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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적 본성 강조 … 아담 스미스·칸트 등에 영향 끼쳐
인간의 이기적 본성 강조 … 아담 스미스·칸트 등에 영향 끼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11.08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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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버나드 맨더빌 지음, 『꿀벌의 우화』(최윤재 옮김, 문예출판사, 2010.11)

최윤재 고려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번역한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 1670~1733)의 『꿀벌의 우화-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문예출판사)은 그런 ‘경제학의 아버지’가 사실은 맨더빌에게서 많은 힌트와 영감을 빌렸음을 보여준다.

스미스보다 앞 세대였던 맨더빌은 개인의 이기심과 이익추구 행위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강조했다. 이기심이 인간 본성이라는 맨더빌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는 바로 아담 스미스였다. 그러나 스미스는 생산자 이익만 강조되던 당시 중상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생산자 이익뿐 아니라 소비자 이익이, 기업가 이익뿐 아니라 노동자 이익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번역자인 최 교수는 “스미스에서 비롯된 경제학은 이런 균형 감각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지, 이기심이나 이윤 추구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惡德을 옹호하는 주장을 내놓았기 때문에 맨더빌은 뭇사람들로부터 ‘인간 악마(Man-Devil)’로 불렸다. 167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레이던 대학에서 철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 이후 173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다. 그에게 ‘악명’을 안겨준 것은 1723년 발표한 『꿀벌의 우화』라는 에세이였다. 이 책에는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이라는 풍자시와 그 자신이 직접 붙인 주석과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자선과 자선학교」, 「미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글이 함께 수록돼 있다. 그러나 출간되자마자 미들섹스 지역의 대배심으로부터 “종교와 미덕을 깎아내린다”는 혐의로 고발됐다. 프랑스에서는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맨더빌의 글이 당시 사람들의 눈에 불경하게 보였던 이유는 그가 도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더빌은 중세적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도덕이야말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위선에 사로잡힌 가치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확실히 그는 자기 시대를 훨씬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가 주로 문제 삼은 것은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이기심, 탐욕, 쾌락과 같은 악덕이었다. 당대 사람들이 미덕(virtue)으로 칭송했던 것은 금욕,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과 같은 것들이었으니, 그가 대중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악덕을 옹호하고 변명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사람들이 도덕에 대해 갖고 있었던 두 가지 생각-욕심을 나쁜 것으로 쳐서 금욕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에 따라야 미덕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옮긴이는 맨더빌이 이 두 가지 기본 전제를 부인하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끝끝내 고집했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미덕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한다.

맨더빌은 이렇게 당시의 도덕을 공격함으로써,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상의 중요한 변화 지점을 읽어냈다.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과 도덕은 이제 다들 돈벌이에 몰두하는 상업사회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맨더빌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풍자와 우화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위선에서 벗어나라’고 외쳤다.

오역의 가능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질타를 요청한 대목이라든가, 책의 소소한 내용을 바로잡아 준 동료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부분 등은 이 책의 성과를 떠나 번역 작업의 진지함을 증명해주는 대목이 틀림없다. ‘옮긴이의 글’이 모처럼 따뜻하게 읽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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