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5:10 (토)
[쟁점서평] 역사와의 대화와 동시대인과의 대화
[쟁점서평] 역사와의 대화와 동시대인과의 대화
  • 이병창 동아대·철학
  • 승인 2002.05.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시대 보는 시선 대조적
김재현 경남대 교수의 ‘한국사회철학의 수용과 전개’(동녘 刊)와 강영안 서강대 교수의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궁리 刊)는 20세기 간난한 역사와 그리고 이를 더불어 살아온 동시대(일제시대에서 지금까지 우리 역사 즉 20세기는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완성되는 시대라는 면에서 동시대이다. 물론 이 가운데 여러 단계가 있을 것이다) 철학자들과 대화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철학자의 동기나 관심의 방향 그리고 서술방식에서 언뜻 보기에도 차이가 드러난다. 필자의 생각으로 한국에서 철학하는 데 있어서 김재현은 역사와의 대화라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면, 강영안은 동시대인과의 대화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두 철학자의 책은 비록 서로 상관없이 작업했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비춰 주고 있다. 그러기에 서로가 무슨 내용을 주장했는가 보다는 오히려 이 두 철학자가 역사 그리고 동시대인과 대화를 시도했던 동기와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김재현은 ‘맺는 말’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남북의 대립의 극복과 문화적 통일을’ 위한 철학적 모색을 주도 동기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는 역사적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철학적 사상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이런 동기에서 그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일제 시대 그리고 해방 직후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자인 신남철과 박치우의 철학을 살펴보고, 그리고 다시 내려와 당대를 같이 살아간 경제학자 박현채, 시인 김지하 등의 사상을 검토하며, 북한 사회의 지도이념으로서 주체철학을 물어보고, 다시 남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박종홍 등의 사상을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김재현은 90년대 초반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근대적 담론의 편에 서있다. 당연히 그는 동시대인들보다는 실제의 역사적 현실과 대화를 시도한다. 동시대인들은 이런 역사적 현실과의 대화에서 늘 그의 곁에서 말을 던져주는 참조자에 불과한 것 같다. 그의 이런 역사적 의식은 동시대인의 사상적 내용을 다루는 경우에, 전기적 사실과 역사적 자료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동시대 보는 시선 대조적

그에 반해서 강영안에게서 역사적 현실은 동시대인들이 같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만 의미를 지닐 뿐이다. 물론 여기서 ‘거주한다’는 것은 그저 그 위에 생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인들의 삶의 의미가 생성되는 지평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는 이런 지평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에 차라리 동시대인들이 제기하는 철학적 문제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적 현실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굳이 스스로의 삶과 역사에서 의미를 구하지 않고, 이처럼 동시대인들과 대화에 나선 것은 그가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 서론에 나오는 자신의 표현대로 “현실은 여러 겹으로 되어 있고 현실을 묘사하는 언어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므로, 동시대인의 삶에서 생성된 의미를 묻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역사적 삶의 의미를 구하는데 필수적인 길이다.

그가 동시대인들에게 캐묻는 물음은 세 가지이다. 그는 우선 현실에 대한 철학자들의 태도를 묻는다. 그는 이 물음을 거슬러 올라가 특히 20세기초 동시대가 시작되는 선상에 있었던 철학의 첫 세대들(주요하게는 신남철과 박종홍)에게 던진다. 이어 그는 과학에 대한 물음을 던져 놓는데, 이 물음에 끌려 들어와 캐물어지는 철학자들은 바로 그의 선배 세대에 속하는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박정희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 거주하면서 근대화를 위해서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든 과학이라는 화두를 들었던 철학자들이다. 실증주의와 해석학과 현상학이 논의의 초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가 위치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에는 박동환, 박이문, 이기상, 이진우 등의 철학자들이 불려 나온다.

철학을 하는데 역사와 대화하거나 동시대인과 대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동안 한국에서 그와 같이 방식으로 철학하는 사람들이 드물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서양의 역사, 서양의 철학자들과만 대화해 왔으므로, 두 철학자의 성과는 특히 돋보인다. 철학을 하는데, 두 방식은 서로 팽팽하게 긴장된 관계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동시대인의 철학에서 포착된 삶의 의미를 물어봄으로써 역사의 의미가 이해되고, 거꾸로 역사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동시대인의 철학이 이해된다. 김재현과 강영안의 노력은 이런 긴장된 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 불충분하게 보인다.

김재현이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 역사의 심층적 의미를 마침내 파악한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김재현의 역사와의 대화는 대화 이전에 이미 역사의 의미가 선취되어 있어서, 김재현은 자주 동시대인의 철학적 성과를 선취된 의미에 비추어 난폭하게 재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신남철조차도 평면적으로 나열되는데 그치고, 박종홍이나 김지하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하자 말자 그치고 말았다는 것 등은 그가 역사의 궁극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동시대인의 사상을 통과하여 지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경제학자 박현채의 철학적 방법론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이 때문에 빛을 잃는 것이 못내 아쉽게 여겨진다.

불충분한 분석 아쉬워

이와 같은 불충분성은 강영안의 동시대인과의 대화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강영안이 스스로 내세우는 성과(인격적 과학, 타자의 철학, 다중적 현실관)는 사실 이런 동시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어지기보다는 이미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바이다. 이처럼 그의 책의 성과가 무엇인지 애매하게 된 이유는 그 역시 이미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재단했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강영안은 현실, 과학성,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대화를 위한 거점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점 자체는 역사를 박정희의 근대화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이며, 그러기에 이미 암암리에 역사의 의미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되는 것은 그는 동시대인의 철학적 주장에 감추어진 동시대인의 삶의 의미, 나아가서 그 바탕이 되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동시대인들의 철학적 주장만을 단순히 파악할 뿐이다. 이런 삶과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책이 철학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나온 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가 기울였던 노력에 비해 칭찬이 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처음에 나간 사람들은 고독하다. 무언가에 이끌려 나가지만, 사실 그 자신도 왜 그렇게 나가는지 분명하게 의식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기에 방향에서 탈선이나 논의의 불충분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 때문에 비난받기도 한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두 철학자의 고독함을 이해하고 싶다. 두 철학자가 나간 길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나가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