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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중세 유럽 사회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중세 유럽 사회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0.11.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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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앙리 피렌 지음 | 강일휴 옮김 | 삼천리|2010|384쪽

게르만족의 침입은 고대 세계의 지중해적 통일성을 파괴하지 않았고, 서방에서 황제가 사라진 5세기까지도 존속한 로마 문명의 진정한 본질적 특성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도 파괴하지 않았다. 게르만족 침입으로 발생한 혼란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새로운 원리도 출현하지 않았다. 경제적·사회적 질서에서도, 언어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현존하던 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문명은 지중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고대 전통이 단절된 원인은 급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이슬람의 진출이었다. 이 진출의 결과는 동방과 서방의 최종적 분리였고, 지중해적 통일성의 종말이었다. 언제나 서방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가 그 이후 바그다드의 궤도에 들어갔다. 그런 지역들에서는 다른 종교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전혀 다른 문화가 출현했다. 이제 이슬람교도의 호수가 된 서지중해는 과거에 늘 그랬던 것 같은 상업과 사상의 교통로가 더 이상 아니었다.

서방은 봉쇄됐고, 닫힌 세계에서 자체의 자원으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생활의 축이 지중해에서 북방의 게르만 지역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결과로 메로빙거 왕조가 쇠퇴했고 그 대신 게르만적인 북방에 기원을 둔 새로운 왕조인 카롤링거 왕조가 등장했다.

교황은 비잔틴 황제가 이슬람교도와 투쟁에 전념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게 되자 황제와 결별하고, 이 새로운 왕조와 제휴했다. 그리하여 로마 교회도 새로운 시대 흐름에 동참하게 됐다. 로마에서, 그리고 로마 교회가 세운 새로운 카롤링거 제국에서도, 로마 교회의 경쟁자는 없었다. 게다가 국가가 그 행정기구를 유지할 수 없었고 경제적 쇠퇴의 필연적 결과인 봉건제에 의해 약화됐기 때문에, 교회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했다. 이런 변화의 모든 결과가 샤를마뉴 사망 이후에 명확하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로마 교회와 봉건제에 의해 지배된 유럽은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전통적인 용어를 빌리면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중세로 이행하는 기간은 길었다. 650년부터 750년까지 꼬박 1세기가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전통이 사라지고 새로운 요소들이 우세해진 것은 바로 이런 혼란의 시기 동안이었다.

이러한 동향은 800년에 새로운 제국이 건설됨으로써 완성됐다. 새로운 제국은 서방과 동방의 단절을 확정지었는데, 새로운 제국이 건설됨으로써 서방세계에 새로운 로마제국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로마제국의 건설은 콘스탄티노플에 줄곧 존재하고 있던 구 제국인 비잔틴제국과 단절됐다는 명확한 증거다.

□ 책의 저자 앙리 피렌(1862~1935)은 벨기에 역사가로,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지중해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중세 유럽사회가 탄생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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