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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이제마의 사상의학, 열정이 이루어 낸 통섭
[역사 속의 인물] 이제마의 사상의학, 열정이 이루어 낸 통섭
  • 허훈 중앙대 강사
  • 승인 2010.11.08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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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이제마(1837.4.23~1900.11.12)는 조국이 사면초가에 처해 있던 불운한 시기에 태어나 울분의 삶을 살았다.
그는 의기가 넘치는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말년엔 청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참혹한 전쟁터가 된 국토와 참상을 겪게 된 백성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무력감에 치를 떨었다.

 이제마는 유학자, 의학자, 목민관, 무관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흔히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의학자로서의 삶은 그리 일찍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저작 『동의수세보원』에는 39세 때 첫 임상기록이 나타난다. 물론 본격적인 의학 공부는 훨씬 이전에 시작했다고 추정해도 환갑을 조금 넘긴 그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보면, 인생의 후반부에 의학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이다.

 그럼에도 그의 타고난 열정은 기존의 의학이론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새로운 醫說을 내놓는다. 기존 한의학이 주로 도가적 배경을 근저로 한다면, 그의 사상의학은 뚜렷하게 유학의 심성론을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허준의 『동의보감』이 갖고 있었던 ‘체질(개체)’에 대한 관심을 이어간다. 허준과 이제마는 우리 의학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東醫’라는 표현으로 지칭해 나타내는 데, 그것이 곧 『동의보감』과 『동의수세보원』이다.

『동의수세보원』에서 그 스스로 “나는 의약경험이 5~6천년 쌓인 후에 태어나, 앞사람들의 저술로 인해 우연히 四象人의 장부성리臟腑性理를 발견해 한 권의 책을 쓰고 수세보원이라 하였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종래의 의학사상과는 확연히 다르기에 그 뿌리를 찾은 연후에 가지와 잎사귀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의학에 대한 사상의학의 차별성은 사람의 性情을 기준으로 한 체질분류가 인체 내의 臟腑에까지 연결되고, 그 구조와 기능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준다는 데 있다. 나아가 이를 실제 치료와 예방에 적극적으로 운용한다. 이로부터 ‘심리적·도덕적인 사태가 건강에 직결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도출한다.

 『진리와 방법』(1960)으로 유명한 가다머는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질병은 가치가 개입되기 때문에 주관적인 상황이며 사회적인 것”이며, “질병은 또한 자연과학 안에서 규정될 수 있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심리적·도덕적인 사태”라고 지적한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작 『불평등의 재검토』의 서문에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사전적인 동일성을 포함해서 (그런) 가정과 함께 진행되는 평등연구는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문제의 중요한 측면을 빠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은 이질적 특성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을 무시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째 체질적으로 다른 모습의 인간에 주목했던 이제마의 언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제마의 의론은 이런 점에서 탁월하며 미래적 전망을 밝게 한다. 그 응용 가능성은 새로운 의학 이론을 창안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학·경영학·교육학·심리학 등의 폭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이 가능성은 그가 중시했던 憂患意識으로부터-그에게 聖人이란 근본적으로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으며, 단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깊이 근심해 자기 한 몸의 욕심에 미칠 겨를이 없는 사람이다- 즉, 100여 년 전 세상의 오늘과 미래에 대해 깊은 염려를 했던 이제마의 고뇌로부터 열린 것은 아닐까.

허훈 중앙대 강사

‘동무 이제마의 심성론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동무 이제마의 철학사상』이 2009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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