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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론’ 가능성 봤다 … 후학들 연구 위해서는 지원 필요”
“‘새로운 이론’ 가능성 봤다 … 후학들 연구 위해서는 지원 필요”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11.08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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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럽에 ‘다산 철학’ 알리는 김신자 교수

유럽 세계에 ‘다산 철학’을 소개하고 있는 김신자 교수(68세·사진). 1995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 은퇴하기까지 교수로서, 비교철학 연구자로서 긴 여정을 거쳐 왔다. 김 교수는 지난 2006년 다산학술문화재단 지원을 받아『다산 정약용의 철학사상』(Das philosophische Denken von Tasan Chong)을 독일어판으로 간행했고, 올해 10월 영문판(The Phiosophical Thought of Tasan Chong, Translation from German by Tobias J.Koertner/Jordan Nyenyembe, PETER LANG, 2010)을 선보였다. 역시 다산학술문화재단과 오스트리안 사이언스 펀드(FWF)지원에 힘입었다. 최근 중앙대 철학과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다산 철학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철학의 본고장에 다산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는 해외에서 학술출판이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진행·사진= 최익현 편집국장
정리=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까지 강의를 맡아 온 과정이 궁금하다.
“대학 교수였던 남편을 따라 독일에 갔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 198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1995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부터 빈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이 강의를 맡기 힘든 시기였다. 처음엔 한국학 연구자로 문화철학 강의를 하다가 이듬해 철학과에 소속돼 강의를 시작했다. 뛰어난 학자들이 줄줄이 있었는데 학위를 받고 철학과에서 강의를 맡게 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빈 대학의 교수임용 시스템은 어떤가.
“강사를 임용할 땐 공고를 내고 매 학기마다 모집한다. 강의에서 사용할 참고문헌, 시험 계획 등 구체적인 내역을 제출하면 인사위원회에서 심사를 한다.
하빌리타치온을 받고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빈 대학 철학과의 경우 강사부터 교수까지 합치면 80명이 넘지만, 1984년에 정교수가 5명뿐이었고, 이들이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한 이유다. 몇 년 전 정교수 공고를 냈는데, 한 사람을 뽑는데 180여명이 지원했다.”

△유럽 대학도 한국처럼 교수 승진, 업적평가 요건이 항목별로 갖춰져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은퇴한 시점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빈 대학엔 교수 업적평가제도가 없었다. 교수들은 ‘논문을 써라’라고 강요하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대신 교수들이 소속돼 있는 부서(Institute)의 벽보에 스스로 자신들의 저서나 논문 표지, 학술발표회 일정 등을 알린다. 따라서 동료 교수나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교수평가가 이뤄진다. 연구 성과도 완전히 공개되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에 방한해 다산철학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유럽에서 다산철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럽은 가톨릭 전통이 오래된 만큼 새로우면서도 가톨릭과 연결 지을 수 있는 학문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철학분야도 마찬가지다.‘철학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칸트, 헤겔에 관한 강의를 매번 듣다보니 학생들도 새로운 강의내용을 원했고 따라서 내 강의를 많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다산철학에 대한 나의 얘기에 학생과 동료 교수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다산 정약용의 철학사상』을 독일어, 영어판으로 출간하는 등 ‘다산철학 알리기’에 한창인데. 
“한국철학은 유럽에선 완전히 황무지다. 이번 책을 통해 다산이 서구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산 철학은 현실에 어필하는 면이 많고, 가톨릭의 영향도 깊다. 『다산 정약용의 철학사상』을 출판하고 2007년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국철학의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물꼬를 트고 디딤돌을 놓았다면, 이제 후학들이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출판하기까지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자료를 찾아 읽고 요점을 뽑아내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영문판을 낼 때도 번역가 2명과 사전 8개를 놓고 일일이 교정 작업을 거쳤다. 아쉬운 것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구 학술진흥재단, 다산재단 등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다산 철학이 워낙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유럽 출판사에서 선뜻 내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독일어판 책에 대해 국내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냉대 받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산을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에 알리고 싶었는데 어려운 일이 많았다.”

△정부 지원이 거의 없었다는 말인가.
“국가에서 해외 학자들에게 국제교류 지원사업을 시행한다는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현지에선 결과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지원사업을 벌여 일본철학을 다루는 책들이 많이 출판돼 있다. 성실하게 연구해 다리를 놓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국가적인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독일어권 대학에 진출하려고 하는 학문후속세대를 위해 조언한다면.
“전문분야를 세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의 연구는 안 된다. 칸트를 예로 들면 칸트를 연구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보다 칸트의 실천이성, 판단력 비판 등 세부분야 중 한 분야를 선택해 구체적으로 연구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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