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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개입주의 후퇴 국면 … 통일, 매력적인 옵션 돼야”
“美 개입주의 후퇴 국면 … 통일, 매력적인 옵션 돼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11.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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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주최 ‘급변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통일’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0일 오후 2시, 건국대 새천년관 국제회의장.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단장 김성민 철학과 교수)이 마련한 ‘통일인문학 제2회 석학들의 대화’의 주제는 ‘급변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통일’이었다. 대담에 초대된 학자들은 이매뉴얼 월러스타인 미 예일대 석좌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이었다. 세계체제론의 월러스타인 교수, 분단체제론의 백낙청 교수, 지난 정부 시절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수훈 교수. 과연 그들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환율전쟁과 미국 헤게모니의 퇴조: 월러스타인 교수는 최근 미·중의 ‘환율전쟁’에 내재된 근본 문제는 보호주의라고 지적하면서 미·중, 그리고 다른 나라들 사이에 어떠한 양보와 타협도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이런 진단과 함께 그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곧 ‘혼란기’가 올 것이며, 이는 새로운 다극적체제의 출발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백낙청, 이수훈 교수 역시 그의 상황분석에 동의했다. 특히 이수훈 교수는 “달러화가 지속적으로 약화될 경우, 유로화, 위안화, 엔화가 기축통화 자리를 넘보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세계는 기축통화를 놓고 심각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하면서 “물물교환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미 경제력 약화와 미국 패권의 향방: 달러화를 통해 세계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해왔던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약화될 때,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까. 월러스타인 교수의 우려는 그런 ‘혼란기’의 질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데 모아졌다. 그는 미국의 강력한 핵억지력, 핵우산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북한이 이라크 전쟁에서 많은 것을 학습했으리라고 분석했다. “이라크전은 북한 지도부에 심리적 영향을 크게 미쳤다.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담이 핵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북한이 2~3기 정도의 핵을 보유함으로써, 사실상 미국과 한국, 일본 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국가들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주변국의 군사적 침공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는 결국 핵확산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게 월러스타인의 비관적 예측이다.

“한국 이 쥔 미국이란 동아줄은 가느랗다”

이수훈 교수는 동맹외교를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반대에 직면한 오늘, 한국 정부가 오히려 미국과의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는 게 과연 적절한 선택인지, 국익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백낙청 교수는 여러 나라가 핵을 보유하는 핵 다극화를 우려하면서, 오히려 긴장지대인 한반도가 비핵화와 같은 좀 더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면, 이 경험이 중요한 역설적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월러스타인은 “미국의 ‘개입주의의 후퇴’는 필연적으로 ‘핵확산’이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의존하면서 미국이 보호해줄 거라고 믿는다면, 이 동아줄은 아주 가느다란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환기했다. 그는 “한국도 결국 2020년경 핵 보유를 지극히 당연시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직면한 두 가지 숙제-한국이 중-일 관계의 중재자가 되는 것, 한반도 통일을 위한 새롭고 구체적인 분석과 대안 마련-를 언급했다.

구체적 통일 방안의 현장에 가깝게 있었던 백낙청 교수는 월러스타인이 언급한 ‘공포의 균형’론이 현 세계체제 현황 진단과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핵확산의 현실화에 우려를 표시했다. 백 교수의 생각으로는 한반도 통일은 막연한 게 아니라 과거 정부들이 내놓은 합의 노력에서 전망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러스타인 교수는 이런 주장을 내놓는 백 교수에게 좀 더 구체적인 통일 방안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 한반도 통일, 어떤 방안이 있나: 짧은 휴식 뒤에 토론이 이어졌다. 이수훈 교수와 백낙청 교수의 입장은 7·4공동성명 이후 남북 정부간의 ‘공동선언’에 통일로 가는 점진적인 방안이 모두 담겨 있다는 논리였다. 이수훈 교수는 “이러한 접근으로도 남북 상호가 긴장·적대를 계속한다면, 과연 어떤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강하게 말했다. 백 교수는 그의 주장에 ‘시민참여형 통일’ 방안을 보탰다. 그러나 월러스타인은 두 교수의 주장을 다소 ‘공허한’ 것으로 들었는지, 계속 ‘구체적 방안’ 여부를 따져 물었다.

월러스타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사례를 한반도 통일에 참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의 말인즉, 어떤 결정적인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통일’(화해, 평화) 노력은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것은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한·중·일 협력체제와 같은 환경을 조성해내고, 이것이 북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통일의 매력을 증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통일을 매력적 옵션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백 교수는 이런 월러스타인에게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가 있는, 구체적 진전이 담긴 2005년 9·19 선언에 주목하자”고 주문했다.

■ 북의 3대 세습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백낙청 교수가 먼저 운을 뗐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언급했지만, 핵심적인 이야기는 피했다. 진실규명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북의 3대 세습을 계기로 “북의 성격과 체제에 관한 더 솔직한 토론이 필요해졌다”고 지적했다. 지론인 ‘분단체제론’을 배경으로 해서 그는 ‘분단체제’가 남의 자유주의, 북의 사회주의를 결과적으로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북의 ‘왕조적 성격’은 정상적 사회주의와 거리가 멀어지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보았다. 백 교수는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을 향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듯 ‘북의 세습’에 관해 입장을 밝히라고 강요하는 기현상을 우려했다. 현재로선  ‘북한이 선택한 3대 세습’이 비록 ‘왕조적 성격’을 갖고 있더라도 ‘북의 갑작스러운 급변상황에 개입해야 하는 불안정성’보다는 낫다는 게 백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이수훈 교수에게서도 발견됐다. 이 교수는 “북의 3대 세습 선택을 중국은 쉽게 인정했다. 진보진영에게 ‘대북 문제’ 책임을 자꾸 묻는데, 보수측은 어떠한가.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런 역량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는 보수측에서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교수는 북의 3대 세습이 남북관계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 북 급변사태 진지하게 고민해봤나”

월러스타인은 북의 3대 세습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천안함 사건’을 거론하면서, 이 사건을 남북 모두가 정치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러나 백 교수가 지적한 ‘진실규명’과 관련, “마치 미국의 9·11 사태처럼, 결국은 역사의 ‘모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내가 보기엔, 그 문제는 많은 지적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사건은 역사의 각주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사회를 맡은 김성민 단장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는 최근 북측 학자 14명이 참가했던 투멘포럼(두만강 포럼)의 경험을 불러냈다. 김 교수가 참가한 북측 학자들에게 ‘3대 세습’이란 예민한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답변은 “그런 권력 승계는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김일성 → 김정일로 체제 변환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김정일 →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역시 자연스러운 ‘연속선상’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동일한 사건(3대 세습)을 바라보는 인식의 낙폭이 크다는 것, 바로 이런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노력, 과제가 시작된다는, 원론으로의 회귀였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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