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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5·18 기념 제3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국제학술대회
[학술대회] 5·18 기념 제3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국제학술대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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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09:32:27

한국 민주화운동에는 여성열사가 있는가. 분명 여성열사들은 있었을 텐데 여성열사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갈증을 알았던 것일까.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전남대에서 열린 ‘제3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민주화운동과 여성’인 만큼 국내의 상황뿐 아니라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등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의 역할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불모지에 가까운 여성사 연구에 촉촉한 단비를 내린 시도라 볼 수 있을 듯.

세계 각국의 여성 민주화 활동
전남대 5·18연구소와 여성 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 대회는 나간채 전남대 5·18 연구소장의 개회사와 이광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환영사를 비롯한 개회 행사로 시작됐다. 둘째날은 조지 키치아피카스 보스턴 웬트워스대 교수(사회학)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일본, 멕시코, 독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성의 역할을, 셋째날은 제주 4·3항쟁, 5·18민주항쟁, 성매매 반대 운동 등 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서 여성의 위치와 그 변화에 관해 논의했다.
먼저 ‘일본의 페미니즘운동과 일본군 성노예 법정’을 발표한 오오코시 아이코 일본 긴키대 교수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 정신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 페미니스트들의 학술 활동과 법적 투쟁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오오코시 아이코 교수는 “여성주의자들의 연대로 폭력과 전쟁의 공포를 힘의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국제적 공동체의 건설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멕시코의 여성, 노동권, 그리고 NAFTA’를 발표한 마르타 오혜다 멕시코 여성노동운동가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개별 사례를 바탕으로 “자유무역, 특히, 북대서양 자유 무역 협정(NAFTA)이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희생시킨 대가로 극소수 몇몇에게는 엄청난 성공을 안겨줬으나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강정숙 뮌헨시 다문화연구 전문위원 역시 ‘독일 여성 이민자의 인권상황’ 발표에서 독일에서 외국인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중적 굴레에 있는 이민 여성이 접한 현실을 제시했다. 강정숙 전문위원은 “차이를 받아들이고 아울러 물적자원과 사회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이 독일 민주주주의 발전과 관용적인 시민사회의 성숙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임을 역설했다.
캐롤린 소브리티히아 필리핀대 여성연구소 소장은 ‘민주주의와 국가건설: 필리핀의 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 필리핀 여성의 위상과 인권을 신장하는데 있어서 여성운동의 역할을, 스리 단티 인도네시아 여성부 대외협력국장은 ‘인도네시아의 개혁, 민주화, 그리고 여권 신장’에서 인도네시아 개혁기 동안 여성권한강화부의 활동을 중심으로 여성이 정치 및 시민사회에 개입하는 과정을 고찰했다.
이론은 경험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친밀해진다. 마지막날에 열린 한국의 근대사와 현실에서 살펴본 여성 활동에 관한 논의가 눈길을 끌었다. 김성례 서강대 교수(종교학)는 ‘제주 4·3과 여성경험: 폭력의 기억에서 생존의 연대로’의 발표에서 북제주군 조천읍 호미마을의 사례를 들어, 4·3당시 희생자로서의 여성들과 그 여성들이 폐허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을 제시했다. 김성례 교수는 “여성경험의 측면에서 4·3의 역사적 의미와 생존의 서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며, 인물과 사건 중심의 역사 서술을 벗어나 여성 연대가 꾸려나가는 삶의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였다.
강현아 전남대 5·18연구소 상임연구원은 ‘5·18 민중항쟁과 여성주체의 경험: 저항과 배제’에서 “여성주의적 인식론에서 여성의 자아정체성이나 경험이 어떻게 타자와 외부적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지를 보여주고자” 그리고 “성이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삶 속에 반영시키는 주체적인 존재임을 밝히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5·18 민중항쟁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경험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역사에 매몰된 여성 경험의 재조명
이번 학술대회는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성립하려는 시도가 뚜렸했다. 그리고 일반적이고 개념적인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해 여성사를 만드는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들이 여성의 경험을 역사로 만드는 흐름으로 작용한 것은 연구자들의 공으로 돌려졌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를 주관한 나간채 5·18 연구소장은 “21세기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시도했다”며, "소외받고 착취당하고 있는 여성들, 폭력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역사 속의 민주화활동을 하였던 여성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학술대회의 의의를 밝혔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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