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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조형언어들의 교류를 보다
내밀한 조형언어들의 교류를 보다
  • 이민주 화가·삼심아트 대표
  • 승인 2010.11.08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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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스위스 취리히 국제아트페어(2010.10.14~17)를 다녀와서

올해로 취리히 국제아트페어가 12회를 맞았다. 필자는 2002년부터 매해 참석해 올해로 9년째, 그리고 주최 측이 마련한 다른 전시회들을 모두 합하면 약 15번 참가하게 됐다. 필자는 작가로서 또 한국 측 커미셔너로서 갤러리 해외담당 디렉터로서 참가한 셈이다.


그동안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보다도 자부심을 갖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취리히의 중심부에서 취리히 국제아트페어를 열어왔던 이들 주최 측도 경제의 흐름에 따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면서도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에 2016년까지 계약을 해 놓고 있다. 이는 이들의 스위스 취리히에 대한 사랑과 긍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업적 목적에 따라 흥망성쇠를 판가름하는 다른 아트페어와는 달리 이 아트페어는 본질적인 작품성을 우선으로 한다. 즉 잘 팔리는 작가, 잘 팔리는 그림보다는 이 아트페어의 수준을 판가름해줄 수 있는 진실성과 회화의 본질을 간직한 작품성을 선호한다. 이는 스위스 취리히라는 도시, 그 주위의 자연, 그리고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자존심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삼심아트가 마련한 작품 부스를 둘러보고 있는 취리히 국제아트페어 참가자들.                                                       
사진제공= 이민주


이미 미술세계에도 미국의 상업주의가 널리 퍼져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요즈음은 실용주의의 첨단을 걷고 있는 중국의 상업주의까지 가세해 미술시장은 작품성이나 진실성, 그 역사적 가치보다는 얼마나 대중에게 어필해 잘 팔리나, 즉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미술품의 가치가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취리히란 도시는 끄덕하지 않고 자신들이 고수하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있는 특이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늘 화폐와 경제적 숫자를 다루는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많은 도시인데 이러한 현상은 내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취리히 국제 아트페어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영향을 받았는지 예년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됐지만 각 갤러리마다 특색 있는 작가와 작품을 내놓는 건 변함이 없었다. 대표적 참가작가로는 스위스 갤러리 휘쉬피스의 막크로 그의 신선한 영상작업은 올해 키아프에도 출품돼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독일 드레스덴 잔데르켄(Zanderken) 갤러리의 장 그로스만은 거대한 붉은 조각을 거의 무채색인 회화 대작과 함께 배치해 전시장 입구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태리 FM6366Art의 지오반니 만쪼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타임스퀘어스타일의 유화 풍경화를 선보였으나 큰 주목은 끌지 못했다. 폭스아트(FoxArt) 갤러리의 후버트 쿠쩌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흰 대리석 조각과 멕시코의 패트리샤 이바네츠가 수제종이로 제작한 작품은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베를린에서 온 수잔 크라이제의 브론즈와 불가리아 카라데쉐브의 작은 브론즈, 이탈리아 출신 마티나 빌게의 부드러운 조각, 밀부스 본두발의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스위스 루카스 마이에의 섬세한 철근 조각과 하우시 크네흐트의 대형조각 등이 예년에 비해 전시장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입체작품들을 많이 유치하고자 한 주최 측의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마크 홉킨스는 벨기에 취향의 원초적 색상과 서체 충동이 오묘히 결합된 작품을 전시했다. 스위스의 비비 컨템포러리(BB-Contemporary)는 그동안 여러 해동안 일본의 준코 마쥬모토의 사진과 영상작품을 전시했고 뮌헨, 베를린, 뮌스터, 런던 등에서 또 다른  화랑들이 참신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필자가 올해에도 이 전시에 참여키로 결정한 이유는 박소영 화백이 세계로 진출해보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스위스 취리히라는 도시에 대한 나의 꾸준한 짝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그에 걸맞게 건축물들도 격조 있으며 청명한 하늘아래 맑은 공기와 편리한 도시 교통수단, 그에 따른 시민들의 높은 문화의식, 주변국가의 변화에도 변치 않은 뚜렷한 그들만의 인생관은 10년간 취리히를 방문한 나로서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치에게 쫓겨 다니던 클레(Paul Klee, 1879~1940)를 받아들여 보호해주었고 그를 위해 지어준 클레 미술관이 베른에 있다. 전쟁 중 다다이즘의 주요 도시로 유명했던 취리히엔 아직도 카바레 볼테르(스로빙 그리슬과 함께 인더스트리얼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룹)가 있다. 유럽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취리히 쿤스트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한국의 이우환을 비롯한 각국의 명작들을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는 곳이 취리히다.
그들의 컬렉션은 다른 나라의 현대미술관과는 또 다른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다. 특히 쟈코메티의 특별관은 그들의 대표작가인 쟈코메티에 대한 취리히 시민들의 애정을 알 수 있다. 스위스 100프랑 지폐 위에는 쟈코메티의 초상과 작품이 오래전부터 새겨져 있다.


종교개혁을 했던 루터가 최초의 설교를 했던 교회는 제네바에 있지만 샤갈에게 의뢰해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리게 한 교회는 취리히에 있다. 거리 구석구석에 예술혼과 자유로운 영혼의 힘이 묻어있으며 특히 작은 국가들의 깊이 있고 독특한 민족혼을 매우 중요시하는 도시임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올해엔 규모가 축소돼 한국측 작가로는 필자와 박소영 작가가 직접 현지에 참석했고 중앙대에 재직하고 있는 이혜주 교수는 작품만 전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필자와 함께 참여했던 한국작가들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엔 우리 한국 부스를 스페셜 게스트로 지정해 주었고  일간신문 및 기타 홍보물에 우리 부스가 대거 특필되기도 했다.


동양 특히 한국의 정신적인 심미안을 깊이 음미할 줄 아는 그들은 이번에도 우리들의 작품들을 매우 적극적으로 지켜봤고 주최측과 관람객들, 그리고 전문 컬렉터들이 우리 한국작가들의  작품들을 판매해 문화적 교류와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본 전시회가 됐다. 필자와 함께 참석했던 한국측 컬렉터인 김유정 움 대표는 이러한 호응에 매우 감격해 내년에도 이 아트페어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스위스의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입하면 자신이 이 작품을 얼마나 사랑해주고 있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주며 자신의 집과 그 작품이 걸려있는 장소를 사진 찍어 보내주거나 작가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등 작품과 예술가를 존중하는 예의바름을 보여준다.


화랑들과 작가들 간의 선한 협조와 상호 봉사하려는 의지, 전시회를 통해 커다란 수익창출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전시 자체를 즐기고 호흡하려는 분위기에 박소영 작가는 “다른 전시장에서 보던 심각한 경쟁과 전쟁터같은 분위기가 없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의 한계를 말하자면 취리히가 60만 인구의 작은 도시이므로 베를린이나 쾰른 서울, 베이징, 상하이 등에 비해 관객이 작아 주변국이나 주변 도시에서 컬렉터들이 많이 온다 해도 그 숫자에서 열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보다는 질을 앞세우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내밀한 조형언어들 간의 교류를 중시하는 취리히 국제아트페어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길 바란다.

이민주 화가·삼심아트 대표

필자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했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많은 해외아트페어에 참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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