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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역사적 성격에 개입하는 세 가지 방식
공간의 역사적 성격에 개입하는 세 가지 방식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0.11.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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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의 미술] ③ 과거와 현재: 역사적 장소에 배치된 공공조각

길거리나 광장에 세워진 공공미술 작품들은 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들과는 다르다. 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은 작품 자체의 형식적 특성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작품 해석에 영향을 미칠 주변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된다. 가급적이면 근처에 나무도 심지 않는다. 반면에 길거리나 광장에 설치된 작품은 그 작품이 설치된 공간과 긴밀하게 연관될 것이다. 길거리나 광장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경우라면 큰 영향의 강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여기 세 작품이 있다. 이 세작품은 공공미술작품이 공간의 역사적 성격에 개입하는 세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식, 「민주의 뿌리」, 수유리 4·19 국립묘지 입구.

먼저 살펴볼 작품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4·19 묘지 입구 광장에 있다. 우리는 그 작품이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값진 희생의 가치를 구현한 것이기를 기대한다. 4·19 묘지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새롭고 가치있는 조형적 해석을 제기하는 작품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를 감당하기에 이 작품은 역부족으로 보인다. 작품 제목은 「민주의 뿌리」다. 작품 설명이 붙어있다. “독재와 부정의 시대 상황을 뚫고 솟아난 민주의 기상”이라고 한다. 작품을 보면 작품 하단의 다듬지 않은 수평의 자연석으로부터 잘 다듬은 육면체 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형상이다. 여기서 하단의 수평-자연적(유기적) 형태는 독재와 부정의 시대 상황을 나타낸 것이고 상단의 수직-기하학적(인위적) 형태는 민주의 기상을 나타낸 것이리라.

조각이 위기 상태의 정신을 은폐할 때

그런데 내게는 이렇게 완벽한 도식화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국가적 기념 공간에 배치된 조형물에서 빈번하게 발견하는 수직 찬양은 논외로 하더라도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이 그토록 선명하고 깔끔하게 묘사된 것이 못마땅하다. 미술사에서 이런 종류의 대조를 대표하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작품들이다. 육체의 질곡으로부터 정신의 해방을 의도한 것이다. 해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간단치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미완으로 남겨뒀다. 그래서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투쟁은 계속된다. 다시 「민주의 뿌리」를 보면 이 작품에서 4·19는 해방의 완성으로 기념된다. 그 재료는 단단하고 무거운 화강암이다. 4·19의 정신은 석화되고 응결돼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이 됐다. 그것은 언제나 위기 상태인 4·19 정신의 현실을 간단히 은폐한다.

최정화, 「세기의 선물」,  2000, 종로.
서울 송파구 올림픽대로 중앙분리대에 설치된 올림픽상징조형물에 눈을 돌려보자.  송파구가 2001년경부터 추진한 ‘올림픽로 및 석촌호수주변 관광명소화 사업’의 결과물이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올림픽 개최도시의 역사성과 이미지 조성을 위해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설치됐다. 여기서 작품들은 공간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공간의 역사성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이 부재하는 공간에 역사성을 불어넣는 기능을 담당하는 조각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적극적으로 구상성을 띤다. 올림픽 각 종목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란 ‘아름다운 비행’이나 ‘미래로의 비상’ 같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다.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소산인 이 작품들은 공간의 역사성에 개입하는 제도의 힘과 공공미술이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제도와 공간을 삐딱하게 바라보기

그러나 확실히 제도가 주도하는 미술, 또는 제도에 호응하는 미술은 대부분 예술 특유의 비판성과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다. 그래서 대부분의 위대한 미술 작품들은 제도에 멀찌감치 비켜서서 그 제도와 공간(의 역사성)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작가에게서 나온다. 우리 미술에 이런 사례가 있을까. 최정화가 종로 타워 뒤에 세운 「세기의 선물」(2000)은 어떨까. 이 작품은 근처 탑골공원의 원각사지탑을 모본으로 그 형태를 모사했다. 모본인 원각사지탑은 단단한 석탑이지만 이 모사본은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었다. 거기에 작가는 금빛 페인트를 칠했다. 과거와 현재,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현란하게 뒤섞인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1990년대 후반에 유행한 이른바 포스트모던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한다. 예컨대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이 작품을 단순히 문화재의 희화가 아니라 자기복제 시대 ‘세기의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혼종이 종로 한 복판 그것도 옛 화신백화점 자리 옆에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데 왜냐하면 종로, 특히 화신백화점은 옛것과 새로운 것이 격하게 충돌하면서 공존한 우리 근대의 대표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모본인 원각사지탑은 어떤가. 이 탑이야말로 돌을 재료로 나무탑을 모방한 고전적 혼종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정화의 「세기의 선물」은 전통을 독특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찬란한 금빛을 자랑하는 고전적이면서도 키치적인 이 작품이 작가의 본래 의도대로 종로타워 앞 너른 광장에 세워졌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흉물이 됐을까 아니면 사랑받는 작품이 됐을까.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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