물이 바뀌고 사람이 교화되는 것[開物化民]을 말하는데, 문물이 바뀌고 사람이 교화되는 데에 근본이 없이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이를 가까이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재정을 절약하며 상벌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따위가 바로 이른바 근본이며, 군대를 훈련시키고 기계를 활용하며 通商을 잘하는 따위가 바로 이른바 지엽입니다.

서양 사람들의 법이 비록 중국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저들의 이른바 萬國史를 살펴보면, 그들의 흥성 또한 근본을 바로 세운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실로 그 근본이 없으면 아무리 강해도 반드시 피폐해지는 법이니, 이는 흥망의 자취를 통해 종종 상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개화라는 말은 비록 처음 접하는 말이지만 사실 중국의 治道와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로 볼 때, 밖으로 강한 이웃 나라가 없고 안으로 亂臣賊子가 없어 평화스럽고 안정된 국면에 놓여 있더라도, 백배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분발하지 않으면 쇠퇴하는 형세를 만회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해이해지고 안일에 젖어, 단지 바깥으로만 눈을 돌려 서양 기술을 빌리고 서양 기계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전등을 켜고 기차를 타면서 득의양양하게 천하에 호령하기를, “나 역시 나라를 중흥시킨 天子이다”라고 말한다면, 거듭 외국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만약 비웃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승냥이와 이리같이 잔인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다면, 비록 쇠퇴한 오늘날의 국면이나마 영구히 보존하려 한들 가능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한가하신 때에 유의하고 살펴보시어 신의 우매함을 용서하고 신의 충심을 헤아려 주신다면, 이것이 개화의 근본에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 매천 황현의 『梅泉集  7券』에 수록된 ‘국사에 대한 상소’의 일부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광무 연간에 남을 대신해 지은 것이지만, 매천의 시대인식과 시국관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개화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매천은 이 상소에서 민심 수습과 통합 방안의 첫째로 言路를 열고 실정의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확보와 인사제도 정비, 군기 확립과 국가 보위 역설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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