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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대한 숙명적인 단상
월드컵에 대한 숙명적인 단상
  • 교수신문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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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대중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나
이동연 / 문화평론가·서강대 강사

월드컵이 임박하자 매스컴과 정부가 호들갑을 떨면서 월드컵 붐을 조장하려는 사태를 보면 월드컵이 존재하는 다른 이유를 실감하기도 한다. 현재 모든 공중파방송은 월드컵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매일 월드컵 관련 특집이 마련되고, 다른 시사정보 프로그램에도 월드컵과 연관된 방송코너들이 신설되고 있다. KBS, SBS, MBC 사옥은 모두 자사의 월드컵 보도를 선전하는 대형 현수막과 그림들이 걸려있다. 일간지들은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월드컵 특집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월드컵을 통해 국가의 국력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16강, 8강이 국운의 기회로 호도되는, 소위 국가주의 프로젝트는 이제 개막이 되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여기에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축제를 계기로 스폰서들의 치열한 상품 마케팅 경쟁은 도에 도를 넘어서고 있다. 모 카드회사는 월드컵 홍보기간에 카드를 구입하면, 한국이 한골을 넣을 때마다 만원씩 준다는 이벤트를 벌였다. 통신사들 간의 홍보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난번 중국전과의 평가전에서 SK 텔레콤의 후원을 받은 붉은 악마 회원들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인 KT가 지원하는 응원단이 서로 갈라져서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통신회사의 상업적 이해관계로 인해 응원단이 양분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사실 월드컵은 부자나라의 잔치, 혹은 부자들을 위한 잔치로 변질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본선진출국들은 소속 대륙에서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라들이다.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약소 빈민국들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신의 축복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피파랭킹 170위 권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축구시청을 요구하는 제소자들의 집단소동이 있었는가 하면, 약물복용으로 출전금지당한 마라도나의 출전을 위한 대규모 거리시위도 있었다.

월드컵 공식사인 아디아스의 축구공은 전세계적으로 수억개가 팔리고 있다. 이 공을 손으로 직접 만드는 파키스탄의 수 만명 아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공 하나에 150원을 받고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파키스탄은 일년에 3천 5백만개의 축구공을 생산하고 30만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축구공을 수출하여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4천억원에 해당된다. 서남아시아 빈민국 중의 하나인 파키스탄에게 월드컵과 아디다스사는 천은처럼 여겨질지는 모르겠으나, 축구공 만드는 아동들에게는 노동착취의 주인공들이다. 우리의 경우도 지난 88올림픽처럼 월드컵 기간을 전후해서 노점상들을 일제 단속 중이고, 이에 따른 노점상들의 생존권 문제가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쯤 되면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나는 월드컵 관람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안티-월드컵 연대회의를 조직하거나, 월드컵 영구폐지 운동을 벌여야 할 판이다. 그러나 나는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월드컵 경기를 고대하는 사람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러나 어쨌든 자본주의는 축구를 가장 훌륭한 상업적인 이벤트로 만들었고, 지구촌 최대의 흥행시장으로 전환시켰다. 나는 축구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만이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 전세계 수십억 노동자들이 축구를 하고 있으며, 축구경기를 자신의 문화적 취향의 중요한 대상으로 체화하고 있다. 한국은 월드컵 이벤트 자체에 목매 있지만, 유럽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클럽팀을 훨씬 더 선호한다. 클럽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자발적인 서포터즈의 형성은 오히려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소위 ‘축구와 광장’의 문화, ‘축구와 카니발’의 문화는 밑으로부터의 대중 자발적인 문화를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축구는 체제옹호적이고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 것과는 다르게 대중들의 문화정치적 저항, 집단자생적인 쾌락의 문화도 동시에 생산해냈다. 지배적으로 관철되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희망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이다. 월드컵의 문화자본과 국가주의 프로젝트를 견제하고 저항하면서, 월드컵으로 생겨난 대중들의 자생적인 문화적 열정을 삶의 지혜로 확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월드컵을 통해 국내 클럽축구가 활성화되고, 이후 경기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지역문화자치를 위한 집단적 연대감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모든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자”는 붉은 악마의 슬로건도 대중의 자생적인 카니발 문화를 만들자는 뜻이다. 그게 현실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자못 진지한 질문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때쯤 되면 월드컵은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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