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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책상이 책상이듯 저작권은 저작권이다
[문화비평] 책상이 책상이듯 저작권은 저작권이다
  •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 승인 2010.10.25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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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이를 부양할 의무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나이 많은 남자가 있다. 하루하루를 무료하게만 보내던 이 외로운 남자는 어느 날 결심한다. 침대를 사진으로, 책상을 양탄자로, 의자를 시계로, 시계는 사진첩으로 부르기로. 이렇게 주위의 모든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 이 남자는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사물들의 이름을 외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남자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잊어버리고 결국 주위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문득 페터 빅셀(Peter Bichsel)이 지은 이야기 『책상은 책상이다』를 생각했다. “주위의 모든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 어떤 외로운 남자가 자신이 마음대로 정한 언어의 체계 때문에 주위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져 결국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책상’이란 단어의 자리에 ‘저작권’이란 단어를 대입시켜 보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딱 들어맞는지…….

전공 특성상 요사이 나는 ‘저작권’에 대해, 아니 이미 발생한 ‘저작권 문제’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대개의 경우 어떻게 하면 저작권 침해 혐의 내지 아리송한 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듯싶다. 그때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해 준다. “저작권 침해 여부는, 남의 저작물을 베꼈는지의 여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압니다”라고. 그리고 부연할 수 있다면 그동안 저작권 제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왔는지 설명하면서 “중요한 건 저작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의 창작성”임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우리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기류를 들여다보면 ‘권리 만들기’ 혹은 ‘권리 키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점점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깊어간다. 원본에 대한 아우라가 이른바 ‘짝퉁’의 틈바구니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보니 디지털 세상이 빚어내는 인조미인의 미끈한 몸매보다는 울퉁불퉁할망정 정감 넘치는 할머니 살결이 그리워지곤 한다. 클릭 한 번이면 득달같이 전 세계로 퍼져 가는 인터넷 메일보다는 우체부의 손때 묻은 편지가 더 매혹적인 송신수단이라는 생각은 이제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하는 반면 우리 의식은 여전히 무단복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보호의 당위성을 누구든지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저작권 보호를 생활화할 수 있어야 하며, 정당하고도 공정한 인용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의 예절에 입각해 저작권을 존중하는 풍토가 누리꾼들 사이에 정착돼야 한다.
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식과 정보를 기록·보존하고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미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들을 바탕으로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을 발굴하고 보존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저작권자들 또한 이용자 편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중 하나의 방법이 바로 CCL(Creative Commons Licensee)이 아닐까 싶다. 곧 저작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에 대한 구체적 판단을 해줌으로써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과 같은 저작권 법제에서는 별다른 표시가 없는 한 저작권이 주어지는 저작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다만,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게 되면 악의적인 이용사례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일정한 조건에 따라 이용하는 것을 손쉽게 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라이선스 표시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요사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환상과 관련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 그 자체는 분명 아날로그요, 사상과 감정 또한 아날로그에 가깝다. 그것을 제어하거나 통제하는 능력에 있어서 정형화된 디지털은 범접할 여지가 없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생활의 수단으로 기능해야 하며, 그것이 인간의 우위에 자리 잡는 날 인간성은 말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인간 내면의 사상이요 감정일진대, 그것을 판독하는 장치가 디지털화한다고 해서 무엇이 크게 달라질 것인가. 인공심장을 달았다고 해서 그가 로봇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책이 디지털화한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기술종속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듭 생각건대, 책상이 책상이듯 저작권은 저작권이다.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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