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세미나
[초점] :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세미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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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09:54:56
지난 15일 연세대 새천년관 대강당에서 벌어진 세미나의 열기는 4시간이 넘도록 식을 줄 몰랐다. 민간단체, 학자, 정부관료, 일반 관객들이 한데 어울려 대강당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세미나의 주제는 바로 ‘문화’와 ‘산업’.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Korean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KCCD, 이하 연대회의)’가 자리를 마련한 세미나의 제목은 ‘국제통상협정과 문화다양성’. ‘산업과 문화는 함께 갈 수 있는가’, ‘세계화 질서 아래서 지켜야 할 문화다양성이란 무엇인가’ 등이 치열하게 논의됐다.

문화로 ‘경쟁’할 수 있나

이날 세미나의 주요 발제자는 이반 베르니어 캐나다 라발대 교수(법학)로, 국제변호사이자 캐나다 외교통상부 문화 산업부문 전문자문위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NIICD)’ 창설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운동가이다. 베르니어 교수는 이날 “문화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확고한 주장을 펼쳤다. 80년대 중반 캐나다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과정을 지켜보면서 국제 통상과 문화주권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한 나라의 문화가 어떻게 파괴돼 가는가를 자국의 영화산업을 들어 역설했다. “캐나다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95%가 미국영화인 반면 캐나다 영화는 3∼4%에 불과하다. 제 3국 영화는 상영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캐나다의 영화산업은 무너졌고, 캐나다 국민들은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미국식 자유무역이 낳은 결과다.”경제학자들은 확연히 다른 생각을 드러냈는데, 발제자로 참석한 노재봉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문화 역시 일반 재화와 같다”라고 전제하며, “경쟁을 통해서 문화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문화산업을 민감한 분야로 설정해 개방을 제한하는 행위는 특정산업의 종사자와 관련자를 보호해주는 것일 뿐 문화자체를 보호하는 것도,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주장을 근거로 들고나섰다.
이에 대해 로버트 필론 캐나다 CCD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부회장은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는 “노재봉 박사는 다른 경제학자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경쟁’을 이야기했는데, 과연 문화에 경쟁이 있는가 먼저 묻고 싶다”라고 말문을 연 뒤, 아담 스미스가 말한 ‘완전한 경쟁’은 현재 우리 시장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경쟁 뒤에 숨은 ‘차별’과 ‘불공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날 토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바로 ‘스크린쿼터 폐지’ 문제였다.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를 강제한 이 제도가 한국영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스크린쿼터 폐지 문제는 한미 투자협정 과정에서 불거져서 몇 년 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주장과 ‘한 산업만 보호하는 폐쇄적인 보호주의’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원)는 “스크린쿼터가 경쟁의 장애물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심 교수가 방점을 찍은 것은 ‘비율’. “중국이나 인도처럼 문화개방이 적은 곳과 한국의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라고 전제한 뒤 “스크린쿼터의 변화는 미국의 독점 ‘비율’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갖는가’에 방점을 찍었다. “한국 ‘영화’를 보호할 것인지, 한국영화 ‘제작자의 이익’을 보호할 것인지 엄격히 따져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

문화다양성의 국제적 보편성

토론에 열기를 더한 것은 객석에 앉아있던 관전자들의 참여였는데, 발언권을 얻어 무대로 나온 한 여성 사회학자는 모든 참석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가 던진 질문은, 어쩌면 세미나의 가장 기본적인 논의였어야 할 ‘문화다양성’에 대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의 문화다양성이 ‘반미국’이고, 한국의 문화다양성이 ‘우리 것 먼저, 그 다음이 다른 문화’라면, 도대체 문화다양성의 국제적 보편성은 무엇인가”라는 것. “어쩌면 문화다양성이란 그 개념은 멋있으나 현실성은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
베르니어 교수는 “문화다양성이란 곧 문화표현의 다양성이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한 공동체의 문화표현은 공동체의 언어, 담론,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와, 우리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그가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의 전제조건이었다.
문화 개방 논의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석자들 모두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토론 분위기는 절실하고 진지했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생동감 있는 토론에 관람객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영화 뿐 아니라 방송을 비롯한 시청각 서비스까지 개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 성역처럼 여겨지던 쌀이 개방되고 난 뒤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자유무역’의 홍수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남은 숙제를 골똘히 생각하며 토론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들갔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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