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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론물리학
  • 승인 2010.11.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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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眞知所以爲行 不行不足以爲知. “참된 앎은 행하기 위함이요,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왕양명 『傳習錄』) 우리는 누구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고’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은 위에서 인용한 왕양명의 ‘知行合一論’에 비춰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풀리게 된다.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유수한 대학자들의 철학적 문제였으나 그 지적인 배경이 그 당시의 정책적 실천과도 동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행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상 지행합일의 바른 취지는 ‘안다’는 것이 ‘體化’, ‘肉化’ 된 지식이라는 점에서 그 행함은 ‘자동화된 실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체화된 지식, 기술이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경험, 시행착오, 반복된 기능 등을 통해 터득한 진리요, 최적화되고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 어찌 보면 수학적 공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쉽게 ‘알고’있다고 말하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행함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알지 못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그 중요성에 걸 맞는 행함(기초과학의 투자와 육성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캐나다의 워터루대학의 박사 후 연수과정을 시작한 해는 유명한 페리미터 이론물리 연구소가 신축 연구 청사를 건립하고 이전해 새롭게 이전 기념식을 하던 가을이었다. 그 기념식은 인근 지역 시민들에게는 큰 축제와 같은 행사였고, 스티븐 와인버그, 후안 말다세나, 스티븐 호킹 등의 당대의 유명한 물리학의 대가들이 그곳을 찾아 기념 축하 강연 등을 하도록 기획돼 있었다.

그 행사장을 찾았던 필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론물리학이라는 대중과 매우 동떨어져 있을 법한 물리학 강연을 듣기 위해, 내리는 비를 맞아가면서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수 십 미터의 입장 행렬을 서 있는 이네들에게 과연 기초과학은 어떤 것일까. 실로 충격과 부러움의 감정 속에서 며칠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당시 내렸던 결론은 이네들에게 기초과학은 ‘體化’된 지식이란 것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지적유희로 보였던 1900년대 초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둘러싼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지적논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휴대폰, 컴퓨터 등과 같은 물질문명의 근간이 됐음을 여지없이 보여준 좋은 경험을 통해 그것들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무의미해 보이고 실용가능성 없어 보였던 ‘지적논쟁’의 보고인 기초과학은 결국은 우리의 삶에 큰 진보를 이룰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그네들에게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곧 ‘기초 과학의 투자’로 이어지는 지행합일을 이루어내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임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지 않을까.

이제 이 사실을 우리의 역사 속에 투영해보면 우리의 현재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강국이라 자부하던 조선초기부터, 중기에 이르면서 ‘理氣論’의 지적 논쟁들이 첨예화 되고 , 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實學’등으로 발전돼 오던 때에, 일제침략이란 단절된 암흑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양과학과의 융화를 체득 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 지식의 ‘體化’를 겪을 기회를 상실했다. 결국 해방이후, 6.25와 정치적 소용돌이 이후에 비로소 1970년대 이후에 이르러 지식의 성과만을 여과 없이 수용함으로써 그것들이 ‘기초과학’의 체화된 산물이라는 사실을 몸소 겪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소위 ‘안다’고 하는 앎들은 진정으로 ‘알고’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들끓으며, 흔히 일본의 수상자들이 나오기라도 하면 한일전 축구경기를 방불케 하는 비교 공방전이 펼쳐지곤 한다. 그러한 모습이 우리가 고통과 인내 없이 단것만을 추구하는 기초과학에 대한 정책지원의 모습이 보여 지는 것 같아 씁쓸해 지곤 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미래의 모습을 설계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통해 설계될 수 있다고 믿는다. ‘知行合一’이란 단순한 명제 속에서 말이다.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론물리학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론물리학

 

서강대에서 박사를 했다. 양자중력이론, 중력파물리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계산용 소프트웨어 개발과 LIGO 중력파 검출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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