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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남영신 지음, 까치 刊)
[깊이읽기]『『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남영신 지음, 까치 刊)
  • 이찬규 / 중앙대·국어학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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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11:52:09

언어의 세계는 실제의 세계와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개의 세계는 서로 별개다. 물론 상호 영향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매우 독자적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어의 세계에는 나름대로의 규칙과 관계와 틀이 있다. 사실 인간은 실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상당 부분을 언어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는 우리의 세계가 된다. 저자는 언어를 ‘배’에 비유했지만, 그것보다는 언어는 하나의 세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영신의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는 한국어라는 배가 삐걱거려 언제 좌초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불안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책 속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표준과 규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언중들과, 그래서 수없이 많은 비문과 모호문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뭔가 경종을 울리고 싶은 심정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한국어는 매우 어렵다고 치부하는 ‘암묵적 눈가림’과, 맞춤법, 표준어 규정이 자주 바뀌어서 정확하게 무엇이 표준인지 알 수가 없다는 ‘무관심의 연대’가 빚어낸 무질서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어를 지켜내고자 하는 굳센 의지가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한국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사와 어미, 호응, 생략과 축약, 높임말, 시제에 해당하는 것들을 용례 중심으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전에도 이런 종류의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필자가 근 30 여년 이상을 비전공자로서 한국어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 왔다는 특이한 전력 때문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혼란에 빠지기 쉬운 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제시해 놓아 이 책의 내용만 잘 학습한다고 해도 한국어를 어느 정도는 바르게 구사한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이란 바른 글이다’라는 소신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있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한국어 사용의 혼란 원인이 한국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용자들의 무관심과 무지에서 오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한가지, 한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교조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예를 보자.

““수고 많았소. 점촌댁.” 남자가 말했고, “수곤 무신 수곤기요. 의당 할 일이 아닌교” 재빠른 여자의 대꾸였다.”(조정래, ‘그림자접목’에서)

이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분명치 않다고 하여 저자는, ““수고 많았소. 점촌댁.” 남자가 말했고, “수곤 무신 수곤기요. 의당 할 일이 아닌교” 여자가 재빠르게 대꾸했다”로 고쳐야 한다고 제시하였다(123쪽).

그러나 ‘재빠른 여자의 대꾸였다’와 ‘여자가 재빠르게 대꾸했다’는 ‘배열적 의미’가 다르다. 소설가가 아무런 의식없이 그렇게 썼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배열을 선택한 것에는 일정한 배열적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소설의 표현에서는 ‘대꾸’에 초점이 부여된 반면, 고친 표현에서는 ‘여자’가 초점이 되어 의미가 달라진다. ‘-의’로 결합되는 명사구 형식이 일본어의 영향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도 있지만 언어의 접촉은 자연스러운 일이고(그것을 우리 문화 내에서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지닐 때 확산되는 것 또한 당연한 언어 현상이다. 표제성 명사어구가 많이 쓰이는 현실이고 보면 ‘-의’로 연결되는 명사구가 확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또 “나는 자장면이야!”같은 표현도 이해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말이라고 해서 “나는 자장면을 시키겠어”라고 해야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언어적 현실을 너무 무시하는 원칙주의가 아닌가 한다.

상황 맥락 속에서 언어는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장면이야!”같은 표현은 이미 언중들 사이에서 랑그를 확득한 방식이기 때문에 언어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표현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해내는 일이라고 본다. “내가 먹으려고 하는 것은 자장면이다”에서 이미 상황 속에서 추론이 가능한 ‘먹으려고 하는 것’을 생략한 것이다. 물론 과도한 생략으로 언어 소통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어 바로쓰기’ 류의 책들이 범하기 과도한 원칙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어 오용례들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언어 소통을 힘들게 할 정도로 자의적이고도 비문법적으로 표현한다면 오천년 이상 가꾸어 온 우리말이 ‘어려운’ 언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문인들이나 언론인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른 문장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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