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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부재를 짚는 작가들의 미덕 … 한국문학 강의를 곤혹하게 하는 것들
‘광장’의 부재를 짚는 작가들의 미덕 … 한국문학 강의를 곤혹하게 하는 것들
  • 교수신문
  • 승인 2010.11.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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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내가 만난 세계문학, 내가 본 한국문학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 국제위원회(위원장 정은경)는 지난 4일, 5일 오후 2시 대학로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의실에서 ‘내가 만난 세계문학, 내가 만난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번 ‘제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는 다른 해와는 달리 국내외 작가와 진보적 지식인이 어떻게 세계문학 혹은 한국문학과 만났는지 이야기함으로써 지금 한국사회에서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고민해보는 자리로 기획됐었다. ‘밖으로부터의 고백’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4일 ‘대화’에는 한국문학전공자인 일본 무사시대학 인문학부 교수인 와타나베 나오키, 팔레스타인 젊은 작가인 아다니아 쉬블리,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인 오슬로 국립대 교수 박노자 등 세 명의 작가와 지식인이 타자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가운데 박노자 교수와 와타나베 나오키 교수의 ‘나와 한국문학’을 발췌했다. 사진=한국작가회의

‘밀실’을 이야기하며 ‘광장을 암시한다

박노자

루가치의 유명한 테제대로, 사실주의 문학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현실의 총체적 ‘실질’, 즉 구체적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진지한 사실주의 작가란 꼭 주관적으로까지 ‘진보’ 내지 좌파일 필요성까지도 없다. 주관적으로는 비록 자유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개별적 현상들의 총체로서의 이 사회, 이 체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작가적 혜안을 갖고 있는 이상, 작가 본인의 주관적 경향과 무관하게 그 작품은 객관적으로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많은 경우에는 ‘본질’ 파악에 있어서는 아직도 미성숙하고 도식적인 ‘좌파적’ 의식의 경직된 틀에 갇혀 현실의 총체적 반영보다 자신의 도그마를 소설에 투사시키는 무능한 '좌파 작가'보다 현실의 ‘본질적’ 측면에 예민한 非 좌파적 리얼리스트가 더 성공적일 수도 있는 법이다. 토마스 만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사이 멀었지만 『파우스투스 박사』 (1947년)야말로 계몽기의 합리성을 떠나버린 제국주의 시대의 위기의 자본주의 문화의 ‘이성에 대한 배반’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작품일 것이다.

파시즘의 암흑기를 목도한 토마스 만에게 휴머니즘과 이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인 ‘반란’이야말로 위기의 ‘본질’이었지만, 한국 근대의 경우에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 영역’의 未발달은 근대적 의미의 이성적 개인 형성의 커다란 방해물이 됐다는 차원에서 역시 사회성 위기의 ‘본질’로 지목될 만해왔다. ‘이성’이라는 것이 본래적으로 대타적, 對 사회적 측면일 수밖에 없는데, 근대적 사회성, 공공성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이성적 개인’도 결국 사산돼 ‘잉여인간’으로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적 상황의 ‘본질’을 가장 잘 파악한 작가라면 1950~60년대, 즉 냉전형 분단국가 건설 초기의 최인훈과 1990~2000년대, 즉 신자유주의적경찰국가로의 전환 초기의 김영하일 것이다. 둘 다 주관적으로 꼭 좌파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가지지 않지마는, 오히려 각종 소아병에 걸려온 한국적 '좌파'의 도그마들과 무관한 상황에서 어쩌면 보다 예리한 혜안을 키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인훈의 『광장』이 지닌 생명력과 그 원천

최인훈의 『광장』은, 아무리 시대가 지나도 계속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그야말로 불멸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작품이다. 그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광장』의 외형적 주제인 분단의 상황이 본격적으로 바뀌지도 않고, 이북의 관료적 폐쇄성도 이남의 식민성이라든가 지배세력의 횡포, 부정부패, 공론의 가시적 부족 등이 그대로라는 불변의 상황성에 있는 것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작가의 시좌가 이 소설의 매력을 많이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한다.

 

한반도 전체와 주인공 개개인의 내면을 위에서 조감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밀착적으로, 미시경을 통해 보듯이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작가의 시선은, 개별적 ‘현상’들과 거리를 철저하게 두려는 ‘중립’의 시선이다.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을 택했다가, 결국 ‘중립’의 극단이라고 할 이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도피, 즉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에, ‘중립’이라는 개념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중립적이다. 개개인이 권력을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공공선’이란 무의미해진 남한에 대해서도, '혁명'의 간판을 걸어 '공공선'을 사칭하는 외삽적 국가가 똑같은 행위를 집단적으로 벌이는 이북에 대해서도, 남한 사회의 폭력성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북한 사회의 집단주의적 구조에 결국 나름대로 순응하면서 인간성을 잃어갔던 취약한 개인주의자 이명준에 대해서도, 저자의 시선은 냉정한 분석의 시각이다.

 

비극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지만, '민족의 비극'에 대한 값싼 센티멘탈리즘도, '분단' 그 자체만을 문제로 삼아 '통일'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려는 조급한 통일주의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저자가 보여준 남한의 개인적 폭력의 구조와 북한의 집단적 폭력성이 기계적으로 통합된다고 해서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소설이 던져주는 또 하나의 시사점이다. 이 냉정한 '중립의 시선' 덕분인지, 지금도 이 소설을 읽을 때에 참신하다는 느낌이 든다.

『광장』은, 대한민국이 ? 수많은 학살들을 배경으로 해서, 외세의 절대적 후원 하에서 ? 세워진 지 12년 만에 쓰여진 대한민국 초창기에 대한 '결산 보고서'다. 이 '보고서'의 결론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작가는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원자화돼 유기적 연대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무력한 개인들과 그 개인들을 지배하는 각종 모양의 폭력들을 봤을 뿐이다. 너무나 비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광장에 시민을 모으는 나팔수'가 되려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는 이 작품이 나온 뒤로는, 남한 사회가 '광장'형성을 향한 움직임들을 쉴사이 없이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밀실'을 벗어난 이들은 소수이었지만,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도 6월 항쟁도 남한에서 '광장'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형성하기도 했다. 사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의 準 혁명적 분위기의 경험이, 일정한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는 오늘날 남한의 공공영역의 창출에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남한과 같은 準혁명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고난 속에서 관료 지배 체제가 일정하게 완화됐으며 자유시장에서 남한제나 중국제 '알판' (DVD)를 사서 집에서 '금지된 바깥 세계'의 영상을 볼 수 있을 만큼, 혹은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주로 중국 동북지방에서 보다 나은 생활을 구하러 '조국의 품'을 떠날 만큼 밑으로부터의 자율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긴 했다. 그렇다면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광장'을 보지 못한 최인훈의 관찰은 시의성을 잃었는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나의 ? 별로 낙관적이지 않는 ? 생각이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 주목하는 이유

1987년-1991년의 '準혁명'은 박정희가 건설한 개발국가 체제에 일정한 민주적 요소 ? 경쟁적 선거부터 민주노조의 조건부 허용까지 ? 를 도입하긴 했지만, 최인훈이 이미 '도적과 다르지 않다'고 규정한 보수적 정객들의 정치적 독점을 깨지 못했다. '캠퍼스 사회주의자'들이 꽤 많은 남한 사회의 신생의 '광장'에서는, “백 사람이 나무뿌리를 먹는 갚음으로만 한 사람이 파리 제 화장수를 쓸 수 있는”사회를 본격적으로 바꾸겠다는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7년에 남한을 덮쳐버린 환란은, 박정희식 개발국가 모델 그 자체를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재분배 식의 사회 안정 장치들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유일하다 싶은 실질적 사회 안정 장치이었던 정규직의 고용보장은 기업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희생되고 말았다. 환란이 지난 남한 '월급쟁이' 사회는, 언제 비정규직으로 밀려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소수의 정규 고용자와, 극단적 생업 불안을 겪으면서 타자들과 연대할 만한 여력을 갖지 못하는 다수의 불안 노동력으로 양분화 됐다. 1987년 이후에 생겨버린 '광장'을 국가가 더이상 극단적으로 탄압하려 하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생계 불안 속에서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가족 생존에의 전념', 즉 가족 단위 이기주의의 '밀실'로 물러나게 됐으며, '광장'은 절로 거의 비워지게 됐다.

 

1987년에 극복될 것 같았던 '밀실 사회'의 원자화는, 다시 한 번 한국 현실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핵심어가 됐다. 이와 같은 새로운 상황을 『광장』 못지않게 예리하게 짚어준 명작은, 남한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아홉 번째 해, 즉 2006년에 나온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다. 『광장』은 대한민국 건국 12년에 대한 '결산 보고서'이었다면, 『빛의 제국』은 9년 동안 지속돼온 남한 사회의 신자유주의화(化)에 대한 '결산 보고서'다. 『광장』처럼, 『빛의 제국』도 남북한을 아우르는 것이고, 『광장』 못지않게 '간판'들이 가려주는 남한 사회생활의 속살을 잘 들어낸다. 『광장』 시대의 사회에서 소통이란 신문이나 카페를 의미한 반면 『빛의 제국』 시절에 소통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돼도 소통과 연대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의 기본 골격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빛의 제국』이 시사해주는 것이다.

김영하가 보여준 새천년 벽두의 서울이란 해방 직후의 서울과 달리 '끔찍한 곳'은 아니다. 남파고정간첩 김기영 (본명 김성훈)을 주야로 감시하는 경찰들은, 『광장』의 이명준을 폭행한 친일경찰 출신들과 달리 더이상 피의자를 잡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끄집어내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 김기영이나 그 가족, 주변인들이 물질적으로 크게 곤란을 겪는 것도 아니다. 직장 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생계, 자녀들의 장래 등을 위해서 일할 뿐, 자아실현의 꿈을 다 버린 것은 문제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누린다. ' 흰 칼라가 말쑥한 양복에 윤나는 구두를 신고 돌아다' 니는 부자들이 극소수에 불과했던 『광장』의 시절과 겉으로는 판이하게 달라 보이는 세상이다. 재미있게도 간첩 김기영이 태어나고 자란 평양의 중산층 사회도 『광장』의 '잿빛 공화국'처럼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 폭이 좁고 물자가 풍족하지 못하지만, 그 생화에도 낭만이나 사랑, 우정도 있고  출세에의 야욕 등 남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의 풍경들도 다 발견된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 『광장』과   마찬가지로 - 『빛의 제국』의 북한도 남한의 일난성 쌍둥이로 설정돼 있다. 김영하는 북한 공작원 훈련소에서 운영되는 '인공의 서울' 세트를 묘사하지만, 북한 사회 전체는 이와 같은 '남한를 닮은 약간 남루한 유사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광장』의 북한 '혁명쟁이'들이 남한 정계의 사기꾼들과 일맥상통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는 김기영에게 그가 남한에 처음으로 잠입한 1980년대의 서울 풍경은 평양의 현실을 떠올린다. 이념적 주술의 단어들이 다를 뿐, '총화단결'이니 '충성, 효성'이니 부르짖는 집단주의 이데올로기나 평생 직장, 엄숙한 도덕주의와 바깥 세계와의 연락이 극히 제한되는 점 등은 서로 흡사했다. 세계 체제에서의 위치 등 거시적 좌표들이 다를 뿐 양쪽은 아주 잘 통제되는 조합주의 사회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든 남한은 이북이라는 그 일란성 쌍둥이와 다소 달라지기 시작했다. '총화단결'은 자아분열과 핵화로 대체된 것이다.

정신적 자아분열이란 꼭 남한의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만의 특징도 아니다. 북한 체제의 미래를 비관하면서도 그 체제에 대한 의심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채 충실히 기술관료로 살아온 김기영의 아버지도, 그 체제 안에서의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가 가정생활에서의 불행을 느껴 결국 자살한 김기영의 어머니도 여러 중류의 자아분열에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김기영이 잘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남한은 이 차원에서는 거의 독보적이다.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다반사가 돼 '신념' 같은 단어들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고정간첩인데다 배신했다 싶은 동료를 당의 지시로 살인한 전력까지 갖고 있는 김기영이 이런 사회에서 정상적인 중상층 가장을 연출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은 이유는, 각종의 연출을 하지 않는 이들이 주위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이인 동시에 훌륭한 직장인 등 모범적이다 싶은 겉모습을 내비치면서도 사실상 법대생 한 명을 내연남으로 삼아 불륜을 즐기는,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사는 김기영의 아내부터 그렇다. 단짝 친구를 냉정하게 이용하는 김기영의 중학생 딸도, 이미 '겉'과 '속'이 서로 다른 세계처럼 돼버린 사회에서 사는 법칙을 경험적으로 다 익혔다. 좌파적 신념을 과시하면서도 또 한 명의 남성을 '딜도처럼' 이용하면서 난교 섹스를 즐기는 김기영 아내의 내연남도 동시에 여러 세계를 사는 인간이다. 간첩이었던 김기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돼버린 사회는, 원자화된 구성원 각자가 알아서 그 지극히 사적인 '밀실적' 욕망들을 채워가면서 굴러가는 곳이다. 다소 일차원적인 그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돈과 사회적 위치를 적자생존의 싸음에서 어떻게든 획득하는 것은  인생의 또 한 부분을 차지한다.

 

타자란 욕망 충족의 도구가 아니라면 욕망 충족에 쓰일 수단 (돈과 사회적 위치)을 획득하는 데에 경쟁자밖에 되지 못하는 이런 곳에서는 '광장'은 과연 가능한가? 1980년대에 ? 비록 나이브하게 ? 사회를 바꾸어보려는 욕망까지도 가져본 386세대의 분산, 핵화, 그리고 현실에의 안주 과정을 그려낸 김영하의 답은 부정에 더 가깝다.  『광장』의 언어를 빌리자면, 그가 그린 세상은 '밀실'들의 경쟁장이자 집합이지 '광장'의 이상과는 여전히 멀다. 삶의 물질적 수준은, 이명준의 시절에 남한 사회의 최고 '귀족'들에게만 허용됐던 서구와 거의 비슷한 정도로 나아진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밀실사회’의 본질과 소설적 전망

'광장'이란 어디까지나 불가피하기에 참아내야 하는 노동과 각종의 위선, '유사 광장'에 불과한 이 사회는 과연 어떻게 통제되는가? 김기영의 고향인 이북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당과 수령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신념이지만, 각자가 적당히 숨어서 '밀실적' 소원들을 이루어나가는 남한의 사회적 (유사) 통합은 보이지 않는 감시로 뒷받침된다.  각자가 욕망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더러운 비밀'들을 안게 되지만, 그 비밀들의 상당부분을 알거나 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기관'이 존재하기에  이 사회에서 심각한 탈선 행위를 벌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정간첩 김기영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은 바로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고, 김기영의 일거수일투족은 기관에 의해 포착된다. 기관이 그와 같은 이들을 더 이상 붙잡아 고문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감시카메라와 휴대전화/전자우편의 도?감청, 그리고 신용카드 이용의 시대에 그 모든 통제대상자들이 이미 '투명인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선의 장막 뒤에서 각자가 수많은 비밀들을 갖고 살지만, 이 '밀실들의 집합'을 조절하는 기관들이 언제나 그 비밀들을 다 투시할 수 있기에 사회의 운영에 대한 하등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 정체가 폭로된 김기영이 결국 ? 손목에 전자팔찌를 차고서 ? 남한  사회에서 정상적인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이 소설의 결말이다. 기관 의 투시 능력 앞에서 벌거숭이가 될 수 없는 그는 ? 비록 '주적'과 과거에 연결돼 있었다 해도 ? 적당히 돈을 벌면서 누릴 것을 적당히 누린다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될 게 없다. 그가 어차피 궁극적으로 남과의 그 어떤 유기적 관계가 불가능한 혼자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대도 삶의 물질적 수준도, 삶의 형태도 달라졌지만, '광장에 시민을 불러 모으는 나팔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4.19가 아직 생생히 기억됐던 1960년의 최인훈과 달리, 김영하는 '혁명'을 언급하지 않는다. '밀실' 속의 소비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혁명이란 체게바라의 얼굴이 찍힌 런닝처럼 거래되는 유사품이 되고 말았다. 사회적 운동에 대한 기대가 강했던 최인훈도 전형적 의미의 좌파는 아니었지만, 김영하도 혁명에 호소하는 좌파와 사이 멀다. 그럼에도 폐쇄회로와 같은 '밀실의 사회'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그의 본 의도는, 어디까지나 달성하지 못한 소통과 연대, 그리고 잃어버리고 만 '참된 것'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그 어떤 진지한 자아실현도, 그 어떤 내면까지 불태우는 참된 사랑도 이미 하지 못하는 불구자가 됐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깊이 각성해야 '삶'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여정의 구체적 루트에 대해서는 김영하는 그 어떤 '정답'도 내놓지 않는다. 사실, '정답 제시'보다 화두를 제대로 던지는 게  리얼리즘 작가의 본업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 말대로 '사랑할 수 없는 곳은 지옥'이라면, '광장'의 부재를 짚은 작가들 덕분에 우리가 지옥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밀실'에서는 성교는 가능해도 사랑은 불가능하다. 결국 '밀실'을 벗어나 '광장'의 시공간에서 타자와의 소통이자 자신과의 소통, 사랑과 자아실현을 찾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

박노자 오슬로대ㆍ한국학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와 경희대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ㆍ『당신들의 대한민국』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와타나베 나오키
나와 한국문학

 저는 아주 평범한 유학생활을 서울에서 11년 동안 지냈고 2005년부터 동경에 가서 일본 대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일개 대학 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구 경력도 많지 않고 번역 업적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번으로 따지면 83학번으로 1980년대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이른바 일본판 ‘386 세대’입니다.

  대학을 졸업해서 출판사에 들어갔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기 좋아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은 재미있었고 또 단행본 편집자였기 때문에 직장은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에 한국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직장을 다닌 지 5년 쯤 됐을 때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제 약력에도 있듯이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저는 식민지 시대 이야기에서 벗어나 해방후 문학을 말해 볼까 합니다. ‘해방후’라고 한 시점에서 이미 시대적인 규정을 하고 있는 셈인데, 우선 한국에서 해방후 문학사를 논하는 시각이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10년대씩 나눠서 거론되는 것은 그 시대 배경과 그 시기에 새로 등단한 작가들뿐입니다. 시대 규정 치고는 너무나 미흡하고 작가 이름들을 보면 단순한 등단사에 불과합니다. 각 시대에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 작가들도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고 작가들이 나름의 표현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작업들을 아우르는 표현의 역사가 서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해방후 문학사 논하는 시각 더 자유로웠으면”

  가령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박완서 선생님의 ?친절한 복희씨?라는 단편을 일본의 어떤 문예지에 번역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년문학’의 새 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이 작품을 10년 후나 20년 후에 문학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문학사’적인 평가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때 말하는 ‘문학사’란 과연 무엇일까요?─이런 질문을 묻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친절한 복희씨?에 관해서는 일본 독자들에게 내용적으로 이해를 못 받았던 것이 저로서는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심부름 비슷하게 일하고 있었던 시장 가게 주인에게 ‘능욕’당해서 결혼한 여성의 반생을 그린 이 단편 마지막에서 주인공 복희씨는 남편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이 작품을 보고 일본의, 박완서 선생님보다는 좀 더 젊으신 여성 작가가 좀 답답해하면서 박완서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복희씨는 이혼 안 했을까요?” 박완서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결혼은 남들이 보면 뭐라 나무랄 데가 없는 괜찮은 것이었어요. 남편이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벌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그런 남편과 이혼한다고 하면 나쁜 놈 소리 듣는 것은 여자죠.” “그 시대에 여자가 그렇게 이혼을 해서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어요. 여자가 일할 수 있는 직장 같은 건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시대였어요.”──그 일본 여성 작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평소 여자의 분방한 삶과 연애 감정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 노작가는 박완서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여성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됐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청준의『당신들의 천국』일본어로 번역하고 싶어”
 
얼마 전에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님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은 참으로 인상 깊게 읽은 작품입니다. 소록도 병원 원장으로 부임한 남자와 환자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선의의 독재자의 ‘시혜 의식’을 절제된 필치로 그립니다. 그 원장은 실제 모델이 있었습니다만, 물론 그 배후에 당시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고 또 그 병원을 처음에 실제로 만든 일본인들의 이미지도 겹쳐 보입니다. 소설은 아주 어려운 난제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처음부터 운명을 같이 할 생각이 없는 독재자의 선의는 피-지배자에게는 억압적인 통치 행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호소합니다. 거의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격한 윤리 의식이지만 그 메시지가 일본 독자들에게 아직 전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제가 꼭 번역해 보고 싶은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 불안 요인들을 지적해 두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금 일본의 대학에서 한국어나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거의 다 여학생들입니다. 그 학생들은 자기 엄마들과 한류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본 학생들도 있고 또 스스로가 동방신기 팬일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여학생들을 상대로 한국문학을 소개할 때 가끔씩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적어도 80년대까지 한국문학의 목록들은 거의 다 남성 작가가 쓰고 남성 독자들이 읽어온 작품들입니다. 여기서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왜 백인의 문학을 흑인들이 읽어야 되느냐는 식의 반응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제가 소개하고 강의하는 능력 문제도 있을 거고 어쩌면 우리 학교만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난감한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이것은 문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도 외국 대학의 수업에서 문학 작품이 어떻게 쓰이느냐는 문제인데, 적어도 90년대 이후에는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고 그 다음에 공부해 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교재는 문학 작품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가 됐습니다. 옛날 같으면 외국어를 좀 공부한 다음에 “소설이라도 좀 읽어 보고” 그 외국의 문화를 배우기도 했는데 그 역할이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가 담당하고 있는 거죠. 문자보다 영상을 학생들이 선호한다는 것도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근본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요즘 영화는 DVD로 나오자마자 영어로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일어로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만 문학 작품은 일일이 번역해야지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번역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또 새로운 영화 DVD가 출시됩니다. 즉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속도가 문학 작품보다도 영화나 드라마가 훨씬 빠른 겁니다. 이것도 하나마나의 이야기입니다만,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저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문학을 되살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 때

  세 번째로 인문학 내지 문학의 위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수없이 반복해서 검토됐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히 논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말씀드린다면 한국에서도 번역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해서입니다. 가라타니 자신은 ‘終焉’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것을 ‘끝’(終わり)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합니다. ‘종언’을 선전함으로써 역으로 그것의 부활을 기도하는 시도는 결코 아니라는 뜻에서입니다. 그 책에서 가라타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을 봐라. 그들이 마음 깊숙이 인스파이어(inspire)된 책은 결코 문학 작품이 아니었고 프랑스 현대 사상의 책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세대에 대해서 한 말입니다만 맞는 말입니다. 가라타니는 문학 자체가 사라진다고 한 게 아니라 문학 작품이 예전처럼 이른바 미디어(media)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거겠지요. 앞으로도 문학 작품은 계속 씌어지고 또 읽혀지겠지만 그 사회적인 기능은 예전 같지가 않을 것이다, 문학 작품이 사람들의 미디어 역할을 다하고 있었을 때의 문학, 그것을 넓은 의미에서 ‘근대문학’이라고 부른다면 그 ‘근대문학’은 이미 끝난 거라고 가라타니는 지적한 셈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문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전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저는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등, 이창동씨의 영화 작품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고 그의 영화를 별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창동 영화는 직접적인 폭력을 다룬 부분 이외에도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주’로 인생을 망친 남자 이야기를 다룬 ?박하사탕?은 정말 그랬죠. 물론 ‘광주’는 폭력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서로 “폭력적이다”, “그래, 그렇다”는 말밖에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이 개봉됐을 때의 한국의 문학계의 반응들은 대단했습니다. 이런 분들도 이 영화를 봤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많은 문인들이 그 영화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현상은 이창동씨가 80년대에 소설을 쓰는 소설가였다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서 던져진, ‘광주’에서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구냐는 문제 제기도 참으로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만 그 이외에도 그 영화 작품을 놓고, 혹은 통해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흥분 속에 우리는 문학을 되살리는 무엇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영화를 통해서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의 일단을 엿본 것입니다. 그것을 감지하는 감각을 상실하지 않는 한 우리는 문학을 살려 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와타나베 나오키  일본 무사시대 인문학부 준교수
1965년 동경 생.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근무를 거쳐서 1994년부터 한국에 유학 생활을 지냈다.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고려대 국제어학원 초빙전임강사를 지냈다. 주요 논문에는 ?임화의 언어론?, ?식민지기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만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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